어느어릿광대의견해

어머니와 무상급식

엔디 2010. 6. 6. 10:52

경북 구미의 선산이 고향인 내 어머니는 아주 평범한 초등학교 선생님이었다. 다까기 마사오高木正雄와 동향인 탓에 비생산적인 오해를 사기도 했고, 실제로 아직도 그를 위인 중 하나로 꼽고 있지만, 글쎄 정치와는 별 무관한 삶을 살아왔다고 스스로 믿는 한 교사였을 뿐이다. 자식인 내가 이명박이 대통령 돼서는 안 된다고 안 된다고 길길이 뛰니까 대신 이회창을 찍은, 그런 TK 출신의 한 사람일 뿐이다.

어머니가 대구교대를 졸업하고 초등학교 선생님이 된 것은, 어쩌면 가난 때문이었다. 당시 교대는 2년제였고, 학비가 무료였다. 대신 졸업 후에는 반드시 몇 년 이상 교사로 근무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교사 인력이 부족했던 시절이라 그런 식으로 양성하려 했던 것 같다. 지금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이야기다. 학비가 무료인 대신 취업을 보장해 준다니! 하지만 그때는 가난하면서 성적이 곧잘 나오는 사람들이 교대를 많이 갔다고 했다.

대구에서 자란 어머니는 그렇게 해서 영주나 청송, 안동 등지에서 교사 생활을 시작했다. 내가 자라면서 수도권이나 서울로 집을 옮겼고, 서울교대 출신이 아니면 서울시내 학교로 갈 수 없는 현실 때문에 어머니는 경기권 학교에서 오래 교사 생활을 했다.

그래, 오늘은 어머니 이야기를 좀 해보려고 한다. 곽노현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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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어느 날이다. 퇴근을 하고 돌아오니 어머니가 내게 밥을 차려주시며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하나둘씩 이야기했다.

말벗이 필요하셨던 것일까. 그날 나는 같은 학년 선생님들 중 아무도 정신지체장애인 어린이를 맡으려 하지 않아 어머니가 결국 두 장애 어린이를 다 맡기로 했다는 이야기부터 교장과 교감이 쓸데없는 권위를 부린다는 이야기, 요즘 젊은 교사들은 책임감이 없다는 이야기, 5~6학년 학생들은 요즘 머리가 너무 커서 징그럽다는 이야기, 웬일인지 근래에는 하루종일 서서 수업을 하다보면 무릎이 자꾸 아프다는 이야기까지 오랜 시간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었다.

귀가 번쩍 뜨인 건 급식비 이야기였다.

당시 어머니 반에는 급식비를 내지 않는 학생이 10명 가까이 됐다. 종례 때마다 알림장에 '급식비'라고 쓰라고 알려주고, 썼는지 확인하고, 부모님께 보여드리라고, 내일은 꼭 급식비를 가져와야 한다고 하면 학생들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학교 서무실에서는 매달 급식비를 내지 않은 학생들의 명단을 전달하며 얼른 독촉하라고 성화지만, 어머니로서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아이가 깜박 잊어 급식비를 가져오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집에 돈이 없어서 급식비를 못 내는 것인지, 모질지 못한 어머니는 차마 묻지 못했다. 그렇다고 급식비를 내라고 학부모에게 전화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학생들에게 매번 차근차근 전달하는 수밖에 없었다. 학교에서는 급식비를 내지 않고 2~3달이 지나면 진짜 급식을 주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그럴 때면 아주 가끔씩 한두 달치 급식비를 어머니가 대신 내기도 했다. 그러나 매번 그럴 수는 없었다.

급식 3일째
by Seokzzang Yun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어느날은 굳게 마음을 먹고 오래 급식비를 내지 않은 아이 하나를 종례를 마치고 따로 불렀다.

"급식비를 오랫동안 안 가져왔는데, 너 잊어서 그런 거니, 아니면 집에 무슨 일이 있는 거니?"

아이는 엄마와 아빠가 돈 많이 벌어온다고 어디론가 떠났고, 지금 자신은 고모와 함께 살고 있다고, 그제서야 천진한 표정으로 말했다. 초등학교 2~3학년이 가난이라든가 급식비라든가 빚이라든가 그런 걸 얼마나 알겠는가. 그 아이는 엄마아빠가 보고 싶지만, 그래도 자신은 행복하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교사가 이 학생은 급식비를 낼 수 없는 가난한 학생이라고 미리 신청하고, 소정의 절차를 밟으면 아이는 앞으로 급식비를 내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제껏 내지 않은 급식비까지 모두 해결되는 건 아니다. 안 낸 급식비는 그대로 그 아이의 빚으로 남는 셈이다.

어머니는 이런 제도가 정말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콩나물 시루와 같은 교실에서 담임 선생님이 학생의 가정 형편까지 모두 알기란 불가능하고, 그렇다고 공개적으로 물어볼 수도 없다는 것이다. 공개적으로 묻는다고 학생들이 모두 자진해서 손을 드는 것도 아니다: 자기 집안의 형편에 대해 잘 모르는 학생들도 있고, 알더라도 답할 수 없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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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교사였던 시인 나희덕은 첫 시집에 실린 시 「한 그릇의 밥」에서 "한 그릇의 밥을 푸면서 / 한 알도 흘리지 말아야 하는 것이 교사, / 러는 발밑에 떨어진 것도 주워담아 / 제 입에 넣고 맛있게 씹을 일이다"라고 썼다. 농부가 곡식의 낟알을 소중히 하듯 교사들은 학생을 아끼는 것이다.

이들 밥알 하나하나에게 '한 그릇의 밥'을 그저 주어야 한다는 게 곽노현과 같은 '진보' 교육감들의 주장이자 공약이었다. 나는 내 어머니가 교육감 선거에서 누구를 찍었는지 모른다. 곽노현을 찍었는지 다른 후보를 찍었는지 아니면 이원희를 찍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곽노현의 주장과 공약이 실천되면 평범한 교사였던 어머니가 바랐던 교육 현장이 실현되리라고 생각한다. 한 그릇의 더운 밥 같은 교육현장 말이다.

RS5P5317
RS5P5317 by kwaknohyun 저작자 표시변경 금지

내 어머니는 연전에 무릎이 아파 계단을 잘 오르내리지 못하고, 오래 서 있지 못하게 된 탓이 명예퇴직했다. 퇴직 후 오래 근무했다고 정부로부터 무슨 표창을 받았는데, 내가 싫어하는 대통령의 이름이 적힌 그 표창장을 어머니는 오래 거실에 내걸었다.

나는 지금 그런 어머니를 이해한다. 자식인 나는 내 어머니가 교사로 일한 30여년에 대한 칭찬과 표창을 자랑스러워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머니가 못 이룬 교육의 꿈을 곽노현이, 그리고 제2, 제3의 곽노현이 이뤄가리라 믿는다.

중요한 것은 번역이다. 정부여당이 '무상급식'은 사회주의라고 색깔론으로 포장하면 내 어머니 같은 평범한 교사들은 때로 속아넘어갈 수도 있다. 우리반 아이들에게 그저('공짜로'나 '무상으로', '거저' 등의 말보다 '그저'가 더 교사들의 마음을 대변해준다고 생각한다) 더운 밥 한 그릇을 먹이는 것, 그게 '무상급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