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
<rss version="2.0">
  <channel>
    <title>엔디, 글쓰다</title>
    <link>https://endyecrit.tistory.com/</link>
    <description></description>
    <language>ko</language>
    <pubDate>Mon, 8 Jun 2026 16:50:39 +0900</pubDate>
    <generator>TISTORY</generator>
    <ttl>100</ttl>
    <managingEditor>엔디</managingEditor>
    <item>
      <title>걸그룹과 현자의 돌</title>
      <link>https://endyecrit.tistory.com/231</link>
      <description>&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최승희 PD가 연출한 KBS의 예능 프로그램 '본분 금메달'과 안준영 책임프로듀서가 맡은 M.net의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101'은 전혀 다른 구성을 하고 있지만 사실 본질은 같다. 이를테면 두 프로그램 사이의 간극은 딱 웃음과 눈물 사이의 간극과 같다. 요컨대 걸그룹은 웃음을 팔고 걸그룹 지망자들은 눈물을 파는 우리 시대를 그대로 반영한 프로그램들이다.&amp;nbsp;아니 방송사들이 자신의 프로그램을 통해 직접 웅변하는 대로 정확히 말하자면 이렇게 정정할 수 있겠다: &quot;걸그룹은 웃음을 &lt;b&gt;팔아야&lt;/b&gt; 하고, 걸그룹 지망자들은 눈물을 &lt;b&gt;빼앗겨야&lt;/b&gt;&amp;nbsp;한다.&quo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언론이 앞다퉈 보도한 내용이지만 굳이 반복하자면 '본분 금메달'은 &quot;걸그룹은 항상 이미지 관리에 힘써야 한다&quot;는 전제 아래 갑자기 바퀴벌레 모형을 내놓는다든지 해서 걸그룹을 놀래키고서는 그들의 놀란 모습을 재미있다는 듯 시청자들에게 &lt;a class=&quot;tx-link&quot; href=&quot;http://www.nocutnews.co.kr/news/4545469&quot; target=&quot;_blank&quot; rel=&quot;noopener&quot;&gt;전시&lt;/a&gt;한다. '프로듀스101'은 11인조 걸그룹을 만든다며 걸그룹 지망자들을 모았지만 출연료는 주지 않고 악의적인 편집에도 법적 대응을 할 수 없도록 계약을 맺은 사실이 &lt;a class=&quot;tx-link&quot; href=&quot;http://isplus.liv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9574426&amp;amp;cloc=&quot; target=&quot;_blank&quot; rel=&quot;noopener&quot;&gt;보도&lt;/a&gt;로 밝혀졌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걸그룹이라면 응당 항상 이미지 관리에 힘써야 한다는 '본분 금메달'이 주장하는 걸그룹의 '본분'은 매소賣笑다. 어떤 일이 있어도 눈물을 보이거나 얼굴을 찡그리거나 분노해서는 안 되고 웃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도 사람인지라 슬플 때는 울고 놀랐을 때는 얼굴을 찡그리고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는 화가 나겠지만 그래도 그들은 그러면 안 된다. 웃음이 아닌, 걸그룹의 다른 모든 감정은 반드시 감춰져야 한다. 그들의 '본분'은 웃음을 파는 것이기 때문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반면 걸그룹 지망자들의 '본분'은 웃음이 아니다. 그들에게도 걸그룹처럼 분명 웃음이 있겠지만 아직 그들의 웃음은 자본주의의 상품이 되지 못한다. 그들에게서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상품가치는 웃음이 아니라 눈물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들이 눈물을 팔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눈물을 빼앗긴다. 자본은 속삭인다: '네 눈물을 주렴, 그러면 너를 진짜 걸그룹으로 만들어줄게.' 진짜 걸그룹이 되는 사람은 이 프로그램에 출연한 101명 중 11명뿐이다. 심지어 방송사 제작진은 진짜 걸그룹이 되는 사람을 투표로 뽑는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유흥업소 접대를 받고 투표 결과를 조작한 것으로 &lt;a href=&quot;https://www.yna.co.kr/view/AKR20210311085151004&quot; target=&quot;_blank&quot; rel=&quot;noopener&quot;&gt;드러나기도&lt;/a&gt; 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이런 방송사들의 모습에서 사악한 연금술사, 이를테면 만화 스머프에 나오는 가가멜을 연상한다면 무리일까. 가가멜이 고양이의 수염과 스머프의 눈물을 재료로 황금을 만들려 하듯이 방송사들은 걸그룹의 웃음을 사들이고 지망자들의 눈물 방울을 수탈해 황금을 벌어들인다. 이를테면 저들의 웃음과 눈물은 '현자의 돌philosopher's stone'을 만들기 위한 연금술의 필수 재료인 셈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눈물을 팔던 걸그룹 지망자들 중 선택된 소수는 진짜 걸그룹이 될 기회를 얻겠지만 그래봐야 바뀌는 것은 별로 없다. 눈물을 빼앗기던 데서 웃음을 파는 데로 옮길 수 있을 따름이다. 세상에는 아직 눈물을 빼앗길 사람이 많고 웃음은 오래 팔 수 없기 때문이다.&lt;/p&gt;</description>
      <category>어느어릿광대의견해</category>
      <category>가가멜</category>
      <category>걸그룹</category>
      <category>눈물</category>
      <category>본분금메달</category>
      <category>안준영</category>
      <category>연금술사</category>
      <category>웃음</category>
      <category>최승희</category>
      <category>프로듀스101</category>
      <category>현자의돌</category>
      <author>엔디</author>
      <guid isPermaLink="true">https://endyecrit.tistory.com/231</guid>
      <comments>https://endyecrit.tistory.com/231#entry231comment</comments>
      <pubDate>Sun, 21 Feb 2016 08:17:14 +0900</pubDate>
    </item>
    <item>
      <title>후세를 위해 노무현의 치수를 잰 영화 '변호인'</title>
      <link>https://endyecrit.tistory.com/230</link>
      <description>&lt;p&gt;양우석 감독의 데뷔작인 영화 '변호인'은 성공한 영화다. 개봉한 지 불과 한 달여 만에 관객 수가 1000만 명을 넘어섰다.&amp;nbsp;&lt;span style=&quot;font-size: 9pt; line-height: 1.5;&quot;&gt;일반적인 서사 예술의 문법으로 봐도 변호인은 별다른 흠을 잡을 수 없는 영화다;&amp;nbsp;아니 흠을 잡을 필요가 없는 영화다.&amp;nbsp;&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line-height: 1.5;&quot;&gt;학벌이나 환경 때문에 인정받지 못하던 한 사내가 사회적인 성공을 거두고, 그 다음에 보다 의미있는 일을 위해 사회적인 성공을 저버리는 이야기.&amp;nbsp;&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line-height: 1.5;&quot;&gt;별로 새로울 것도 없다.&amp;nbsp;&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line-height: 1.5;&quot;&gt;굳이 작은 흠을 찾자면&amp;nbsp;&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line-height: 1.5;&quot;&gt;'속물 변호사' 송우석이 갑자기 '인권 변호사'가 되는 모습이 너무 급작스럽다는 점 정도가 될 것이지만&amp;nbsp;줄거리&amp;nbsp;자체는&amp;nbsp;&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line-height: 1.5;&quot;&gt;수백 번도 더 들어본,&amp;nbsp;매끈한 것이다.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line-height: 1.5;&quot;&gt;거&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line-height: 1.5;&quot;&gt;기&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line-height: 1.5;&quot;&gt;&amp;nbsp;노무현이라는 이름을 덧칠하는 순간 관객은&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line-height: 1.5;&quot;&gt;&amp;nbsp;구름처럼 몰렸다.&lt;/span&gt;&lt;/p&gt;&lt;p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none; float: none;&quot;&gt;&lt;span class=&quot;imageblock&quot; style=&quot;display: inline-block; width: 500px;  height: auto; max-width: 100%;&quot;&gt;&lt;img src=&quot;https://t1.daumcdn.net/cfile/tistory/227F653752EE8D8519&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t1.daumcdn.net%2Fcfile%2Ftistory%2F227F653752EE8D8519&quot; width=&quot;500&quot; height=&quot;712&quot; filename=&quot;poster.jpg&quot; filemime=&quot;image/jpeg&quot;/&gt;&lt;/span&gt;&lt;/p&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line-height: 1.5;&quot;&gt;지금까지&amp;nbsp;&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line-height: 1.5;&quot;&gt;&lt;a href=&quot;http://ko.wikipedia.org/wiki/대한민국의_영화_흥행_기록&quot; target=&quot;_blank&quot; class=&quot;tx-link&quot;&gt;관객 1000만 명을 넘은 한국 영화는 모두 9편&lt;/a&gt;이지만, 그 가운데 감독의 데뷔작이었던 작품은 변호인 하나뿐이다. 이런 사실은 변호인이 이만큼 성공한 것이 단지 영화가 좋아서는 아닐 것 같다는 의심이 들게 한다. 노무현을 그리는 어떤 정치적 상황에 기댄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lt;/span&gt;&lt;/p&gt;&lt;p&gt;제작자인 최재훈 위더스필름 대표는 &lt;a href=&quot;http://www.nocutnews.co.kr/news/1161436&quot; target=&quot;_blank&quot; class=&quot;tx-link&quot;&gt;노컷뉴스와 인터뷰&lt;/a&gt;에서 &quot;시나리오 작업을 할 때 전제조건이 '노 전 대통령의 색깔을 최대한 빼자'는 거였&quot;다고 밝히고 있고, &lt;a href=&quot;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1100&amp;amp;g_serial=789909&quot; target=&quot;_blank&quot; class=&quot;tx-link&quot;&gt;조이뉴스와 인터뷰&lt;/a&gt;에서 주연배우인 송강호도 언급했듯이 출연진도 영화 제작발표회에서 노 전 대통령의 이름을 거론하지 않았다. 하지만 여느 중학생들이 만해 한용운의 시 '알 수 없어요'에서&amp;nbsp;&quot;그칠 줄을 모르고 타는 나의 가슴은 누구의 밤을 지키는 약한 등불입니까?&quot;라는 싯귀에 밑줄을 긋고 태연히&amp;nbsp;'님'이라고 해답을 적듯이 사람들은 너나없이 변호인이라는 영화 제목 아래 밑줄을 긋고는 아무 의심 없이 노무현이라고 해답을 적었던 것이다.&lt;/p&gt;&lt;p&gt;감독도 배우들도 이내&amp;nbsp;그 '해답'에 화답했다. 양 감독은 &lt;a href=&quot;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01291441102&amp;amp;code=960401&quot; target=&quot;_blank&quot; class=&quot;tx-link&quot;&gt;경향신문과 인터뷰&lt;/a&gt;에서 왜 노 전 대통령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를 만들었느냐는 질문에 그가 청문회에서 보여줬던 모습과&amp;nbsp;1992년 3당합당 때의 기억 때문이라고 답했다. &lt;a href=&quot;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4/01/23/0200000000AKR20140123213400052.HTML?input=1179m&quot; target=&quot;_blank&quot; class=&quot;tx-link&quot;&gt;연합뉴스 보도&lt;/a&gt;에 따르면 출연진은 2014년 1월 23일&amp;nbsp;봉하마을을 방문해 노 전 대통령 묘소를 참배했고 송강호는 방명록에 &quot;영광이었습니다&quot;라고 적었다.&lt;/p&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line-height: 1.5;&quot;&gt;제작진과 출연진은 이런 태도는&amp;nbsp;&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line-height: 1.5;&quot;&gt;마치 변죽만 열심히 때리면서 관객이 직접 복판을 울리기를 기다린 것처럼 보인다. 한가운데는 놓아두고 둘레만 애무하는 것 같은 모양새다.&amp;nbsp;의도한 것이라면 뛰어난&amp;nbsp;마케팅이다.&amp;nbsp;&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line-height: 1.5;&quot;&gt;홍문종 새누리당 사무총장조차&amp;nbsp;&lt;/span&gt;&lt;a href=&quot;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01241526301&amp;amp;code=910402&quot; target=&quot;_blank&quot; class=&quot;tx-link&quot; style=&quot;font-size: 9pt; line-height: 1.5;&quot;&gt;&quot;변호인은 픽션 드라마이지 논픽션 드라마가 아니다&quot;&lt;/a&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line-height: 1.5;&quot;&gt;라고 발언해&amp;nbsp;영화사의 이런 마케팅에 도움을 준 셈이 됐다.&lt;/span&gt;&lt;/p&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line-height: 1.5;&quot;&gt;영화평론가 허지웅은 &lt;/span&gt;&lt;a href=&quot;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mp;amp;code=116&amp;amp;artid=201312241448311&amp;amp;pt=nv&quot; target=&quot;_blank&quot; class=&quot;tx-link&quot; style=&quot;font-size: 9pt; line-height: 1.5;&quot;&gt;주간경향에 실은 글&lt;/a&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line-height: 1.5;&quot;&gt;에서 &quo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line-height: 1.5;&quot;&gt;변호인&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line-height: 1.5;&quot;&gt;을 감상하는 데 있어 가장 큰 단점은 영화 외부로부터 발견된다&quot;면서 변호인의 단점으로 '일베'의 존재와 '열성 노무현 팬덤'의 존재를 들었다. 영화는 충분히 재미있고 잘 만들어졌지만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line-height: 1.5;&quot;&gt;영화 바깥의 '어른의 사정'이 걱정된다는 뜻으로 읽힌다. 그러나 사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line-height: 1.5;&quot;&gt;&amp;nbsp;일베의 존재와 열성 노무현 팬덤의 존재는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line-height: 1.5;&quot;&gt;이미 변호인이 보유한 상업적&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line-height: 1.5;&quot;&gt;&amp;nbsp;장점이다.&amp;nbsp;&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line-height: 1.5;&quot;&gt;그리고 '어른의 사정'은 이미 영화 속에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line-height: 1.5;&quot;&gt;있다.&lt;/span&gt;&lt;/p&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line-height: 1.5;&quot;&gt;변호인에서 가장 중심이자 영화의 클라이막스가 되는 부분은 역시 재판이다. 조선일보는 부림사건을 수사했던 &lt;a href=&quot;http://media.daum.net/culture/book/newsview?newsid=20140112122304488&quot; target=&quot;_blank&quot; class=&quot;tx-link&quot;&gt;고영주 당시 부산지검 공안검사와의 인터뷰&lt;/a&gt;를 통해 영화 변호인이 실제 사건과 얼마나 달랐는지를 하나하나 지목하려 했고, 한겨레는 &lt;a href=&quot;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617377.html&quot; target=&quot;_blank&quot; class=&quot;tx-link&quot;&gt;부림사건 피해자들인 고호석 씨와 송병곤 씨와의 인터뷰&lt;/a&gt;에서 영화 변호인이 얼마나 실제 사건과 비슷한지를 보여주려 했다.&lt;/span&gt;&lt;/p&gt;&lt;p&gt;여기서 중요한 것은 부림사건이 실제 변호인과 얼마나 같고 얼마나 다른가가 아니다. 실제 부림사건에서 문제가 됐던 책이 E. 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였든 무타이 리사쿠의 '현대의 휴머니즘'이었든, 내부고발자 군의관이 있었든 없었든, 국밥집 아들의 모델이 한 사람이든 두 사람이든 별로 상관 없다.&amp;nbsp;그 정도의 각색은 여느 영화에서나 다 찾아볼 수 있다.&amp;nbsp;&lt;span style=&quot;font-size: 9pt; line-height: 1.5;&quot;&gt;하지만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line-height: 1.5;&quot;&gt;노무현의 색깔을 최대한 빼려고 노력했다는 이 영화에서 노무현에 대한 미화가 있었다면 얘기가 다르다.&lt;/span&gt;&lt;/p&gt;&lt;p&gt;문학평론가 유종호(1998, 21-28)는&amp;nbsp;프랑스 시인 자끄&amp;nbsp;프레베르의 시 '위대한 사람'을 인용하면서 전기(자서전)을 고쳐 쓰는 일의 허영심을 지적한다. &quot;내가 그를 만났던/ 돌 깎는 사람 집에서/ 그는 후세를 위하여/ 제 몸의 치수를 재고 있었다&quot;는 '위대한 사람'처럼&amp;nbsp;제 몸의 치수 재기를 위해 자꾸 과거를 윤색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amp;nbsp;&lt;span style=&quot;font-size: 9pt; line-height: 1.5;&quot;&gt;그러면서 유종호는 염상섭 만세전의 해방 이전 판본과 해방 이후 판본의 비교를 시도한다:&lt;/span&gt;&lt;/p&gt;&lt;blockquote class=&quot;tx-quote-tistory&quot;&gt;&lt;p&gt;&quot;요보말씀예요? 젊은 놈들은, 그래도 제법들이지만, 촌에 들어가면 대만의 생번(生蕃)보다 낫다면 나흘까, 인제 가서 보슈…… 하하하,&quot;&lt;/p&gt;&lt;p&gt;'대만의 생번'이란 말에, 그 욕탕에 들어 앉었든 사람들이, 나만 빼어놓고는 모다 킥킥 웃었다. 나는 가만히 앉었다가 무심코 입살을 악물고 치어다 보았으나, 더운 김에 가리워서, 궐자(厥者)들에게는 자세히 보이지 않은 모양이었다. 사실말이지, 나는 그 우국의 지사는 아니다. 자기가 망국민족의 일분자이라는 사실은 자기도 간혹은 명료히 의식하는 바요, 따라서 고통을 감(感)하는 때가 없는 것은 아니나……&lt;/p&gt;&lt;/blockquote&gt;&lt;p&gt;유종호는 이렇게 1924년판 만세전을 인용해놓고 1948년판과 비교하면서 &quot;검열당국에겐 거슬리는 말이지만 그대로 나와 있고, 제4텍스트(1948년판)에서도 크게 바뀐 것은 없다&quot;고 평가한다. 바꿔 말하면 해방 이전에도 할 말을 다 했고, 해방 이후에도 우국지사였던 양 윤색하지 않았다는 뜻이다.&lt;/p&gt;&lt;p&gt;그렇다면 이런 문장들은 어떨까: &quot;증인이 말하는 국가는 이 나라 정권을 강제로 찬탈한 일부 군인들, 그 사람들 아니야?&quot; &quot;니는 애국자가 아이고, 죄 없고 선량한 국가를 병들게 하는 버러지고 군사정권의 하수인일 뿌이야.&quot;&lt;/p&gt;&lt;p&gt;부림사건의 희생자들이 당시 변호인이었던 노무현 변호사가 판사와 싸웠다는 증언을 하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amp;nbsp;신군부의 서슬이 퍼렇던 1981년에, 모든 발언이 속기로 기록되는 재판장에서 노무현이 저런 단어까지 썼을까 하는 의문은 남는다. 이런 발언은 이 영화가 1981년이 아니라 2013년에 개봉했기 때문에 가능했을 대사이기가 쉽다. (더구나 극중 송우석은, 국밥집 난동 신에서 보듯, 저런 종류의 의식은 찾아볼 수 없는 인물이다.)&lt;/p&gt;&lt;p&gt;그렇다면 이 영화는 위험하다. 노무현은 분명 20세기말에서 21세기초 한국 사회의 한 문제적 개인이지만, '후세'가 알아서 그 몸의 치수를 다시 재서 윤색하는&amp;nbsp;것은 그 자신을 위해서도 나쁘다.&lt;/p&gt;&lt;p&gt;이 작품이 만약 부림 사건 재판이라는 시공간을 이용해 신군부 초기의 어떤 시대적 진실을 내보이려 했다면 일부 각색이 있었더라도 대체로 좋은 영화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변호인은 부림사건으로 끝맺지 않고 1987년 노무현에 대한 구속적부심에서 변호사 99명이 공동변호인단을 꾸린 장면을 마지막으로 하고 있다.&lt;/p&gt;&lt;p&gt;양 감독은 이런 결말에 대해 &quot;송우석이 7년 뒤에도 변함이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다&quot;고 이유를 밝혔지만, 이 부분도 이 영화가 '부림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가 아니라 노무현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임을 드러내 주는 대목이다. 이 영화는 노무현의 색깔을 뺀 영화가 아니라 속속들이 노무현의 색깔로 채워진 영화다.&lt;/p&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line-height: 1.5;&quot;&gt;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전기영화는 대체로 흥행을 위해서 많은 사실을 각색하거나 윤색하고서는 영화 바깥에서는 '이 영화는 실화'라고 광고하는 이중적인 행태를 보인다. 그러나 사실은 사실 그대로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 노무현은 부림 사건을 나서서 맡고 재판장에서 열심히 싸운 것만으로 이미 훌륭한 변호사다. 적어도 그 시점 그 공간에서 노무현이라는 개인은 하나의 완성된 작품이다. 거기에 대한 덧칠이나 개칠은 오히려 그 작품을 훼손하는 일이 될 성 싶다.&lt;/span&gt;&lt;/p&gt;&lt;p&gt;참고문헌:&lt;/p&gt;&lt;p&gt;유종호. 1998. 문학이란 무엇인가. 서울:민음사. 증보판.&lt;/p&gt;&lt;p&gt;&lt;a href=&quot;http://slownews.kr/18686&quot; target=&quot;_blank&quot; class=&quot;tx-link&quot;&gt;슬로우뉴스&lt;/a&gt;에 실린 글.&lt;/p&gt;</description>
      <category>극장전</category>
      <category>각색</category>
      <category>고영주</category>
      <category>노무현</category>
      <category>변호인</category>
      <category>봉하마을</category>
      <category>부림</category>
      <category>부림사건</category>
      <category>송강호</category>
      <category>송우석</category>
      <category>양우석</category>
      <category>역사란 무엇인가</category>
      <category>영화</category>
      <category>최재훈</category>
      <category>허지웅</category>
      <category>현대의 휴머니즘</category>
      <category>홍문종</category>
      <author>엔디</author>
      <guid isPermaLink="true">https://endyecrit.tistory.com/230</guid>
      <comments>https://endyecrit.tistory.com/230#entry230comment</comments>
      <pubDate>Tue, 4 Feb 2014 08:30:00 +0900</pubDate>
    </item>
    <item>
      <title>노동으로의 삼투, 문학으로의 귀환: 송경동의 산문</title>
      <link>https://endyecrit.tistory.com/228</link>
      <description>&lt;p&gt;“시에서 돈 냄새가 났으면 좋겠다”고 최영미 시인은 말했지만, 송경동의 시에서는 무슨 냄새가 날까.&lt;/p&gt;
  &lt;p&gt;광주천을 붉다고 쓴 시 때문에 얻어맞아 얼얼한 볼을 한 채로 맡은 봄 향기일까, 눅눅한 잡부 숙소의 때 절은 이부자리에서 나는 피 섞인 정액 냄새일까, 아니면 가끔 비정규직 일터인 지하로 내려오던 어느 아름다운 정규직 여 직원에게서 끼쳐오던 향수 냄새일까, 그도 아니면 아들과 놀이터 삼아 가던 사우나의 수증기 냄새일까.&lt;/p&gt;
  &lt;p&gt;『꿈꾸는 자 잡혀간다』는 운문의 제약에서 벗어나 비교적 자유롭게 쓰인 그의 줄글을 모은 책이다. 시집 속에서 그는 어쩔 수 없는 시인이었지만, 이 산문 속에서 그는 시인이기도 하고 시인이 아니기도 하다. 시인이 아닐 때 그는 노동자이자 투사이기도 하지만, 아버지이자 남편이자 아들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그는 아주 견고한 성벽을 쌓고 있는 그의 시집에서와 달리, 여기서 무방비 상태로 자신을 내보인다.&lt;/p&gt;
  &lt;p&gt;가령 학생들이 별 생각 없이 광주천을 붉다고, 날개를 달고 이 땅을 떠나고 싶다고 쓴 시를 공안 검사의 눈으로 바라보던 교감 선생님과 문예반 선생님의 ‘취조’ 사건은 그의 시에서였다면 단단한 껍데기에 싸여 고정돼 있었겠지만 여기서는 오히려 ‘핸드헬드카메라’처럼 흔들흔들, 거칠게 그려진다.&lt;/p&gt;&lt;p&gt;&lt;table class=&quot;flickrImgSearch&quot;&gt;&lt;tbody&gt;&lt;tr&gt;&lt;td&gt;&lt;a href=&quot;http://www.flickr.com/photos/8055436@N08/4249969239&quot; title=&quot;_IMG_4415&quot; target=&quot;_blank&quot;&gt;&lt;img src=&quot;http://farm5.static.flickr.com/4019/4249969239_b8ea47c07a.jpg&quot; width=&quot;450&quot; alt=&quot;_IMG_4415&quot; style=&quot;border: 0; padding-bottom: 7px;&quot;&gt;&lt;/a&gt;&lt;br /&gt;&lt;span&gt;_IMG_4415 by &lt;a href=&quot;http://www.flickr.com/photos/8055436@N08&quot; target=&quot;_blank&quot;&gt;redslmdr&lt;/a&gt;&lt;/span&gt; &lt;a href=&quot;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sa/2.0/kr/&quot; target=&quot;_blank&quot; style=&quot;width:450px; padding-top: 7px;&quot;&gt;&lt;img class=&quot;tix-ccl-by&quot; src=&quot;http://i1.daumcdn.net/cfs.tistory/static/admin/editor/ccl_black01.png&quot; alt=&quot;저작자 표시&quot; width=&quot;15&quot; height=&quot;15&quot; style=&quot;vertical-align: middle; margin-right: 1px; border: 0;&quot;&gt;&lt;img class=&quot;tix-ccl-nc&quot; src=&quot;http://i1.daumcdn.net/cfs.tistory/static/admin/editor/ccl_black02.png&quot; alt=&quot;비영리&quot; width=&quot;15&quot; height=&quot;15&quot; style=&quot;vertical-align: middle; margin-right: 1px; border: 0;&quot;&gt;&lt;img class=&quot;tix-ccl-sa&quot; src=&quot;http://i1.daumcdn.net/cfs.tistory/static/admin/editor/ccl_black04.png&quot; alt=&quot;동일조건 변경허락&quot; width=&quot;15&quot; height=&quot;15&quot; style=&quot;vertical-align: middle; margin-right: 1px; border: 0;&quot;&gt;&lt;/a&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p&gt;&lt;p&gt;내가 그를 처음 본 것은 ‘용산 참사’ 현장인 남일당 빌딩이었다. 차디찬 겨울, 온기조차 느껴지지 않는 모닥불 곁에서 그는 성명 같은 시를 읽었다. 도무지 시 같이 느껴지지 않았고, 어쩐지 어색하게도 뭉툭한 모습이었다. 추위에 내가 너무 얼어 있었기 때문일까.&lt;/p&gt;
  &lt;blockquote&gt;   &lt;p&gt;다시 참 쓸쓸한 겨울 공화국이다. 언론의 입에 재갈이 물리고, 사람들의 양심은 얼어붙고, 광장은 봉쇄당하고 있다. 가난한 사람들은 더욱 보수화되고, 가진 자들은 인면수심의 짐승이 되어가고 있다. 사회가 닫혀가고 있다.&lt;/p&gt;
    &lt;p&gt;-「시대의 망루, 용산」&lt;/p&gt;
 &lt;/blockquote&gt;  &lt;p&gt;그러다 창비에서 나온 시집이 눈에 띄었고, 그 시집에서 그는 좀더 단단한 사고의 언어를 보여주고 있었다.&lt;/p&gt;
  &lt;p&gt;어쩌면 남일당 빌딩 앞에서 들었던 시와 같은 시였는지도 모르지만, 시집 속에 정련된 활자는 적어도 말들을 더욱 단단하게 보이게 하는 재주가 있는지도 모른다. 브레히트나 엘뤼아르의 어떤 번역시들을 연상하게 하는 그의 시는 세련되지 않은 매력이 있었다.&lt;/p&gt;
  &lt;p&gt;말하자면 백무산처럼 강하지 않으면서 단단하고, 박노해처럼 비장하지 않으면서 쓸쓸했다.&lt;/p&gt;
  &lt;blockquote&gt;   &lt;p&gt;자꾸 뭔가를 잃어버렸다는 생각이 든다     &lt;br /&gt;
오래 묵은 전화번호부를 뒤적거려봐도      &lt;br /&gt;
진보단체 사이트를 이리저리 뒤져봐도      &lt;br /&gt;
(…)      &lt;br /&gt;
분명히 내가 잃어버린 게 한가지 있는 듯한데      &lt;br /&gt;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잘 생각나지 않는다&lt;/p&gt;
    &lt;p&gt;-「혁명」&lt;/p&gt;
 &lt;/blockquote&gt;  &lt;p&gt;그리고 이번 산문집에서 그는 뭉툭하지도 단단하지도 않은 말랑말랑하고 흔들거리는 자신의 모습을 여과없이 드러내는 것이다. 그는 영웅도 위인도 아니었고, 평범한 사람이거나 어쩌면 그보다 더 못한 사람이었다. 꿈과 희망을 품고 있지만, 한 때는 욕망에 매몰됐던 사람이었다.&lt;/p&gt;
  &lt;blockquote&gt;   &lt;p&gt;일을 받지 못한 날은 힘이 쭉 빠졌다.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생활이기에 타격이 컸다. 생활의 타격보다 일조차 할 수 없는 인생이라는 설움이 자학의 늪으로 청년을 끌어당겼다. 그런 날이면 청년은 텅 빈 잡부 숙소에 누워 종일 몇 번씩이고 자위를 하곤 했다. 어떤 땐 허물이 벗겨진 그곳에서 핏물이 배어 나오기도 했다.&lt;/p&gt;
    &lt;p&gt;-「그 잡부 숙소를 잊지 못한다」&lt;/p&gt;
 &lt;/blockquote&gt;  &lt;p&gt;그러나 그 말랑말랑함은 책을 읽어나갈수록 조금씩 뼈를 얻어간다.&lt;/p&gt;
  &lt;p&gt;1부~5부의 소제목으로 말하자면, ‘꿈꾸는 청춘’ ‘가난한 마음들’에서 물렁거렸던 것들이 ‘이상한 나라’에서 굳고, ‘잃어버린 신발’을 거쳐 ‘CT85호와 희망버스’에서는 점차 우리가 아는 송경동의 얼굴로 빚어진다.&lt;/p&gt;
  &lt;p&gt;이를테면 우리는 우리가 아는 그의 얼굴을 대하면서 조금씩 마음이 놓인다.&lt;/p&gt;
  &lt;blockquote&gt;   &lt;p&gt;2003년 6월 11일, 김주익은 최후의 결단을 한다. 폭우가 쏟아지는 새벽, 혼자 100톤짜리 지브 크레인, 35미터 상공의 ‘85호 크레인’으로 올라갔다. ‘나의 무덤은 85호 크레인이다. 너희가 내 목숨을 달라고 하면 기꺼이 바치겠다’라는 절박한 호소였다. 하지만 그 결의를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다. 경찰은 공권력을 수시로 투입했고, 국민의 정부를 넘어 참여정부라는 정권 역시 ‘죽음이 투쟁의 수단이 되는 시대는 지났다’고 못 박았다. 힘을 받은 사측은 김주익이 목숨을 걸고 크레인에 올라 있는 동안에 단 한 번도 교섭에 나오지 않았다.&lt;/p&gt;
    &lt;p&gt;(…)&lt;/p&gt;
    &lt;p&gt;2011년 1월 6일 새벽 3시. 한 늙은 여성노동자가 김주익의 영혼이 아직 내려오지 못하고 있는 85호 크레인의 차가운 난간을 붙잡고 올랐다. 사측이 정리해고 명단을 발표하기 전날이었다.&lt;/p&gt;
    &lt;p&gt;-「김진숙과 ‘85호 크레인’」&lt;/p&gt;
 &lt;/blockquote&gt;  &lt;p&gt;그래, 여기서 우리는 ‘구속당한 시인’인 송경동의 얼굴을 비로소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추도시 낭독이 폭력 행위가 되는 나라에서 그는 시인 직함을 단 투사로 우리에게 기억되고 있는 셈이다.&lt;/p&gt;
  &lt;p&gt;하지만 누가 내게 이 산문집의 매력이 어디에 있느냐고 묻는다면 1부와 2부의 글을 읽어줄 것이다. 그가 투사나 시인이 아니라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는 걸 안다는 것은 무척 중요하기 때문이다.&lt;/p&gt;
  &lt;p&gt;자, 다시 그의 시에서는 무슨 냄새가 날까. 어쩌면 아무 냄새도 안 나지 않을까. 왜냐하면 자기 자신의 냄새는 아무도 맡지 못할 테니까 말이다.&lt;/p&gt;
&lt;p&gt;&lt;/p&gt;
&lt;table&gt;
&lt;tbody&gt;&lt;tr style=&quot;padding-top: 0px; padding-right: 0px; padding-bottom: 0px; padding-left: 0px; margin-top: 0px; margin-right: 0px; margin-bottom: 0px; margin-left: 0px; font-size: 12px; line-height: 1.5em; color: rgb(51, 51, 51); word-break: break-all; &quot;&gt;
&lt;td style=&quot;padding-top: 0px; padding-right: 0px; padding-bottom: 0px; padding-left: 0px; margin-top: 0px; margin-right: 0px; margin-bottom: 0px; margin-left: 0px; font-size: 12px; line-height: 1.5em; color: rgb(51, 51, 51); word-break: break-all; &quot;&gt;&lt;a href=&quot;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9206681&amp;amp;ttbkey=ttbstryperz1040003&amp;amp;COPYPaper=1&quot; style=&quot;text-decoration: none; color: black; font-weight: normal; background-color: transparent; &quot;&gt;&lt;img src=&quot;http://image.aladin.co.kr/product/1424/24/coversum/8939206681_1.jpg&quot; alt=&quot;&quot; border=&quot;0&quot; style=&quot;border-top-width: 0px; border-right-width: 0px; border-bottom-width: 0px; border-left-width: 0px; border-style: initial; border-color: initial; padding-top: 0px; padding-right: 0px; padding-bottom: 0px; padding-left: 0px; margin-top: 0px; margin-right: 0px; margin-bottom: 0px; margin-left: 0px; &quot;&gt;&lt;/a&gt;&lt;/td&gt;
&lt;td align=&quot;left&quot; style=&quot;padding-top: 0px; padding-right: 0px; padding-bottom: 0px; padding-left: 0px; margin-top: 0px; margin-right: 0px; margin-bottom: 0px; margin-left: 0px; font-size: 12px; line-height: 1.5em; color: rgb(51, 51, 51); word-break: break-all; vertical-align: top; &quot;&gt;&lt;a href=&quot;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9206681&amp;amp;ttbkey=ttbstryperz1040003&amp;amp;COPYPaper=1&quot; class=&quot;aladdin_title&quot; style=&quot;text-decoration: none; color: black; font-weight: normal; background-color: transparent; &quot;&gt;꿈꾸는 자 잡혀간다&lt;/a&gt;&amp;nbsp;-&amp;nbsp;&lt;img src=&quot;http://image.aladin.co.kr/img/common/star_s8.gif&quot; border=&quot;0&quot; alt=&quot;8점&quot; style=&quot;border-top-width: 0px; border-right-width: 0px; border-bottom-width: 0px; border-left-width: 0px; border-style: initial; border-color: initial; padding-top: 0px; padding-right: 0px; padding-bottom: 0px; padding-left: 0px; margin-top: 0px; margin-right: 0px; margin-bottom: 0px; margin-left: 0px; &quot;&gt;&lt;br /&gt;
송경동 지음/실천문학사&lt;/td&gt;
&lt;/tr&gt;
&lt;/tbody&gt;&lt;/table&gt;
&lt;p&gt;&lt;/p&gt;</description>
      <category>타오르는책</category>
      <category>김주익</category>
      <category>김진숙</category>
      <category>꿈꾸는 자 잡혀간다</category>
      <category>노동</category>
      <category>문학</category>
      <category>산문</category>
      <category>송경동</category>
      <category>시인</category>
      <category>실천문학사</category>
      <category>용산</category>
      <category>희망버스</category>
      <author>엔디</author>
      <guid isPermaLink="true">https://endyecrit.tistory.com/228</guid>
      <comments>https://endyecrit.tistory.com/228#entry228comment</comments>
      <pubDate>Tue, 20 Dec 2011 14:50:34 +0900</pubDate>
    </item>
    <item>
      <title>오매와 오오미: 정치와 말</title>
      <link>https://endyecrit.tistory.com/226</link>
      <description>&lt;p&gt;언어의 조탁에 관심이 많았던 시문학 동인 시인 &lt;a href=&quot;http://ko.wikipedia.org/wiki/%EA%B9%80%EC%98%81%EB%9E%91&quot;&gt;김영랑&lt;/a&gt;은 『영랑시집』에 실린 시 「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에서 가을이 깊어가는 시절에 대한 감탄이 담긴 누이의 한 마디를 고스란히 옮겨놓았다.&lt;/p&gt;
  &lt;p&gt;내용으로만 보면 이 작품은 전적으로 그 누이의 말이 계기가 되어 쓰여진 작품으로 보이는데, 첫 연의 시작과 두 연의 마지막에서 똑같이 반복되는 그 한 마디가 시의 발단과 절정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lt;/p&gt;
  &lt;blockquote&gt;   &lt;p&gt;「오-매 단풍들것네」     &lt;br /&gt;
장광에 골불은 감닙 날러오아      &lt;br /&gt;
누이는 놀란듯이 치어다보며      &lt;br /&gt;
「오-매 단풍들것네」&lt;/p&gt;
    &lt;p&gt;추석이 내일모레 기둘니리     &lt;br /&gt;
바람이 자지어서 걱졍이리      &lt;br /&gt;
누이의 마음아 나를보아라      &lt;br /&gt;
「오-매 단풍들것네」&lt;/p&gt;
    &lt;p&gt;- 김영랑, 「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전문&lt;/p&gt;
 &lt;/blockquote&gt;  &lt;p&gt;&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quot;&gt;&lt;img src=&quot;https://t1.daumcdn.net/cfile/tistory/172CFE4F4DBCFFEC21&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t1.daumcdn.net%2Fcfile%2Ftistory%2F172CFE4F4DBCFFEC21&quot; width=&quot;500&quot; height=&quot;375&quot; alt=&quot;「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 시비&quot; filename=&quot;cfile7.uf@172CFE4F4DBCFFEC21B8B0.jpg&quot; filemime=&quot;&quot;/&gt;
  &lt;p class=&quot;cap1&quot;&gt;http://blog.daum.net/kdk99/17951751 CC-by-nc-nd 골든모티브&lt;/p&gt;
&lt;/div&gt;

&lt;/p&gt;
&lt;p&gt;강희숙 조선대 교수의 &lt;a href=&quot;http://www.chosun.ac.kr/~hskang/dia/%EC%A0%84%EB%9D%BC%EB%8F%84%EC%96%B8%EC%96%B4/%EC%98%A4%EB%A9%941.htm&quot;&gt;전라도의 언어 11: “오메 단풍 들것네”&lt;/a&gt;에 따르면 호남 사투리에서 ‘오매’, ‘오메’ 또는 ‘워매’는 표준어의 ‘어머’ 또는 ‘어마’에 해당하는 감탄사이다. 그러나 ‘어머’와 ‘오-매’의 말맛語感은 완연히 다르다. ‘어머’가 다소 깍쟁이 같거나 여우 같은 느낌이라면 ‘오-매’는 그 길이와 억양까지 능청스럽고 천연덕스러운 느낌을 준다.&lt;/p&gt;
  &lt;p&gt;그러니까 영랑의 누이가 서울 사람이었다면 짧은 소리로 ‘어머 단풍 들겠네’ 했을 것이다. 하지만 ‘어머 단풍 들겠네’를 들었을 때의 심정이 ‘오-매 단풍 들것네’를 들었을 때의 심정과 같을 수는 없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뒤엣것이 그야말로 단풍에 대한 감탄처럼 느껴진다면 앞엣것은 단풍이 드니 어디 여행을 가야겠다거나, 사진을 찍어야겠다거나 아니면 집앞을 쓸어야겠다는 다짐—이를테면 ‘어머 비 오겠네’처럼—으로 느껴진다.&lt;/p&gt;
  &lt;p&gt;그러니까 영랑의 누이가 서울 사람이었다면 어쩌면 영랑은 누이의 말에서 아무런 시적 감흥을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고, 우리는 영랑의 뛰어난 이 시를 갖지 못했을 수도 있다. 다시 말해, 한국 문학은 영랑 누이의 ‘오-매’에 많은 빚을 지고 있다.&lt;/p&gt;
  &lt;p&gt;전라도 사람들을 비하하는 말로 ‘&lt;a href=&quot;http://mirror.enha.kr/wiki/%EC%98%A4%EC%98%A4%EB%AF%B8#s-2&quot;&gt;오오미&lt;/a&gt;’가 쓰인다고 한다. 말이란 본래 누구나 쓰는 것이므로 오염되는 일이 많지만, 정지용과 더불어 가장 아름다운 언어로 한국어를 가꿨던 영랑의 주요 시어가 누군가를 낮잡아 일컫는 데 쓰인다는 사실이 씁쓸하다.&lt;/p&gt;
  &lt;p&gt;특히 그 쓴 맛이 더한 것은, 저 비하의 표현에 정치가 개입돼 있기 때문이다. 정치란 본래 말과 수사의 가장 치열한 한 극단이므로 그 말이 거칠 수밖에 없지만, ‘오오미’는 스스로 뜻signifié을 잃고 모양새signifiant만 남아 언어라는 기호의 상징성을 잃었기 때문이다.&lt;/p&gt;
  &lt;p&gt;정치로 떨어져버린 언어는 회생 가능성이 거의 없다. 그 말은 이제 붉은 점멸 신호등과 같다. 같은 지시만 반복할 뿐인 그 신호등을 운전자들은 아무런 주의도 기울이지 않고 지나친다.&lt;/p&gt;</description>
      <category>어느어릿광대의견해/그말이잎을물들였다</category>
      <category>강희숙</category>
      <category>김영랑</category>
      <category>김윤식</category>
      <category>누이의마음아나를보아라</category>
      <category>말</category>
      <category>방언</category>
      <category>사투리</category>
      <category>시</category>
      <category>어마</category>
      <category>어머</category>
      <category>오매</category>
      <category>오매단풍들것네</category>
      <category>오메</category>
      <category>오오미</category>
      <category>워매</category>
      <category>워메</category>
      <category>전라도</category>
      <category>정치</category>
      <category>지역감정</category>
      <category>지역주의</category>
      <category>호남</category>
      <author>엔디</author>
      <guid isPermaLink="true">https://endyecrit.tistory.com/226</guid>
      <comments>https://endyecrit.tistory.com/226#entry226comment</comments>
      <pubDate>Sun, 1 May 2011 15:45:29 +0900</pubDate>
    </item>
    <item>
      <title>어머니와 무상급식</title>
      <link>https://endyecrit.tistory.com/224</link>
      <description>&lt;div class=&quot;xhtmlEditorBody&quot;&gt;
&lt;p&gt;경북 구미의 선산이 고향인 내 어머니는 아주 평범한 초등학교 선생님이었다. 다까기 마사오&lt;span&gt;高木正雄&lt;/span&gt;와 동향인 탓에 비생산적인 오해를 사기도 했고, 실제로 아직도 그를 위인 중 하나로 꼽고 있지만, 글쎄 정치와는 별 무관한 삶을 살아왔다고 스스로 믿는 한 교사였을 뿐이다. 자식인 내가 이명박이 대통령 돼서는 안 된다고 안 된다고 길길이 뛰니까 대신 이회창을 찍은, 그런 TK 출신의 한 사람일 뿐이다.&lt;/p&gt;
&lt;p&gt;어머니가 대구교대를 졸업하고 초등학교 선생님이 된 것은, 어쩌면 가난 때문이었다. 당시 교대는 2년제였고, 학비가 무료였다. 대신 졸업 후에는 반드시 몇 년 이상 교사로 근무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교사 인력이 부족했던 시절이라 그런
식으로 양성하려 했던 것 같다. 지금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이야기다. 학비가 무료인 대신 취업을 보장해 준다니! 하지만 그때는
가난하면서 성적이 곧잘 나오는 사람들이 교대를 많이 갔다고 했다.&lt;br /&gt;
&lt;/p&gt;
&lt;p&gt;대구에서 자란 어머니는 그렇게 해서 영주나 청송, 안동 등지에서 교사 생활을 시작했다. 내가 자라면서&amp;nbsp;수도권이나 서울로 집을 옮겼고, 서울교대 출신이 아니면 서울시내 학교로 갈 수 없는 현실 때문에 어머니는 경기권 학교에서 오래 교사 생활을&amp;nbsp;했다.&lt;/p&gt;
&lt;p&gt;그래, 오늘은 어머니 이야기를 좀 해보려고 한다. 곽노현 때문이다.&lt;/p&gt;
&lt;p&gt;1&lt;/p&gt;
&lt;p&gt;몇 년 전 어느 날이다. 퇴근을 하고 돌아오니 어머니가 내게 밥을 차려주시며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하나둘씩 이야기했다.&lt;/p&gt;
&lt;p&gt;말벗이 필요하셨던 것일까. 그날 나는 같은 학년 선생님들 중 아무도 정신지체장애인 어린이를 맡으려 하지 않아 어머니가 결국 두 장애 어린이를 다 맡기로 했다는 이야기부터 교장과 교감이 쓸데없는 권위를 부린다는 이야기, 요즘 젊은 교사들은 책임감이 없다는 이야기, 5~6학년 학생들은 요즘 머리가 너무 커서 징그럽다는 이야기, 웬일인지 근래에는 하루종일 서서 수업을 하다보면 무릎이 자꾸 아프다는 이야기까지 오랜 시간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었다.&lt;/p&gt;
&lt;p&gt;귀가 번쩍 뜨인 건 급식비 이야기였다.&lt;/p&gt;
&lt;p&gt;당시 어머니 반에는 급식비를 내지 않는 학생이 10명 가까이 됐다. 종례 때마다 알림장에 '급식비'라고 쓰라고 알려주고, 썼는지 확인하고, 부모님께 보여드리라고, 내일은 꼭 급식비를 가져와야 한다고 하면 학생들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학교 서무실에서는 매달&amp;nbsp;급식비를 내지 않은 학생들의 명단을 전달하며 얼른 독촉하라고 성화지만, 어머니로서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lt;/p&gt;
&lt;p&gt;아이가 깜박 잊어 급식비를 가져오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집에 돈이 없어서 급식비를 못 내는 것인지, 모질지 못한 어머니는 차마 묻지 못했다. 그렇다고 급식비를 내라고 학부모에게 전화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학생들에게 매번 차근차근 전달하는 수밖에 없었다. 학교에서는 급식비를 내지 않고 2~3달이 지나면 진짜 급식을 주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그럴 때면 아주 가끔씩 한두 달치 급식비를 어머니가 대신 내기도 했다. 그러나 매번 그럴 수는 없었다.&lt;/p&gt;
&lt;p&gt;&lt;/p&gt;
&lt;table class=&quot;flickrImgSearch&quot;&gt;
&lt;tbody&gt;&lt;tr&gt;
&lt;td&gt;&lt;a href=&quot;http://www.flickr.com/photos/49503000098@N01/2568870287&quot; title=&quot;급식 3일째&quot; target=&quot;_blank&quot;&gt;&lt;img src=&quot;http://farm4.static.flickr.com/3107/2568870287_a424b9a429.jpg&quot; alt=&quot;급식 3일째&quot; style=&quot;border: 0pt none ; padding-bottom: 7px;&quot; width=&quot;450&quot;&gt;&lt;/a&gt;&lt;br /&gt;
&lt;span&gt;by &lt;a href=&quot;http://www.flickr.com/photos/49503000098@N01&quot; target=&quot;_blank&quot;&gt;Seokzzang Yun&lt;/a&gt;&lt;/span&gt; &lt;a href=&quot;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sa/2.0/kr/&quot; target=&quot;_blank&quot; style=&quot;width: 450px; padding-top: 7px;&quot;&gt;&lt;img class=&quot;tix-ccl-by&quot; src=&quot;http://cfs.tistory.com/static/admin/editor/ccl_black01.png&quot; alt=&quot;저작자 표시&quot; style=&quot;border: 0pt none ; vertical-align: middle; margin-right: 1px;&quot; width=&quot;15&quot; height=&quot;15&quot;&gt;&lt;img class=&quot;tix-ccl-nc&quot; src=&quot;http://cfs.tistory.com/static/admin/editor/ccl_black02.png&quot; alt=&quot;비영리&quot; style=&quot;border: 0pt none ; vertical-align: middle; margin-right: 1px;&quot; width=&quot;15&quot; height=&quot;15&quot;&gt;&lt;img class=&quot;tix-ccl-sa&quot; src=&quot;http://cfs.tistory.com/static/admin/editor/ccl_black03.png&quot; alt=&quot;동일조건 변경허락&quot; style=&quot;border: 0pt none ; vertical-align: middle; margin-right: 1px;&quot; width=&quot;15&quot; height=&quot;15&quot;&gt;&lt;/a&gt;&lt;/td&gt;
&lt;/tr&gt;
&lt;/tbody&gt;&lt;/table&gt;
&lt;br /&gt;
어느날은 굳게 마음을 먹고&amp;nbsp;오래 급식비를 내지 않은 아이 하나를 종례를 마치고 따로 불렀다.
&lt;p&gt;&quot;급식비를 오랫동안 안 가져왔는데, 너 잊어서 그런 거니, 아니면 집에 무슨 일이 있는 거니?&quot;&lt;br /&gt;
&lt;/p&gt;
&lt;p&gt;아이는 엄마와 아빠가 돈 많이 벌어온다고 어디론가 떠났고, 지금 자신은 고모와 함께 살고 있다고, 그제서야 천진한 표정으로 말했다. 초등학교 2~3학년이 가난이라든가 급식비라든가 빚이라든가 그런 걸 얼마나 알겠는가. 그 아이는 엄마아빠가 보고 싶지만, 그래도 자신은 행복하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lt;/p&gt;
&lt;p&gt;교사가 이 학생은 급식비를 낼 수 없는 가난한 학생이라고 미리 신청하고, 소정의 절차를 밟으면 아이는 앞으로 급식비를 내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제껏 내지 않은 급식비까지 모두 해결되는 건 아니다. 안 낸 급식비는 그대로 그 아이의 빚으로 남는 셈이다.&lt;/p&gt;
&lt;p&gt;어머니는 이런 제도가 정말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콩나물 시루와 같은 교실에서 담임 선생님이 학생의 가정 형편까지 모두 알기란 불가능하고, 그렇다고 공개적으로 물어볼 수도 없다는 것이다. 공개적으로 묻는다고 학생들이 모두 자진해서 손을 드는 것도 아니다: 자기 집안의 형편에 대해 잘 모르는 학생들도 있고, 알더라도 답할 수 없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lt;/p&gt;

&lt;p&gt;2&lt;/p&gt;
&lt;p&gt;한때 교사였던 시인 나희덕은 첫 시집에 실린 시 「한 그릇의 밥」에서 &quot;한 그릇의 밥을 푸면서 / 한 알도 흘리지 말아야 하는 것이 교사, / &lt;span class=&quot;content&quot;&gt;더&lt;/span&gt;&lt;span class=&quot;content&quot;&gt;러는 발밑에 떨어진 것도 주워담아&amp;nbsp;/ 제 입에 넣고 맛있게 씹을 일이다&quot;라고 썼다.&lt;/span&gt; 농부가 곡식의 낟알을 소중히 하듯 교사들은 학생을 아끼는 것이다.&lt;/p&gt;
&lt;p&gt;이들 밥알 하나하나에게 '한 그릇의 밥'을 그저 주어야 한다는 게 곽노현과 같은 '진보' 교육감들의 주장이자 공약이었다. 나는 내 어머니가 교육감 선거에서 누구를 찍었는지 모른다. 곽노현을 찍었는지 다른 후보를 찍었는지 아니면 이원희를 찍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곽노현의 주장과 공약이 실천되면 평범한 교사였던 어머니가 바랐던 교육 현장이 실현되리라고 생각한다. 한 그릇의 더운 밥 같은 교육현장 말이다.&lt;/p&gt;&lt;p&gt;&lt;table class=&quot;flickrImgSearch&quot;&gt;&lt;tbody&gt;&lt;tr&gt;&lt;td&gt;&lt;a href=&quot;http://www.flickr.com/photos/48382938@N07/4466737059&quot; title=&quot;RS5P5317&quot; target=&quot;_blank&quot;&gt;&lt;img src=&quot;http://farm3.static.flickr.com/2691/4466737059_464b198d67.jpg&quot; width=&quot;450&quot; alt=&quot;RS5P5317&quot; style=&quot;border: 0; padding-bottom: 7px;&quot;&gt;&lt;/a&gt;&lt;br /&gt;&lt;span&gt;RS5P5317 by &lt;a href=&quot;http://www.flickr.com/photos/48382938@N07&quot; target=&quot;_blank&quot;&gt;kwaknohyun&lt;/a&gt;&lt;/span&gt; &lt;a href=&quot;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d/2.0/kr/&quot; target=&quot;_blank&quot; style=&quot;width:450px; padding-top: 7px;&quot;&gt;&lt;img class=&quot;tix-ccl-by&quot; src=&quot;http://i1.daumcdn.net/cfs.tistory/static/admin/editor/ccl_black01.png&quot; alt=&quot;저작자 표시&quot; width=&quot;15&quot; height=&quot;15&quot; style=&quot;vertical-align: middle; margin-right: 1px; border: 0;&quot;&gt;&lt;img class=&quot;tix-ccl-nd&quot; src=&quot;http://i1.daumcdn.net/cfs.tistory/static/admin/editor/ccl_black03.png&quot; alt=&quot;변경 금지&quot; width=&quot;15&quot; height=&quot;15&quot; style=&quot;vertical-align: middle; margin-right: 1px; border: 0;&quot;&gt;&lt;/a&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p&gt;&lt;p&gt;내 어머니는 연전에 무릎이 아파 계단을 잘 오르내리지 못하고, 오래 서 있지 못하게 된 탓이 명예퇴직했다. 퇴직 후 오래 근무했다고 정부로부터 무슨 표창을 받았는데, 내가 싫어하는 대통령의 이름이 적힌 그 표창장을 어머니는 오래 거실에 내걸었다.&lt;/p&gt;&lt;p&gt;나는 지금 그런 어머니를 이해한다. 자식인 나는 내 어머니가 교사로 일한 30여년에 대한 칭찬과 표창을 자랑스러워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머니가 못 이룬 교육의 꿈을 곽노현이, 그리고 제2, 제3의 곽노현이 이뤄가리라 믿는다.&lt;/p&gt;
&lt;p&gt;중요한 것은 번역이다. 정부여당이 '무상급식'은 사회주의라고 색깔론으로 포장하면 내 어머니 같은 평범한 교사들은 때로 속아넘어갈 수도 있다. 우리반 아이들에게 그저('공짜로'나 '무상으로', '거저' 등의 말보다 '그저'가 더 교사들의 마음을 대변해준다고 생각한다) 더운 밥 한 그릇을 먹이는 것, 그게 '무상급식'이다.&lt;/p&gt;&lt;/div&gt;&lt;p&gt;&lt;br /&gt;&lt;/p&gt;</description>
      <category>어느어릿광대의견해</category>
      <category>공약</category>
      <category>곽노현</category>
      <category>교육감</category>
      <category>급식</category>
      <category>나희덕</category>
      <category>더운밥</category>
      <category>무상급식</category>
      <category>뿌리에게</category>
      <category>사회주의</category>
      <category>어머니</category>
      <category>진보</category>
      <category>한-그릇의-밥</category>
      <author>엔디</author>
      <guid isPermaLink="true">https://endyecrit.tistory.com/224</guid>
      <comments>https://endyecrit.tistory.com/224#entry224comment</comments>
      <pubDate>Sun, 6 Jun 2010 10:52:00 +0900</pubDate>
    </item>
    <item>
      <title>과학과 정치윤리: 그리섬 대 서태윤, 천안함 미스터리</title>
      <link>https://endyecrit.tistory.com/223</link>
      <description>&lt;div class=&quot;xhtmlEditorBody&quot;&gt;
&lt;p&gt;몇 년 전, 한국의 한 과학자는 &lt;a href=&quot;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409161801591&amp;amp;code=100100&amp;amp;fid=&quot; class=&quot;external&quot; title=&quot;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409161801591&amp;amp;code=100100&amp;amp;fid=&quot;&gt;&quot;과학에는 국경이 없다. 하지만 과학자에게는 조국이 있다.&quot;&lt;/a&gt;는 묘한 말을 했다. 안 그래도 가득할 대로 가득한 한국인의 국가주의nationalisme를 자극했던 그 말은, 비록 &lt;a href=&quot;http://ko.wikipedia.org/wiki/%ED%8C%8C%EC%8A%A4%ED%87%B4%EB%A5%B4&quot; class=&quot;external&quot; title=&quot;http://ko.wikipedia.org/wiki/%ED%8C%8C%EC%8A%A4%ED%87%B4%EB%A5%B4&quot;&gt;빠스뙤르Pasteur&lt;/a&gt;가 먼저 &lt;a href=&quot;http://www.hani.co.kr/arti/science/kistiscience/238587.html&quot; class=&quot;external&quot; title=&quot;http://www.hani.co.kr/arti/science/kistiscience/238587.html&quot;&gt;비슷한 말&lt;/a&gt;을 했다고 하더라도, 결코 '과학적'인 언사라고는 할 수 없었다.&amp;nbsp;조국을 위한다는 명목 때문인지 몰라도, 실제로 그는 여성의 난자를 구입하는 비윤리적인 행태에서부터 1차 자료 조작이라는 과학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까지 저버리는 사건--사고가 아니라--까지 저질렀다.&lt;/p&gt;
&lt;p&gt;'조국' 운운한 발언의 여파는 컸다. 그에 대한 옹호는 지금도 정치적인 색채를 띤다: 난자를 매매한 것은 그저 '국가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간단히 면죄부가 부여된다; 가장 핵심적인 사안이라고 볼 수 있는 실험 결과와 1차 자료에 대해서도 '그의 주장은 모두 사실이며 이에 대한 모든 의문은 미국의 음모'라는 옹호가 쉽게 성립한다. 짙은 색깔의 정치가 덧칠되면, 보다 민감하고 여린 과학이나 윤리의 빛은 그저 뒤덮이는 꼴이다.&lt;/p&gt;
&lt;p&gt;정부가 발표한 &lt;a href=&quot;http://ko.wikipedia.org/wiki/%EC%B2%9C%EC%95%88%ED%95%A8&quot; class=&quot;external&quot; title=&quot;http://ko.wikipedia.org/wiki/%EC%B2%9C%EC%95%88%ED%95%A8&quot;&gt;천안함&lt;/a&gt; 수사 결과가 최근 발표되면서 그 과학자의 일화가 떠오르는 것은 왜였을까.&lt;/p&gt;
&lt;div id=&quot;toc&quot; style=&quot;background-color: rgb(255, 255, 250); border: 1px solid tan; padding: 2px 10px 0px;&quot;&gt;
&lt;strong&gt;목차&lt;/strong&gt;
&lt;hr&gt;
&lt;ol&gt;
&lt;li&gt;&lt;a href=&quot;#toc_0&quot; title=&quot;toc_0&quot; class=&quot;external&quot;&gt;그리섬, 과학에 대한 신앙&lt;/a&gt;&lt;/li&gt;
&lt;li&gt;&lt;a href=&quot;#toc_1&quot; title=&quot;toc_1&quot; class=&quot;external&quot;&gt;과학수사와 살인의 추억&lt;/a&gt;&lt;/li&gt;
&lt;li&gt;&lt;a href=&quot;#toc_2&quot; title=&quot;toc_2&quot; class=&quot;external&quot;&gt;천안함 미스터리&lt;/a&gt;&lt;/li&gt;
&lt;li&gt;&lt;a href=&quot;#toc_3&quot; title=&quot;toc_3&quot; class=&quot;external&quot;&gt;하이젠베르크와 정치윤리&lt;/a&gt;&lt;/li&gt;
&lt;/ol&gt;
&lt;/div&gt;
&lt;h4&gt;그리섬, 과학에 대한 신앙&lt;sup class=&quot;tocAnchorContainer&quot;&gt;&lt;a href=&quot;#toc_0&quot; title=&quot;toc_0&quot; class=&quot;anchor&quot; id=&quot;toc_0&quot;&gt;#&lt;/a&gt;&lt;/sup&gt;&lt;/h4&gt;&lt;p style=&quot;clear: both; float: right;&quot;&gt;&lt;span class=&quot;imageblock&quot; style=&quot;display: inline-block; width: 219px; margin-left:10px;; height: auto; max-width: 100%;&quot;&gt;&lt;img src=&quot;https://t1.daumcdn.net/cfile/tistory/142D07044BFBF8748E&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t1.daumcdn.net%2Fcfile%2Ftistory%2F142D07044BFBF8748E&quot; width=&quot;219&quot; height=&quot;140&quot; alt=&quot;범죄 현장을 조사하는 길 그리섬&quot; filename=&quot;cfile1.uf@142D07044BFBF8748E6340.jpg&quot; filemime=&quot;image/jpeg&quot; style=&quot;margin-left:10px;&quot;/&gt;&lt;/span&gt;&lt;/p&gt;
&lt;p&gt;미국의 TV드라마 CSI 시리즈는 20세기말~21세기초 판 '최첨단 &lt;a href=&quot;http://www.encyber.com/search_w/ctdetail.php?masterno=701942&amp;amp;contentno=701942&quot; title=&quot;http://www.encyber.com/search_w/ctdetail.php?masterno=701942&amp;amp;contentno=701942&quot; class=&quot;external&quot;&gt;권선징악&lt;/a&gt;'의 이야기다. 이 시리즈의 저류底流에는 '범죄자는 결국 법의 심판을 받게 된다'는 믿음이 흐르고 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은 고전소설의 신이나 신선, 용왕, 선녀가 아니라 '&lt;a href=&quot;http://ko.wikipedia.org/wiki/%EC%A6%9D%EA%B1%B0&quot; class=&quot;external&quot; title=&quot;http://ko.wikipedia.org/wiki/%EC%A6%9D%EA%B1%B0&quot;&gt;증거evidence&lt;/a&gt;'다.&lt;/p&gt;
&lt;p&gt;&lt;/p&gt;
&lt;p&gt;시리즈의 원형이라 할 만한 《&lt;a href=&quot;http://ko.wikipedia.org/wiki/CSI%EA%B3%BC%ED%95%99%EC%88%98%EC%82%AC%EB%8C%80&quot; class=&quot;external&quot; title=&quot;http://ko.wikipedia.org/wiki/CSI%EA%B3%BC%ED%95%99%EC%88%98%EC%82%AC%EB%8C%80&quot;&gt;CSI 라스 베이거스&lt;/a&gt;》에는 그런 신념 또는 신앙으로 똘똘 뭉친 인물이 주인공protagonist으로 나온다. &lt;a href=&quot;http://en.wikipedia.org/wiki/Gil_Grissom&quot; class=&quot;external&quot; title=&quot;http://en.wikipedia.org/wiki/Gil_Grissom&quot;&gt;길 그리섬Gil Grissom&lt;/a&gt;은&amp;nbsp;대부분 범죄 현장에서 증거를 수집하는 모습이나, 그 증거를 해석하는 과정에서 실험하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과학수사대(과수대)가 경찰 조직 내부에 있는 한국과 달리 드라마 속의 그리섬은 경찰이 아니다. 그에게는 늘 '나는 과학자scientist'라는 자의식이 있다. &quot;증거가 우리에게 말한다The evidence tells us…&quot;는 영어 표현은 그리섬의 신념 또는 신앙을 적확하게 보여주는 말이다.&lt;/p&gt;
&lt;p&gt;그래서, 당연한 말이지만, 그는 증거를 애지중지한다.&amp;nbsp;DNA 검사와 지문 채취, 옷 등의 증거물 수집을 위해&amp;nbsp;피해자의 가족에게도 서슴없이 협조를 부탁한다. 가령 방금 딸을 잃은 어머니의 옷에 피가 묻어 있다고 해서 증거로 달라고 하는 것은 (인간적으로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 어머니가 화를 내건 안 내건 그리섬의 반응은 같다: &quot;나는 증거를 수집하고 있습니다I'm collecting evidence.&quot; 아무리 용무가 급해도 범죄 현장 내부의 화장실 대신 맞은 편 건물을 화장실을 이용한다는 이야기는 소소할 정도다.&lt;/p&gt;
&lt;p&gt;나는 첫머리에서 언급한 사람보다 그리섬이 더 위대한 과학자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그리섬이 이처럼 '1차 자료'에 해당하는 증거에 매달리고, 증거를 소중하게 다루기 때문이다. 내가 기억하는 바로는 그가 선입관을 가지고 사건을 처리한 경우는 거의 없다; 자신이 작업해 확정한 증거라고 하더라도, 나중에 다른 내용이 보이면 다시 거기에 매달리는 모습까지 보여준다. CSI에 종종 등장하는 재판 장면을 통해 미국이라는 나라가 그들의 노력을 어떻게 인정하고 받아들이는지를 보면, 그들의 증거 수집 노력에 숙연함까지 느껴질 정도다. 『세포&lt;em&gt;Cell&lt;/em&gt;』니 『자연&lt;em&gt;Nature&lt;/em&gt;』이니 『과학&lt;em&gt;Science&lt;/em&gt;』이니 하는 잡지에 그리섬의 논문이 실린 적이 있느냐 없느냐는, 그러니까 별로 중요한 게 아니다.&lt;/p&gt;
&lt;h4&gt;과학수사와 살인의 추억&lt;sup class=&quot;tocAnchorContainer&quot;&gt;&lt;a href=&quot;#toc_1&quot; title=&quot;toc_1&quot; class=&quot;anchor&quot; id=&quot;toc_1&quot;&gt;#&lt;/a&gt;&lt;/sup&gt;&lt;/h4&gt;&lt;p style=&quot;clear: both; float: right;&quot;&gt;&lt;span class=&quot;imageblock&quot; style=&quot;display: inline-block; width: 235px; margin-left:10px;; height: auto; max-width: 100%;&quot;&gt;&lt;img src=&quot;https://t1.daumcdn.net/cfile/tistory/194173044BFBF89B3C&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t1.daumcdn.net%2Fcfile%2Ftistory%2F194173044BFBF89B3C&quot; width=&quot;235&quot; height=&quot;180&quot; alt=&quot;영화 《살인의 추억》의 박두만 &quot; filename=&quot;cfile30.uf@194173044BFBF89B3C1DF8.jpg&quot; filemime=&quot;image/jpeg&quot; style=&quot;margin-left:10px;&quot;/&gt;&lt;/span&gt;&lt;/p&gt;
&lt;p&gt;과학수사 하니까 다른 한국영화도 하나 떠오른다. 봉준호 감독의 &lt;a href=&quot;http://ko.wikipedia.org/wiki/%EC%82%B4%EC%9D%B8%EC%9D%98_%EC%B6%94%EC%96%B5&quot; class=&quot;external&quot; title=&quot;http://ko.wikipedia.org/wiki/%EC%82%B4%EC%9D%B8%EC%9D%98_%EC%B6%94%EC%96%B5&quot;&gt;《살인의 추억》&lt;/a&gt;이다. 흔히 &lt;a href=&quot;http://ko.wikipedia.org/wiki/%ED%99%94%EC%84%B1_%EC%97%B0%EC%87%84_%EC%82%B4%EC%9D%B8_%EC%82%AC%EA%B1%B4&quot; class=&quot;external&quot; title=&quot;http://ko.wikipedia.org/wiki/%ED%99%94%EC%84%B1_%EC%97%B0%EC%87%84_%EC%82%B4%EC%9D%B8_%EC%82%AC%EA%B1%B4&quot;&gt;화성 연쇄 살인 사건&lt;/a&gt;을 모티프로 삼아 만든 것으로 일컬어지는 이 영화에는 다그치고 때리며 용의자를 범인으로 몰아세우는 '전통적'인 방법을 고수하는 박두만(송강호)·조용구(김뢰하) 형사와 '과학수사'를 주장하는 서태윤(김상경) 형사가 대비되는 모양새로 나온다.&lt;/p&gt;
&lt;p&gt;&lt;/p&gt;
&lt;p&gt;서태윤이 &quot;서류는 거짓말하지 않는다&quot;며 사건 파일에 담긴 증거 위주의 수사를 주장할 때,&amp;nbsp;박두만은 동네 장애인인 백광호(박노식)에게 혐의를 뒤집어씌우려고 백광호의 신발로 범죄 현장에 발자국을 찍는 증거 조작을 일삼는다.&lt;/p&gt;
&lt;p&gt;물론 뒤로 가면 박두만도--비록 '감'에 의존한 수사이긴 하지만--범인이 현장에 거웃 하나 남기지 않는다는 점에 착안해 근처 목욕탕을 뒤지는 '비교적' 증거에 기반한 수사를 펼친다; 서태윤은 서류를 통해 비오는 날 빨간 옷을 입은 여성이 범행 대상이라는 점과 범행이 있던 날 누군가가 라디오에 늘 유재하의 노래 '우울한 편지'를 신청했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피해자 중 유일한 생존자로부터 범인이 '손이 고왔다'는 진술도 확보한다.&lt;/p&gt;&lt;p style=&quot;clear: both; float: left;&quot;&gt;&lt;span class=&quot;imageblock&quot; style=&quot;display: inline-block; width: 251px; margin-right:10px;; height: auto; max-width: 100%;&quot;&gt;&lt;img src=&quot;https://t1.daumcdn.net/cfile/tistory/1832A8044BFBF89F5A&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t1.daumcdn.net%2Fcfile%2Ftistory%2F1832A8044BFBF89F5A&quot; width=&quot;251&quot; height=&quot;188&quot; alt=&quot;영화 《살인의 추억》의 서태윤 &quot; filename=&quot;cfile4.uf@1832A8044BFBF89F5A34EB.jpg&quot; filemime=&quot;image/jpeg&quot; style=&quot;margin-right:10px;&quot;/&gt;&lt;/span&gt;&lt;/p&gt;&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gt;이 시점에서 서태윤은 '서류는 거짓말하지 않는다'는 평소의 신념 아래 용의자 박현규(박해일)가 범인이라고 확신한다. 그는 희생자의 옷에 남았던 정액 샘플과 박현규의 DNA의 일치 검사를 미국에 의뢰해둔 뒤, 어느 철길에서 박현규를 붙잡는다. 그런데, 그에게 총을 들이대는 그 순간 미국에서 검사 결과가 도착한다. &quot;두 DNA가 일치하지 않아, 용의자를 범인으로 단정할 수 없음.&quot;&lt;/p&gt;
&lt;p&gt;&lt;/p&gt;
&lt;p&gt;서태윤은 그 '서류'를 보고 그대로 무너진다. 그리고, 감독의 의도대로라면, 영화를 보는 관객들도 서태윤과 함께 무너진다.&lt;/p&gt;
&lt;p&gt;서태윤의 잘못은 손이 곱고, 하필 범행이 있던 날만 골라 라디오에 '우울한 편지'를 신청했다는 정도의 증거만으로 범인을 확정지은 것이다. 사법체계가 잘 서 있는 나라라면, 이 정도의 증거로&amp;nbsp;수색영장이나 잘하면 받을 수 있을까 싶다. 누구나 박현규가 범인이라는 의심이 가게 마련이지만, '과학수사' 과정에서는 그런 선입견을 일단 버려야 맞는 것이다. 정액 샘플과 박현규의 DNA가 일치한다는 것을 확인하기까지 판단을 유보했어야 했다.&lt;/p&gt;
&lt;h4&gt;천안함 미스터리&lt;sup class=&quot;tocAnchorContainer&quot;&gt;&lt;a href=&quot;#toc_2&quot; title=&quot;toc_2&quot; class=&quot;anchor&quot; id=&quot;toc_2&quot;&gt;#&lt;/a&gt;&lt;/sup&gt;&lt;/h4&gt;
&lt;p&gt;'과학수사'는 과학이 가진 엄밀함과 엄정함에 기대는 것인 만큼, 마지막까지 냉정함을 유지해야만 가능한 것이다. 어느 정도 증거가 들어맞는다고 해서 결론을 단정지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것이 1차 자료인 증거를 중시하는 과학의 정신이다. 정부 나름으로는 과학적으로 조사했다는 천안함 조사 결과를 상당수 한국인들이 납득하지 못하는 이유도 그것이다.&lt;/p&gt;
&lt;p&gt;알 수 없는 이유로 두동강 난 천안함의 침몰에 대해 국방부 민군합동조사단(합조단)은 &lt;a href=&quot;http://media.daum.net/politics/dipdefen/view.html?cateid=1068&amp;amp;newsid=20100520105106210&amp;amp;p=yonhap&quot; class=&quot;external&quot; title=&quot;http://media.daum.net/politics/dipdefen/view.html?cateid=1068&amp;amp;newsid=20100520105106210&amp;amp;p=yonhap&quot;&gt;'천안함 침몰사건 조사결과' 발표문&lt;/a&gt;을 통해 &lt;a href=&quot;http://media.daum.net/politics/dipdefen/view.html?cateid=1068&amp;amp;newsid=20100520135613625&amp;amp;p=yonhap&quot; class=&quot;external&quot; title=&quot;http://media.daum.net/politics/dipdefen/view.html?cateid=1068&amp;amp;newsid=20100520135613625&amp;amp;p=yonhap&quot;&gt;천안함은 북 잠수함에서 발사한 어뢰에 맞은 것&lt;/a&gt;이라고 공식 발표했다.&lt;/p&gt;&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span class=&quot;imageblock&quot; style=&quot;display: inline-block; width: 500px;  height: auto; max-width: 100%;&quot;&gt;&lt;img src=&quot;https://t1.daumcdn.net/cfile/tistory/182FD5044BFBF87F8A&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t1.daumcdn.net%2Fcfile%2Ftistory%2F182FD5044BFBF87F8A&quot; width=&quot;500&quot; height=&quot;159&quot; alt=&quot;천안함과 동급인 포항급 신성 783&quot; filename=&quot;cfile6.uf@182FD5044BFBF87F8A2D7D.jpg&quot; filemime=&quot;image/jpeg&quot;/&gt;&lt;span class=&quot;cap1&quot; style=&quot;display: block; max-width:100%; &quot;&gt;PCC-772 천안함과 동급인 포항급 신성 783&lt;/span&gt;&lt;/span&gt;&lt;/p&gt;
&lt;p&gt;&lt;/p&gt;
&lt;p&gt;합조단은 그 &lt;a href=&quot;http://media.daum.net/politics/dipdefen/view.html?cateid=1068&amp;amp;newsid=20100520154306976&amp;amp;p=yonhap&quot; class=&quot;external&quot; title=&quot;http://media.daum.net/politics/dipdefen/view.html?cateid=1068&amp;amp;newsid=20100520154306976&amp;amp;p=yonhap&quot;&gt;근거&lt;/a&gt;로,&amp;nbsp;천안함 침몰 현장에서 쌍끌이어선이 발견한 어뢰의 추진동력부를 들었다. 발견된 부분이 북이 해외 수출어뢰 소개자료의 설계도와 일치하며, 특히 그 부분에 아라비아 숫자와 한글로 '1번'이라고 적혀 있는 것으로 보아 북의 소행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좌현 견시병의 얼굴에 물이 튀었다거나 백령도 해안 초병이 100m 높이의 섬광 기둥을 관측했다는 것도 증거로 제시했다.&lt;/p&gt;&lt;p style=&quot;clear: both; float: right;&quot;&gt;&lt;span class=&quot;imageblock&quot; style=&quot;display: inline-block; width: 185px; margin-left:10px;; height: auto; max-width: 100%;&quot;&gt;&lt;img src=&quot;https://t1.daumcdn.net/cfile/tistory/201DCD124BFBF9CAA2&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t1.daumcdn.net%2Fcfile%2Ftistory%2F201DCD124BFBF9CAA2&quot; width=&quot;185&quot; height=&quot;166&quot; alt=&quot;천안함 TOD &quot; filename=&quot;cfile25.uf@201DCD124BFBF9CAA29576.jpg&quot; filemime=&quot;image/jpeg&quot; style=&quot;margin-left:10px;&quot;/&gt;&lt;/span&gt;&lt;/p&gt;&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gt;하지만 이것만으로 천안함 침몰이 북의 소행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 것일까. 이에 대한 의문과 의혹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지만 국방부는 이에 답변하지 않거나, 별로 수긍이 가지 않는 답변만 해주고 있다. 가령 발견된 어뢰 추진동력부가 이번 천안함 사건과 관계가 있는 것인지부터가 명확하지 않다. 현장과 동일한 조건을 유지한 실험을 통해 부식 정도를 알아봐야 하는 게 아닐까? 또 '1번'이라고 쓴 푸른 글씨가 어떤 필기구로 쓴 것인지와 왜 지워지지 않은 것인지도 아직 납득되지 않는다. 성분을 분석해 국내외의 필기구와 대조하고, 역시 현장과 동일한 조건으로 글씨가 지워지는지 안 지워지는지를 실험해봐야 하지 않을까.&lt;/p&gt;
&lt;p&gt;&lt;/p&gt;
&lt;p&gt;너무 까칠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단 1주일 동안만 CSI 시리즈를 시청해보자. 정부의 발표라고 덮어놓고 불신하겠다는 게 아니다. 적어도 정부 차원의 조사라면 제기되는 의혹은 풀어줘야 하지 않나 하는 것이다. 서태윤 형사 식의 수사는 이제 곤란하다는 것이다. 그리섬의 진지한 무표정이 그립다.&lt;/p&gt;
&lt;h4&gt;하이젠베르크와 정치윤리&lt;sup class=&quot;tocAnchorContainer&quot;&gt;&lt;a href=&quot;#toc_3&quot; title=&quot;toc_3&quot; class=&quot;anchor&quot; id=&quot;toc_3&quot;&gt;#&lt;/a&gt;&lt;/sup&gt;&lt;/h4&gt;
&lt;p&gt;대학 시절 철학자 박이문 선생의 강의를 들을 때였다. 거의 학생의 발표로만 이뤄진 그 수업에서 어느 이공계 학생은 &quot;지금 이 순간 세상의 모든 정보를 내가 알고 있다면, 나는 어떤 미래도 예측할 수 있고 어떤 과거도 추론할 수 있을 것&quot;이라고 말했다.&lt;/p&gt;
&lt;p&gt;그의 말은 '틀린' 말은 아닐 수 있다고 하더라도, 공허했다. '모든 정보'를 알 길이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한 입자의 모든 정보'도 알 길이 없다. &lt;a href=&quot;http://ko.wikipedia.org/wiki/%ED%95%98%EC%9D%B4%EC%A0%A0%EB%B2%A0%EB%A5%B4%ED%81%AC&quot; class=&quot;external&quot; title=&quot;http://ko.wikipedia.org/wiki/%ED%95%98%EC%9D%B4%EC%A0%A0%EB%B2%A0%EB%A5%B4%ED%81%AC&quot;&gt;하이젠베르크&lt;/a&gt;의 &lt;a href=&quot;http://ko.wikipedia.org/wiki/%EB%B6%88%ED%99%95%EC%A0%95%EC%84%B1%EC%9B%90%EB%A6%AC&quot; class=&quot;external&quot; title=&quot;http://ko.wikipedia.org/wiki/%EB%B6%88%ED%99%95%EC%A0%95%EC%84%B1%EC%9B%90%EB%A6%AC&quot;&gt;불확정성원리&lt;/a&gt;에 따르면,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 관측 행위 자체가 관측 대상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lt;/p&gt;
&lt;p&gt;결국 우리는 미래와 과거를 100% 확실하게 알 방법이 없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과학은 엄밀함의 극단에 점근선으로 다가가야 하며 과학수사 역시 겸허한 자세로 그래야 한다. '과학'으로 포장한 정치논리는 결국 정치윤리를 저버림에 다름아니다.&lt;/p&gt;&lt;/div&gt;
&lt;p&gt;&lt;br /&gt;&lt;/p&gt;</description>
      <category>어느어릿광대의견해</category>
      <category>CSI</category>
      <category>DNA</category>
      <category>gil-grissom</category>
      <category>과수대</category>
      <category>과학</category>
      <category>과학수사</category>
      <category>과학수사대</category>
      <category>국방부</category>
      <category>그리섬</category>
      <category>민군합동조사단</category>
      <category>박두만</category>
      <category>불확정성원리</category>
      <category>살인의추억</category>
      <category>서태윤</category>
      <category>정치</category>
      <category>천안함</category>
      <category>하이젠베르크</category>
      <category>합조단</category>
      <category>황우석</category>
      <author>엔디</author>
      <guid isPermaLink="true">https://endyecrit.tistory.com/223</guid>
      <comments>https://endyecrit.tistory.com/223#entry223comment</comments>
      <pubDate>Wed, 26 May 2010 07:12:00 +0900</pubDate>
    </item>
    <item>
      <title>이 어두운 극장 밖에선 도대체&amp;hellip;: 『작은 연못』</title>
      <link>https://endyecrit.tistory.com/222</link>
      <description>&lt;div class=&quot;xhtmlEditorBody&quot;&gt;
&lt;p&gt;그래, 먼저 가만히 작고 어두운 영화관 하나를 떠올려보자. 시인 &lt;a href=&quot;http://ko.wikipedia.org/wiki/%EA%B8%B0%ED%98%95%EB%8F%84&quot; title=&quot;http://ko.wikipedia.org/wiki/%EA%B8%B0%ED%98%95%EB%8F%84&quot; class=&quot;external&quot;&gt;기형도&lt;/a&gt;가 죽었다던 허름한 종로의 극장도 좋고, 사람들이 &lt;a href=&quot;http://ko.wikipedia.org/wiki/%EB%8D%B0%EC%B9%B4%EB%A9%94%EB%A1%A0&quot; title=&quot;http://ko.wikipedia.org/wiki/%EB%8D%B0%EC%B9%B4%EB%A9%94%EB%A1%A0&quot; class=&quot;external&quot;&gt;데까메론&lt;/a&gt;을 알건 모르건 매년 그해의 '보카치오'를 동시상영으로 마구 틀어댔던 동네의 3류 극장도 좋다. 예술영화를 자주 틀어주는, 그래서 관객은 별로 없는 조용한 극장도 괜찮다. 사실 꼭 작고 어두운 극장일 필요도 없다. 푹신푹신한 의자에 음료 거치대까지 있는 최신식 멀티플렉스 영화관도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그곳에서 내가, 당신이, 그리고 사람들이 영화를 본다는 것이다.&lt;/p&gt;
&lt;p&gt;자, 영화가 끝났다. 영화란 건 늘 금세 끝나는 법이니까. 엔딩크레딧이 올라간다. 대다수 극장에서는 환하게 불도 켜준다. 이제 돌아갈 시간이다. 어디로? 세상으로. 커다란 박스 속에 들어가 한두 시간을 어둠 속에 머물며&amp;nbsp;주인공과의 삼투현상을 경험했던 우리는 이제 다시 '나'로 돌아온다. 문득 궁금하다. 내가 잠시 사라진 동안 세상에는 별일이 없었나?&lt;/p&gt;
&lt;p&gt;우리가 극장에 있는 그 한두 시간 동안 어쩌면 어머니는 감기에 드셨을지도 모른다. 할아버지는 눈이 더 침침해져 돋보기 안경을 바꿔야 할지도 모른다. 누이는 어디선가 휴대폰을 잃고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그 시간 동안 대통령이 유명을 달리했을지도 모르고, 크레인에 올라갔던 한 노동자가 실신했을지도 모른다. 어딘가 요정에서는 정치인들의 킬킬거리는 소리가 새나오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미국의 군대가 어느 민간인과 언론을 향해 총질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어두운 극장 속에 있는 그 사이에.&lt;/p&gt;
&lt;div id=&quot;toc&quot; style=&quot;border: 1px solid tan; padding: 2px 10px 0px; background-color: rgb(255, 255, 250);&quot;&gt;
&lt;strong&gt;목차&lt;/strong&gt;
&lt;hr&gt;
&lt;ol&gt;
&lt;li&gt;&lt;a href=&quot;#toc_0&quot; class=&quot;external&quot; title=&quot;toc_0&quot;&gt;출구없는 극장&lt;/a&gt;&lt;/li&gt;
&lt;li&gt;&lt;a href=&quot;#toc_1&quot; class=&quot;external&quot; title=&quot;toc_1&quot;&gt;한국에서의 학살&lt;/a&gt;&lt;/li&gt;
&lt;li&gt;&lt;a href=&quot;#toc_2&quot; class=&quot;external&quot; title=&quot;toc_2&quot;&gt;작은 연못&lt;/a&gt;&lt;/li&gt;
&lt;li&gt;&lt;a href=&quot;#toc_3&quot; class=&quot;external&quot; title=&quot;toc_3&quot;&gt;극장 밖&lt;/a&gt;&lt;/li&gt;
&lt;/ol&gt;
&lt;/div&gt;
&lt;h4&gt;출구없는 극장&lt;sup class=&quot;tocAnchorContainer&quot;&gt;&lt;a href=&quot;#toc_0&quot; class=&quot;anchor&quot; title=&quot;toc_0&quot; id=&quot;toc_0&quot;&gt;#&lt;/a&gt;&lt;/sup&gt;&lt;/h4&gt;
&lt;p&gt;사건과 사고의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우리가 극장을 가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그래서도 안 되거니와 그럴 수도 없다; 우리는 누구나 극장 안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lt;a href=&quot;http://ko.wikipedia.org/wiki/%EC%8B%9C%EC%9D%B8%EA%B3%BC_%EC%B4%8C%EC%9E%A5&quot; title=&quot;http://ko.wikipedia.org/wiki/%EC%8B%9C%EC%9D%B8%EA%B3%BC_%EC%B4%8C%EC%9E%A5&quot; class=&quot;external&quot;&gt;시인과 촌장&lt;/a&gt;의 하덕규는 &lt;a href=&quot;http://ko.wikipedia.org/wiki/%EB%8D%B8%EB%A6%AC%EC%8A%A4%ED%8C%8C%EC%9D%B4%EC%8A%A4&quot; title=&quot;http://ko.wikipedia.org/wiki/%EB%8D%B8%EB%A6%AC%EC%8A%A4%ED%8C%8C%EC%9D%B4%EC%8A%A4&quot; class=&quot;external&quot;&gt;델리스파이스&lt;/a&gt;와 함께 &lt;a href=&quot;http://www.4rest.org/albums/bridge/no_way_out.jpg&quot; title=&quot;http://www.4rest.org/albums/bridge/no_way_out.jpg&quot; class=&quot;external&quot;&gt;출구 없는 극장&lt;/a&gt;을 노래하고 있다:&lt;/p&gt;
&lt;blockquote&gt;
&lt;p&gt;오 오 오 너는&lt;br /&gt;
오 오 오 너는&lt;br /&gt;
생의 무대 위 안락의자에 고양이처럼&lt;br /&gt;
차갑고 초연한 고양이처럼 앉아있지&lt;br /&gt;
출구 없는 극장 안에, 출구 없는 극장 안에&lt;/p&gt;
&lt;p&gt;수많은 영화들 지나가네&lt;br /&gt;
웃기고 슬프고 외롭고 힘들고 대답없는&lt;br /&gt;
그런데 이 어두운 극장 밖에선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거지?&lt;br /&gt;
오 오 오 너는…&lt;br /&gt;
오 오 오 너는…&lt;/p&gt;
&lt;/blockquote&gt;
&lt;p&gt;이를테면, 우리는 누구나 출구 없는 극장 안에 앉아 있다. 웃긴 영화와 슬픈 영화를 번갈아 보지만, 그것들 대부분은 우리 삶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 아침 지하철에서 봤던 신문지를 모으는 할아버지와 지하도 입구 앞에 앉아 손을 벌리고 있는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를 장애인 사내를 보고서도 그저 '뻔하게 슬픈 영화로군' 하고 중얼거릴 뿐이다.&amp;nbsp;우리가 이 습한 극장에 처음 들어왔을 때는 안 그랬을는지도 모른다. 지팡이를 짚고서 객차를 오가는 사람을 보고서도 조금쯤 눈물을 흘리고, 제 부모를 졸라 천원 한 장이라도 그 가벼운 바구니에 넣었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기억은 모두 사라져 알 수 없다. 그 젖은 필름만 기억 속에 남아 이젠 거의 외울 수도 있을 정도가 됐다, 시인 &lt;a href=&quot;http://ko.wikipedia.org/wiki/%EA%B9%80%ED%98%9C%EC%88%9C&quot; title=&quot;http://ko.wikipedia.org/wiki/%EA%B9%80%ED%98%9C%EC%88%9C&quot; class=&quot;external&quot;&gt;김혜순&lt;/a&gt;이 「달력공장 공장장님 보세요」에서 &quot;이 음악은 이제 너무 들었어요 지겨워요 / 열두 곡이 다 흐른 다음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잖아요?&quot;라고 노래했던 것처럼. 딱하지만, 나와는 관계 없는 영화들이다. 달력의 배경사진 같은 영화들.&lt;/p&gt;
&lt;p&gt;하지만&amp;nbsp;순간 우리는 얼마간 외로워진다. 가령 어느날 지하철에 서 있던 나에게 급성위경련이 찾아왔다. 그래, 앉으면 조금쯤 안정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앞에 앉아있는 아저씨는 나에게 관심조차 없다. 입속에서는 역한 침이 나온다. 지하철 문이 열리자마자 나는 화장실로 뛰어간다. 요컨대 내가 만든 영화도 결국 그렇고 그런 영화일 뿐이었던 것이다. 다 보고 나서도 별로 기억나는 장면도 없는 영화 말이다. 아무리 내가 떠들어도 돌아오는 대답은 없다. 그제서야 이 극장을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출구는 없다.&lt;/p&gt;
&lt;p&gt;그제서야 문득 궁금하다: 그런데, 이 어두운 극장 밖에선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거지?&lt;/p&gt;
&lt;h4&gt;한국에서의 학살&lt;sup class=&quot;tocAnchorContainer&quot;&gt;&lt;a href=&quot;#toc_1&quot; class=&quot;anchor&quot; title=&quot;toc_1&quot; id=&quot;toc_1&quot;&gt;#&lt;/a&gt;&lt;/sup&gt;&lt;/h4&gt;
&lt;p&gt;참, 그렇지. 바깥에서는 학살이 있었다고 했어. &lt;a href=&quot;http://ko.wikipedia.org/wiki/%ED%94%BC%EC%B9%B4%EC%86%8C&quot; class=&quot;external&quot; title=&quot;http://ko.wikipedia.org/wiki/%ED%94%BC%EC%B9%B4%EC%86%8C&quot;&gt;삐까쏘&lt;/a&gt;Picasso라든가 &lt;a href=&quot;http://ko.wikipedia.org/wiki/%ED%99%A9%EC%84%9D%EC%98%81&quot; class=&quot;external&quot; title=&quot;http://ko.wikipedia.org/wiki/%ED%99%A9%EC%84%9D%EC%98%81&quot;&gt;황석영&lt;/a&gt;, 이런 사람들이 그런 소문을 전했지. 삐까쏘는 &lt;a href=&quot;http://www.musee-picasso.fr/pages/page_id18627_u1l2.htm&quot; title=&quot;http://www.musee-picasso.fr/pages/page_id18627_u1l2.htm&quot; class=&quot;external&quot;&gt;「한국에서의 학살」&lt;/a&gt;로, 황석영은 『손님』으로. &lt;a href=&quot;http://ko.wikipedia.org/wiki/%EC%8B%A0%EC%B2%9C%EA%B5%B0_%EC%82%AC%EA%B1%B4&quot; class=&quot;external&quot; title=&quot;http://ko.wikipedia.org/wiki/%EC%8B%A0%EC%B2%9C%EA%B5%B0_%EC%82%AC%EA%B1%B4&quot;&gt;신천 대학살&lt;/a&gt;이라고 했어. 처음엔 조금 놀랐고, 다음에는 의심했고, 이어 분노했지만, 곧 평온을 되찾았어. 그건, 그래, 예술성 짙은 좋은 영화였을 뿐이니까.&lt;/p&gt;
&lt;p&gt;생각난다. 「한국에서의 학살」은 그 표현주의적인 면모가 뛰어났지.&amp;nbsp;&lt;a href=&quot;http://en.wikipedia.org/wiki/The_Third_of_May_1808&quot; class=&quot;external&quot; title=&quot;http://en.wikipedia.org/wiki/The_Third_of_May_1808&quot;&gt;「1808년 5월 3일」&lt;/a&gt;이라는 &lt;a href=&quot;http://ko.wikipedia.org/wiki/%EA%B3%A0%EC%95%BC&quot; class=&quot;external&quot; title=&quot;http://ko.wikipedia.org/wiki/%EA%B3%A0%EC%95%BC&quot;&gt;고야&lt;/a&gt;의 그림과 &lt;a href=&quot;http://fr.wikipedia.org/wiki/L%27Ex%C3%A9cution_de_Maximilien&quot; class=&quot;external&quot; title=&quot;http://fr.wikipedia.org/wiki/L%27Ex%C3%A9cution_de_Maximilien&quot;&gt;「황제 막시밀리안의 처형」&lt;/a&gt;이란 &lt;a href=&quot;http://ko.wikipedia.org/wiki/%EB%A7%88%EB%84%A4&quot; class=&quot;external&quot; title=&quot;http://ko.wikipedia.org/wiki/%EB%A7%88%EB%84%A4&quot;&gt;마네&lt;/a&gt; 작품의 구도를 그대로 가져왔고. 마침 그러고보니 삐까쏘는 공산주의자였다지.&lt;/p&gt;
&lt;p&gt;『손님』은 또 어떻고. 종래의 리얼리즘을 재편하겠다며 다성성多聲性을 들고 나온 황석영의 역작이었어. 다성성이란 건 그러니까 러시아의 문학평론가 바흐찐이 도스또예프스끼 시학에서 얘기했던 건데, 뭐 등장인물들이 작가의 목소리를 대변하기도 하고 작가에게 대들기도 하는 여러 목소리를 가진 거라고 하던가. 영어로는 폴리포니polyphony. 근데 『손님』을 읽어보니 꼭 그렇지도 않던걸. 여러 사람이 이야기하기는 하지만, 다 똑같은 말만 하던걸. 종래의 리얼리즘을 바꾼다는 황석영의 말을 차치하고, 어쨌든 좋은 작품이었지. 그러고보니 황석영은 북에도 갔다왔잖아. 내 기억이 맞다면, &lt;a href=&quot;http://books.google.co.kr/books?vid=ISBN8977190037&quot; class=&quot;external&quot; title=&quot;http://books.google.co.kr/books?vid=ISBN8977190037&quot;&gt;『사람이 살고 있었네』&lt;/a&gt;라는 벌건 표지의 책도 한권 냈을걸.&lt;/p&gt;
&lt;p&gt;하지만 어쨌거나 이런 것들은 다들 옛날 얘기만 하잖아. 이젠 시대가 달라진 거 아니야? 극장 바깥은 아직도 그런 얘기를 하고 있는 거야?&lt;/p&gt;
&lt;p&gt;뭐? 학살이 또 있었다고? &lt;a href=&quot;http://ko.wikipedia.org/wiki/%EB%85%B8%EA%B7%BC%EB%A6%AC_%EC%96%91%EB%AF%BC%ED%95%99%EC%82%B4%EC%82%AC%EA%B1%B4&quot; class=&quot;external&quot; title=&quot;http://ko.wikipedia.org/wiki/%EB%85%B8%EA%B7%BC%EB%A6%AC_%EC%96%91%EB%AF%BC%ED%95%99%EC%82%B4%EC%82%AC%EA%B1%B4&quot;&gt;노근리 양민학살사건&lt;/a&gt;? 그래. 그러고보니 들은 적이 있었던 것도 같아. 하지만 이젠 학살이 하나 더 있고 덜 있고 간에 상관이 없는 그런 지경 아니야?&lt;/p&gt;
&lt;p&gt;학살은 아우슈비츠에서도 있었고, 킬링필드에서도 있었어. 남미나 아프리카 같은 데선 한때 거의 일상적이었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는 원자폭탄도 떨어졌다구. 그리고 사실 빈민가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열악한 상황은 학살이 상시화된 거 아니야? 수많은 학살 가운데 하나가 더 있다고 해서 지금 무슨 차이가 있냐구. &lt;br /&gt;
&lt;/p&gt;
&lt;h4&gt;작은 연못&lt;sup class=&quot;tocAnchorContainer&quot;&gt;&lt;a href=&quot;#toc_2&quot; class=&quot;anchor&quot; title=&quot;toc_2&quot; id=&quot;toc_2&quot;&gt;#&lt;/a&gt;&lt;/sup&gt;&lt;/h4&gt;
&lt;blockquote&gt;
&lt;p&gt;깊은 산 오솔길 옆 자그마한 연못엔&lt;br /&gt;
지금은 더러운 물만 고이고 아무것도 살지않지만&lt;br /&gt;
먼 옛날 이 연못엔 예쁜 붕어 두마리&lt;br /&gt;
살고 있었다고 전해지지요, 깊은 산 작은 연못&lt;br /&gt;
어느 맑은 여름날 연못 속의 붕어 두 마리&lt;br /&gt;
서로 싸워 한 마리는 물 위에 떠오르고&lt;br /&gt;
여린 살이 썩어들어가&lt;br /&gt;
물도 따라 썩어들어가&lt;br /&gt;
연못 속에선 아무것도 살 수 없게 되었죠&lt;br /&gt;
깊은 산 오솔길 옆 자그마한 연못엔&lt;br /&gt;
지금은 더러운 물만 고이고 아무것도 살지 않죠&lt;/p&gt;
&lt;/blockquote&gt;
&lt;p&gt;하지만 학살로 사람들이 죽었어요. 어머니와 아버지가 죽었어요. 가끔씩 티격태격 다퉜고, 때로는 서로 흉도 보고 비웃기도 했지만, 그래도 함께 살던 마을 사람들이 모두 죽었어요.&lt;/p&gt;
&lt;p&gt;순진하게 미군을 믿다가 죽고, 탈출하다 죽고, 말이 안 통해 죽고, 갓난 아이는 그저 울다가 죽고…….&lt;br /&gt;
&lt;/p&gt;
&lt;p&gt;지금껏 우리의 슬픔을 얘기해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어요. 누구는 그럴리 없다고 했고, 누구는 전쟁 통이니 다 그럴 수도 있는 일이라고 했어요.&lt;/p&gt;
&lt;p&gt;&lt;iframe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UcEfqkgiZT8&amp;amp;amp&quot; width=&quot;480&quot; height=&quot;385&quot; frameborder=&quot;&quot; allowfullscreen=&quot;true&quot;&gt;&lt;/iframe&gt;&lt;br /&gt;
&lt;/p&gt;
&lt;p&gt;&lt;iframe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URwHIAXO8Lo&amp;amp;amp&quot; width=&quot;480&quot; height=&quot;385&quot; frameborder=&quot;&quot; allowfullscreen=&quot;true&quot;&gt;&lt;/iframe&gt;&lt;/p&gt;
&lt;p&gt;그래놓고, 이제와 또다시 전쟁을 하자고 해요. 우리를 죽인 사람들이 우리편이고, 우리를 구해준 사람이 적이래요.&lt;/p&gt;
&lt;p&gt;그럼 우리는 누구인가요? 누가 우리인가요? 우리는 적인가요? 적은 우리인가요?&lt;br /&gt;
&lt;/p&gt;
&lt;h4&gt;극장 밖&lt;sup class=&quot;tocAnchorContainer&quot;&gt;&lt;a href=&quot;#toc_3&quot; class=&quot;anchor&quot; title=&quot;toc_3&quot; id=&quot;toc_3&quot;&gt;#&lt;/a&gt;&lt;/sup&gt;&lt;/h4&gt;
&lt;p&gt;비로소 출구가 열렸다.&lt;/p&gt;
&lt;p&gt;어두운 극장을 나서서 바깥 세상으로 나왔다.&lt;/p&gt;
&lt;p&gt;어떻게 나왔을까, 지금까지는 왜 출구가 안 보였을까.&lt;/p&gt;
&lt;p&gt;바깥 세상은, 그러나, 극장 안과 마찬가지로, 어둡다.&lt;/p&gt;
&lt;p&gt;지금이 몇 시인지 모르겠다, 사람들마다 다르게 말했다.&lt;/p&gt;
&lt;p&gt;한 노인은 지금이 상쾌한 아침 10시라며 기지개를 켰고, 어떤 정치인은 지금은 새벽 5시임을 확신한다고 했다.&lt;/p&gt;
&lt;p&gt;토끼를 키운다는 작가들은 지금이 25시라고 입을 모았고, 커다란 벽시계는 밤 11시58분을 가리키고 있었다.&lt;/p&gt;
&lt;p&gt;문득 손목시계를 보니 뉴스를 할 시간이었다.&lt;/p&gt;
&lt;p&gt;&lt;object width=&quot;400&quot; height=&quot;345&quot; classid=&quot;clsid:d27cdb6e-ae6d-11cf-96b8-444553540000&quot; codebase=&quot;http://fpdownload.macromedia.com/pub/shockwave/cabs/flash/swflash.cab#version=9,0,28,0&quot; id=&quot;V000419295&quot;&gt;&lt;param name=&quot;movie&quot; value=&quot;http://play.tagstory.com/player/TS00@V000419295&quot; /&gt;&lt;param name=&quot;allowScriptAccess&quot; value=&quot;always&quot; /&gt;&lt;param name=&quot;allowFullScreen&quot; value=&quot;true&quot; /&gt;&lt;param name=&quot;quality&quot; value=&quot;high&quot; /&gt;&lt;embed src=&quot;http://play.tagstory.com/player/TS00@V000419295&quot; width=&quot;400&quot; height=&quot;345&quot; name=&quot;V000419295&quot; allowScriptAccess=&quot;always&quot; allowFullScreen=&quot;true&quot; quality=&quot;high&quot; type=&quot;application/x-shockwave-flash&quot; pluginspage=&quot;http://www.macromedia.com/go/getflashplayer&quot;&gt;&lt;/embed&gt;&lt;/object&gt;&lt;br /&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 right;&quot;&gt;이 글은 &lt;a href=&quot;http://stryperz.springnote.com/&quot;&gt;스프링노트&lt;/a&gt;에서 작성되었습니다.&lt;/p&gt;
&lt;/div&gt;</description>
      <category>극장전</category>
      <category>노근리</category>
      <category>미국</category>
      <category>미군</category>
      <category>반전영화</category>
      <category>삐까쏘</category>
      <category>손님</category>
      <category>시인과촌장</category>
      <category>신천</category>
      <category>영화</category>
      <category>영화관</category>
      <category>위키리크스</category>
      <category>작은연못</category>
      <category>전쟁</category>
      <category>출구없는극장</category>
      <category>피카소</category>
      <category>하덕규</category>
      <category>학살</category>
      <category>한국전쟁</category>
      <category>황석영</category>
      <author>엔디</author>
      <guid isPermaLink="true">https://endyecrit.tistory.com/222</guid>
      <comments>https://endyecrit.tistory.com/222#entry222comment</comments>
      <pubDate>Mon, 12 Apr 2010 16:15:22 +0900</pubDate>
    </item>
    <item>
      <title>빨간 사과의 진실과 구라</title>
      <link>https://endyecrit.tistory.com/221</link>
      <description>&lt;div class=&quot;xhtmlEditorBody&quot;&gt;&lt;p&gt;IMF 위기를 조금씩 극복해나가던 2001년 한 카드사의 신년 광고는 어느 여배우를 등장시켜 아주 단순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었다: &quot;여러분, 부자되세요. 꼭이요.&quot; 무차별 카드 발급의 여파로 신용불량자가 매해 증가하던 시절이었다. 광고는 대박을 쳤다. 카드사의 이미지도, 배우의 이미지도 덩달아 올라갔다. 카드사로서는 소비자들이 원하는 지점을 정확히 공략한 셈이었다.&lt;/p&gt;&lt;p&gt;소비자들은 모두 부자가 되기를 원했다. 적어도 그런 말이라도 듣기를 바랐다. &quot;부자되세요.&quot;&lt;/p&gt;&lt;p&gt;그래서…… 그때부터였던 듯하다, 친한 사람들끼리 발랄하게 &quot;새해 복 많이 받아&quot; 대신 &quot;새해 돈 많이 받아&quot; 하고 인사를 주고 받았던 것은. 그 말은 묘하게도 위악爲惡스러운 매력이 있었고, 또 누구에게나 어느 정도는 그런 욕심이 있었으므로 '진실'한 말이기도 했다.&lt;/p&gt;&lt;p&gt;은밀한 내면의 욕구를 드러내는 데 점점 사람들은 망설이지 않았고, 또 그런 태도를 상찬하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전 사회가 동참한 '조용한 혁명'이었다.&lt;/p&gt;
&lt;div id=&quot;toc&quot; style=&quot;border: 1px solid tan; padding: 2px 10px 0px; background-color: rgb(255, 255, 250);&quot;&gt;&lt;p&gt;&lt;strong&gt;목차&lt;/strong&gt;&lt;/p&gt;
&lt;hr&gt;
&lt;ol&gt;
&lt;li&gt;&lt;a href=&quot;#toc_0&quot; title=&quot;toc_0&quot; class=&quot;external&quot;&gt;진실과 구라&lt;/a&gt;&lt;/li&gt;
&lt;li&gt;&lt;a href=&quot;#toc_1&quot; title=&quot;toc_1&quot; class=&quot;external&quot;&gt;'솔까말'의 폭력성: '진실'은 진실인가&lt;/a&gt;&lt;/li&gt;
&lt;li&gt;&lt;a href=&quot;#toc_2&quot; title=&quot;toc_2&quot; class=&quot;external&quot;&gt;자본주의의 신, 자본주의의 탄생&lt;/a&gt;&lt;/li&gt;
&lt;li&gt;&lt;a href=&quot;#toc_3&quot; title=&quot;toc_3&quot; class=&quot;external&quot;&gt;자본주의의 선악과&lt;/a&gt;&lt;/li&gt;
&lt;li&gt;&lt;a href=&quot;#toc_4&quot; title=&quot;toc_4&quot; class=&quot;external&quot;&gt;참고문헌&lt;/a&gt;&lt;/li&gt;
&lt;/ol&gt;
&lt;/div&gt;
&lt;h4&gt;진실과 구라&lt;sup class=&quot;tocAnchorContainer&quot;&gt;&lt;a href=&quot;#toc_0&quot; title=&quot;toc_0&quot; class=&quot;anchor&quot; id=&quot;toc_0&quot;&gt;#&lt;/a&gt;&lt;/sup&gt;&lt;/h4&gt;&lt;p&gt;&lt;/p&gt;&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gt;&lt;/p&gt;&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gt;&lt;/p&gt;&lt;p style=&quot;clear: both; float: right;&quot;&gt;&lt;span class=&quot;imageblock&quot; style=&quot;display: inline-block; width: 250px; margin-left: 10px; width: 250px; height: 156px;; height: auto; max-width: 100%;&quot;&gt;&lt;img src=&quot;https://t1.daumcdn.net/cfile/tistory/1365BA184B9B4DE942&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t1.daumcdn.net%2Fcfile%2Ftistory%2F1365BA184B9B4DE942&quot; width=&quot;250&quot; height=&quot;156&quot; filename=&quot;cfile24.uf@1365BA184B9B4DE9425F39.jpg&quot; filemime=&quot;image/png&quot; style=&quot;margin-left: 10px; width: 250px; height: 156px;&quot;/&gt;&lt;/span&gt;&lt;/p&gt;&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gt;개그맨&amp;nbsp;&lt;a href=&quot;http://ko.wikipedia.org/wiki/%EA%B9%80%EA%B5%AC%EB%9D%BC&quot; class=&quot;external&quot; title=&quot;http://ko.wikipedia.org/wiki/%EA%B9%80%EA%B5%AC%EB%9D%BC&quot;&gt;김구라&lt;/a&gt;가 지상파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 언제부터였을까. 어쨌든&amp;nbsp;&lt;a href=&quot;http://ko.wikipedia.org/wiki/%ED%99%A9%EB%B4%89%EC%95%8C&quot; class=&quot;external&quot; title=&quot;http://ko.wikipedia.org/wiki/%ED%99%A9%EB%B4%89%EC%95%8C&quot;&gt;황봉알&lt;/a&gt;&amp;nbsp;등과 함께 인터넷 방송에서 '막말'을 일삼던 김구라는 본래 지상파에 어울리지 않던 인물이다. 지상파 방송사 공채 개그맨으로 데뷔했지만 별다른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던 김구라는, 욕설과 비방 등 거의 무한정의 자유가 가능했던 인터넷 방송에서 물 만난 물고기처럼 인기를 끌었다.&lt;/p&gt;&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gt;그는 지상파에 나와서도 (표현의 수위는 다소 낮췄지만) 이 당시의 기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줬다. 돈과 여자를 밝히고, 뭐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버럭' 하고 화를 낸다. 상대방에게 면박을 주거나 인신공격 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이를 그의 매력으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lt;/p&gt;&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gt;김구라와 대비되는 인물로는 &lt;a href=&quot;http://ko.wikipedia.org/wiki/%EC%B5%9C%EC%A7%84%EC%8B%A4&quot; class=&quot;external&quot; title=&quot;http://ko.wikipedia.org/wiki/%EC%B5%9C%EC%A7%84%EC%8B%A4&quot;&gt;최진실&lt;/a&gt;이 떠오른다. 최진실은 1988년에 데뷔했고, 한 전자회사의 광고를 통해 폭발적인 대중의 인기를 얻는다. 그것은 &quot;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quot;이라는 부르주아 가정의 화목함을 강조한 카피 덕분이었다. 고종석(2009, 23)은 한국일보에 연재한 '여자들' 연작의 두번째 글 &lt;a title=&quot;[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0901/h2009011902381786330.htm]로 이동합니다.&quot; target=&quot;_self&quot; href=&quot;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0901/h2009011902381786330.htm&quot;&gt;최진실-21세기의 제망매(祭亡妹)&lt;/a&gt;에서 그 모습을 이렇게 회상하고 있다:&lt;/p&gt;&lt;p&gt;&lt;/p&gt;&lt;p&gt;&lt;/p&gt;
&lt;blockquote&gt;&lt;p&gt;최진실은, 다른 자살자들과 달리, 내 가족이었다. 내 안쓰러운 누이였다. 그녀는 '만인의 연인'이었다기보다 '만인의 누이'였다.&lt;/p&gt;&lt;p&gt;최진실의 첫 메인 모델 작품인 VTR 광고가 떠오른다. 남편이 퇴근해 돌아오자마자 아내에게 축구경기를 녹화해놓았느냐 묻자, 아내가 살짝 토라져 &quot;나보다 축구가 더 좋다는 거죠?&quot; 라고 항변한다. 남편은 쩔쩔매며 사과하고, 시청자를 향해 아내가 득의양양한 얼굴로 말한다. &quot;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에요!&quot;&lt;br /&gt;
&lt;/p&gt;&lt;p&gt;그 광고 속의 최진실은 단번에 대중을 사로잡았다. 파릇한 나이의 그녀가 행복에 겨워하며 상큼하고 야무진 새댁 역할을 하는 그 광고 덕분에, 그 전까지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최진실은 웬만한 TV드라마 주인공 못지않은 대중 스타가 됐다.&lt;/p&gt;
&lt;/blockquote&gt;그러나 최진실은 생애의 마지막까지 그 '부르주아 가정의 화목함'이라는 잣대 때문에 심한 마음고생을 겪게 된다.&lt;p&gt;남편과의 불화와 폭력, 이혼 후 자녀의 성본(姓本)변경 등으로 이목을 끌었고 사망 후 최근까지도 생전에 광고 모델로 활동했던 한 건설회사의 손해배상 청구가 법원에 의해 받아들여져 2억원을 배상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화목한 가정 생활을 보여줘 아파트 광고에 적합한 이미지를 유지했어야 하는데, 거꾸로 가정 불화로 멍든 얼굴과 충돌현장을 공개해 품위 유지 약정을 위반했다는 것이 &lt;a href=&quot;http://media.daum.net/society/others/view.html?cateid=1067&amp;amp;newsid=20100209163612968&amp;amp;p=yonhap&quot; class=&quot;external&quot; title=&quot;http://media.daum.net/society/others/view.html?cateid=1067&amp;amp;newsid=20100209163612968&amp;amp;p=yonhap&quot;&gt;법원의 판단&lt;/a&gt;이었다.&lt;/p&gt;&lt;p&gt;그러므로 어쩌면 고종석(2009, 24)의 이어지는 이 말을 우리는 일정 부분 긍정하게 된다:&lt;/p&gt;&lt;p&gt;&lt;/p&gt;
&lt;blockquote&gt;&lt;p&gt;화장품회사 사장이든 전자제품회사 회장이든 아파트 건설업자이든, 최진실과 광고로 이어졌던 자본가들을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녀를 상품미학의 한 톱니바퀴로 만든 이 자본주의체제를 나는 어쩔 수 없이 지지한다.&lt;/p&gt;&lt;p&gt;그것이 인간의 비천한 심성에 가장 들어맞는 체제이므로. 나는 최진실이 나온 드라마나 영화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그것들은 흔히 과장된 비장함이나 비윤리적 희극성, 비현실성에 감염돼 있었다. 그러나 그 영화들과 드라마들에 나온 최진실이라는 누이를 나는 은근히 좋아했다.&lt;/p&gt;
&lt;/blockquote&gt;&lt;p&gt;김구라가 '진실'을 폭로하는 방식으로 연예 활동을 하고, 최진실은 '구라' 곧 화목한 가정의 환상을 유포함으로써 인기를 유지했다는 것은 참 아이러니컬하다.&lt;/p&gt;&lt;p&gt;최진실은, 그러니까 '구라'와 환상은 이제 이 땅에 없다. 김구라의 '진실'은 여전히 살아남았고. 그러나 김구라의 '진실'은 과연 진실일까.&lt;/p&gt;

&lt;h4&gt;'솔까말'의 폭력성: '진실'은 진실인가&lt;sup class=&quot;tocAnchorContainer&quot;&gt;&lt;a href=&quot;#toc_1&quot; title=&quot;toc_1&quot; class=&quot;anchor&quot; id=&quot;toc_1&quot;&gt;#&lt;/a&gt;&lt;/sup&gt;&lt;/h4&gt;&lt;p&gt;'88만원 세대'의 저자인 박권일은 주간지 『시사인』에 실은 &lt;a href=&quot;http://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2490&quot; class=&quot;external&quot; title=&quot;http://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2490&quot;&gt;「끔찍하다, 그 솔직함」&lt;/a&gt;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누리꾼들의 은어인 '솔까말'을 소개한다.&lt;/p&gt;&lt;p&gt;그에 따르면 '솔까말'은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의 준말로 거짓과 위선을 폭로하는 통쾌함을 주지만, 반대로 솔직함 속에서 돈과 권력을 욕망하는 사회를 그대로 반영하는 폭력성을 지녔다는 것이다. 그는 이 말이 속마음--그의 표현대로라면 혼네本音--을 그대로 드러낸다는 점에서 폭력적이라고 말했지만, 사실 '솔까말'의 폭력성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lt;/p&gt;&lt;p&gt;예를 들어 우리가 과거 '병신'이라고 불렀던 사람들을 '장애인'으로 바꿔 부르는 것은, 그들이 진짜 '병신'인데 그걸 그대로 드러내면 예의 없는 표현이라 '장애인'이라는 대체 수단을 마련한 것이 아니다. 장애인은 '병신'이 아니라 단지 신체 어느 부분이 불편한 구석이 있을 따름이다. 하지만 여기에 '솔까말'을 대입하면 &quot;솔까말 그게 '병신'이지&quot;가 된다. 이런 것이 진짜 '솔까말'의 폭력성이다.&lt;/p&gt;&lt;p&gt;즉, '솔까말'은 상대방이 어떤 진실을 믿든지, 그것은 위선일 뿐이라고 지적할 수 있는 '전가의 보도'다. &quot;솔까말 돈이 최고지, 솔까말 SKY대학이 최고지, 솔까말 삼성 없으면 대한민국 굶어죽지….&quot; 이 같은 말들은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라는 허울 속에, 사회의 잘못된 구조를 더욱 고착화시킨다. 돈이 최고가 아니라고 믿는 사람들도, SKY대학이 최고가 아니라고 믿는 사람들도, 삼성이 없어도 대한민국이 굶어죽지 않는다고 믿는 사람들은 이 말 앞에서 자신의 주장을 열심히 늘어놓아야 하지만 대체로 소용이 없다. '솔까말'은 어떤 근거를 들어 하는 언사가 아니고, 단지 자신의 '믿음'만을 드러내는 말이기 때문이다.&lt;/p&gt;&lt;p&gt;조금 더 나가보자면, 누군가 &quot;솔까말 돈이 최고지&quot;라고 말하면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생각하던 듣는이는 문득 자신이 스스로를 속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그런데 '솔까말'은 구체적인 근거가 없이 단지 세상에 횡행하는 '속설'을 기초로 한 말이기 때문에, 이 성찰은 겉돌게 된다. 이 과정에서 일부 순수한 사람들은 자신을 혐오하거나 세계를 비관하게 될 수도 있다. '솔까말'은 이렇게 세계를 긍정했던 사람들을 쓰러뜨린다.&lt;/p&gt;&lt;p&gt;'솔까말'은 솔직하게 진실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솔직하게 '속설'을 드러낼 뿐이다.&lt;/p&gt;
&lt;h4&gt;자본주의의 신, 자본주의의 탄생&lt;sup class=&quot;tocAnchorContainer&quot;&gt;&lt;a href=&quot;#toc_2&quot; title=&quot;toc_2&quot; class=&quot;anchor&quot; id=&quot;toc_2&quot;&gt;#&lt;/a&gt;&lt;/sup&gt;&lt;/h4&gt;&lt;p&gt;공영방송 KBS는 최근 「공부의 신」이라는 드라마에 이어 「부자의 탄생」을 방송하고 있다. 이들 드라마는 공영방송이 어떻게 '솔까말' 식의 '진실'을 전파하는 수단이 될 수 있는지 상세하게 보여줬다.&lt;/p&gt;&lt;p&gt;시청률 면에서 동시간대 최고를 기록했던 「공부의 신」은 세상을 움직이는 사람들은 '국립 천하대' 출신이며, 이런 세상을 고치려면 '천하대'에 가라고 외친다. 천하대는 한국인들에게 '최고 대학'이라고&amp;nbsp;받아들여지는 '국립 서울대'를 떠올리게 한다. 실제로 주연 배우인 김수로는 &lt;a href=&quot;http://media.daum.net/entertain/others/view.html?cateid=100030&amp;amp;newsid=20091229160713793&amp;amp;p=yonhap&quot; class=&quot;external&quot; title=&quot;http://media.daum.net/entertain/others/view.html?cateid=100030&amp;amp;newsid=20091229160713793&amp;amp;p=yonhap&quot;&gt;인터뷰&lt;/a&gt;에서 '서울대'라는 명칭을 방송에서 쓰지 못하는 데 대한 아쉬움을 드러내고 있기도 하다:&lt;/p&gt;
&lt;blockquote&gt;&lt;p&gt;그는 &quot;이번 작품에서 '서울대'라는 명칭을 그대로 못 쓰고 '천하대'라는 가상의 대학을 상정해서 제작한다&quot;면서 &quot;그러고 보니 시청자들에게 내용이 다가가는 데 어려움이 많고, 촬영 현장에서도 '서울대'라고 했다가 '천하대'로 고치는 등 NG도 많이 난다&quot;고 아쉬워했다.&lt;/p&gt;
&lt;/blockquote&gt;&lt;p&gt;하지만, 천하대가 최고대학이라는 어떤 근거도 드라마에서는 찾을 수 없다. 그냥 모두가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을 뿐이다. 이들은 '천하대'에 가서 어느 선생님께 무엇을 배우고 싶다는 목표도 없다. 심지어 결말에서는 천하대에 합격하고도 다른 길을 찾아 나서는 등장인물도 나온다.&lt;/p&gt;&lt;p&gt;'부자의 탄생'도 마찬가지다. 이 드라마는 '역시 돈이 최고'라는 사회적 인식의 병폐, 곧 '속설'을 강화한다.&lt;/p&gt;&lt;p&gt;재벌과의 '원나이트스탠드'로 태어난 주인공이 성공해 재벌 아버지를 찾는다는 줄거리는, 일종의 '핏줄결정론'을 형성하며 한국 재벌가에 만연한 불법·편법 경영권승계를 정당화할 우려도 있다.&lt;/p&gt;&lt;p&gt;&quot;KBS가 이상의 실현과 올바른 가치관의 확립이라는 건강한 사회관 대신 '천하대'와 '돈'이라는, 현물화된 욕망의 정점만을 추구하는 현대극을 기획하고 있다는데 큰 우려를 표하고 싶다&quot;는 &lt;a href=&quot;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9919&quot; class=&quot;external&quot; title=&quot;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9919&quot;&gt;KBS 시청자위원회 보고서&lt;/a&gt;도 나올 정도다.&lt;/p&gt;
&lt;h4&gt;자본주의의 선악과&lt;sup class=&quot;tocAnchorContainer&quot;&gt;&lt;a href=&quot;#toc_3&quot; title=&quot;toc_3&quot; class=&quot;anchor&quot; id=&quot;toc_3&quot;&gt;#&lt;/a&gt;&lt;/sup&gt;&lt;/h4&gt;&lt;p&gt;&lt;/p&gt;&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gt;&lt;/p&gt;&lt;p style=&quot;clear: both; float: right;&quot;&gt;&lt;span class=&quot;imageblock&quot; style=&quot;display: inline-block; width: 200px; margin-left:10px;; height: auto; max-width: 100%;&quot;&gt;&lt;img src=&quot;https://t1.daumcdn.net/cfile/tistory/12115F174B9B4D6F87&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t1.daumcdn.net%2Fcfile%2Ftistory%2F12115F174B9B4D6F87&quot; width=&quot;200&quot; height=&quot;171&quot; filename=&quot;cfile8.uf@12115F174B9B4D6F87B3E8.jpg&quot; filemime=&quot;image/jpeg&quot; style=&quot;margin-left:10px;&quot;/&gt;&lt;/span&gt;&lt;/p&gt;&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gt;글머리에 언급했던 카드사는 '빨간 사과'를 기업 이미지로 쓰고 있다. 이에 걸맞게도 그 카드사는 광고 한 편으로 한국 사회 전체가 자본주의의 선악과 열매를 따먹도록 한 셈이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눈이 밝아져' 선과 악, '진실'과 '구라'를 알게 됐다. 그러므로 이를테면 '부자되세요'는 자본주의적 원죄原罪다. 순수한 사람도 닳고닳은 사람도 이 원죄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lt;/p&gt;&lt;p&gt;&lt;/p&gt;&lt;p&gt;그러나, 우리는 이 극단적인 자본주의로부터 우리를 구원할 무엇을 찾을 수는 없을까. '눈이 밝아져' 이 원죄를 받아들이게 됐다면, 스스로 우리 눈을 어둡게 하면 어떨까.&lt;/p&gt;
&lt;blockquote&gt;&lt;p&gt;그것은 어머니가 내게 사과를 사오라고 돈을 주셨을 때의 일이었다. 어머니는 1그로센짜리 은화를 주셨다. 그런데 사과 값은 6페니히밖에 되지 않았다. 가게 주인 여자한테 1그로센짜리 은화를 내주자, 여인은 내가 보기에 아주 우울한 표정으로 오늘은 하루 종일 아무것도 팔지 못했기 때문에 거스름돈이 한푼도 없노라 말했다. 그리고는 1그로센어치를 모두 사가길 원하는 것이었다. 그때 6페니히짜리 동전이 내 주머니에 있다는 생각이 언뜻 떠올랐다. 그것이면 지금의 곤란한 문제가 풀릴 거라는 생각에 기뻐하면서 그것을 부인에게 내주며 말했었다.&lt;/p&gt;&lt;p&gt;&quot;이제 이걸로 나한테 6페니히를 거슬러 줄 수 있잖아요?&quot;&lt;/p&gt;&lt;p&gt;하지만 그녀는 내 뜻을 영 알아채지 못하고는 1그로센짜리 은화를 내게 되돌려 주고 6페니히짜리 동전을 받아 넣었던 것이다.&lt;/p&gt;
&lt;/blockquote&gt;&lt;p&gt;막스 뮐러(1987, 34)가 언급한 이 대목은 내것과 남의 것을 구분하지 못하는 어린이가 얼마나 세상을 아름답게 할 수 있나 하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어린 시절의 뮐러에게는 '돈'보다 중요한 것이 아주 많았다. 무언가 곤란한 일이 자신의 도움으로 풀릴 수 있다면 자신의 돈을 기꺼이 내놓을 수 있다.&amp;nbsp;번역자인 차경아는 이 모습을 들어 그를 '귀여운 공산주의자'(143)라고 부르는데, 어린 뮐러가 커 가면서 '솔까말'이라는 자본주의 선악과를 따먹었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순수한 사랑 이야기를 담은 이 책에서 짐작할 수 있을 따름이다.&lt;/p&gt;&lt;p&gt;우리는 어쩌면 너무 눈이 밝은 것이 아닐까.&lt;/p&gt;
&lt;h4&gt;참고문헌&lt;sup class=&quot;tocAnchorContainer&quot;&gt;&lt;a href=&quot;#toc_4&quot; title=&quot;toc_4&quot; class=&quot;anchor&quot; id=&quot;toc_4&quot;&gt;#&lt;/a&gt;&lt;/sup&gt;&lt;/h4&gt;&lt;p&gt;고종석. 2009. 『고종석의 여자들』. 서울:개마고원.&lt;br /&gt;
Max Müller. 1987. 『독일인의 사랑』. 신역판. 차경아 옮김. 서울:문예출판사.&lt;/p&gt;&lt;/div&gt;&lt;p&gt;&lt;br /&gt;&lt;/p&gt;</description>
      <category>어느어릿광대의견해</category>
      <category>BC카드</category>
      <category>KBS</category>
      <category>Max-M&amp;uuml;ller</category>
      <category>고종석</category>
      <category>공부의신</category>
      <category>공산주의자</category>
      <category>김구라</category>
      <category>독일인의사랑</category>
      <category>돈</category>
      <category>막스뮐러</category>
      <category>부르주아</category>
      <category>부자</category>
      <category>부자의탄생</category>
      <category>선악과</category>
      <category>속설</category>
      <category>솔까말</category>
      <category>솔직히까놓고말해서</category>
      <category>신용카드</category>
      <category>여자들</category>
      <category>자본주의</category>
      <category>진실과구라</category>
      <category>차경아</category>
      <category>최진실</category>
      <author>엔디</author>
      <guid isPermaLink="true">https://endyecrit.tistory.com/221</guid>
      <comments>https://endyecrit.tistory.com/221#entry221comment</comments>
      <pubDate>Mon, 15 Mar 2010 03:00:00 +0900</pubDate>
    </item>
    <item>
      <title>무협지와 80년대: 김영하 『무협 학생운동』, 유하 『무림일기』</title>
      <link>https://endyecrit.tistory.com/220</link>
      <description>&lt;div class=&quot;xhtmlEditorBody&quot;&gt;&lt;p&gt;90년대 끝무렵에 대학에 들어갔다. 사람들은 우리에게 '세기말 학번'이라고 했다. 당시 내가 있던 대학의 총학생회은 이른바 '비(운동)권'이었고, 단과대 학생회는 NL(민족자주)이었다. 별로 개의치 않았다. 새터(신입생수련회)에서 단대학생회가 주는 가방을 받았다. '통일'이란 글씨가 새겨져 있었고 보라색과 회색이 있었는데, 나는 바라던 회색 가방을 받아서 내심 기뻤다. 학생회는 신입생들에게 IMF를 주제로 촌극을 만들라고 했다. 우리는 각 과/반별로 모여 촌극을 준비했고, 한국이가 대학 들어가서 공부 안 하고 놀다가 결국 F 학점을 받지만(I am F!=IMF), 마음을 고쳐먹고 다시 열심히 공부해 A로 올라선다는 진부한 스토리의 우리 과/반 촌극은 전체 2위를 차지했다. 그게 다였다.&lt;/p&gt;&lt;p&gt;우리네 동기들은 세기말의 데카당스보다는 춘삼월 소주의 데카당스에 빠져 있었고, IMF의 우울함보다는 매년 4월 신입생들에게 찾아오는--대학생들이 4월병이라 부르는--존재론적 우울증에 침윤되어 있었다. 성적性的 문제보다는 성적成績 문제로 고민하고 있었고. 그게 다였다.&lt;/p&gt;&lt;p&gt;의식화 교육이나 인식론적 충격 같은 건, 단언하건데 없었다.&lt;/p&gt;
&lt;blockquote&gt;&lt;p&gt;맑스에 대한 논의, 내지 집착이&lt;br /&gt;
언제까지 대학 캠퍼스를 특징짓는 하나의&lt;br /&gt;
강한 열기로 남아 있을지 예측하기는 어렵지만&lt;br /&gt;
이것은 분명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드러내는 것이고&lt;br /&gt;
나는 이 시대 학생들이 하는 고민과 방황은&lt;br /&gt;
맑스가 잊혀지는 시대가 되어도 후배 학생들에게&lt;br /&gt;
기억되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개인적으로 나는&lt;br /&gt;
중고교 시절에 보수적인 교육, 특히 반공 이데올로기나&lt;br /&gt;
발전 이데올로기에 찌든 교육을 받아온 학생들이&lt;br /&gt;
대학에 입학하여 1,2년 동안 열성적으로&lt;br /&gt;
'맑스 학습'을 하는 것을 바람직하게 생각한다.&lt;br /&gt;
요즘처럼 관심의 폭이 좁고 쉽게 싫증을 내며 사고의&lt;br /&gt;
호흡이 짧은 대학생들이라면 '맑스 읽기'는&lt;br /&gt;
분명 그들의 사고의 폭을 넓히는 데 크게 도움이 되는&lt;br /&gt;
책 읽기 중 하나이다. 젊은이들의 외로움에 지친 모습들,&lt;br /&gt;
지성적이기를 포기한, '휴거설'을 퍼뜨리고 국수주의적&lt;br /&gt;
전통부활을 외치는 모습이 캠퍼스에 늘어가면 갈수록&lt;br /&gt;
상대적으로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lt;/p&gt;
&lt;/blockquote&gt;&lt;p&gt;조(한)혜정(84-85) 선생이 1992년에 펴낸 책에서 언급한 이 글은 분명 '의식화 교육'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그로부터 4년 뒤에 있은 소위 '한총련 사태'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7년 뒤의 대학에서 그런 '의식화 교육'은 (전혀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학생들의 관심의 폭은 모르긴 몰라도 훨씬 더 좁아졌고, 싫증은 훨씬 더 잘 낼 것이며, 사고의 호흡은 전보다 더더욱 짧아졌을 것이 분명하다. 2008년 오늘의 대학은 역시 잘 모르지만 일반적으로 그 경향이 더 심해진 모습으로 비쳐진다.&lt;/p&gt;
&lt;div style=&quot;border: 1px solid tan; padding: 2px 10px 0px; background-color: rgb(255, 255, 250);&quot; id=&quot;toc&quot;&gt;
&lt;strong&gt;목차&lt;/strong&gt; 
&lt;hr&gt;

&lt;ol&gt;
&lt;li&gt;&lt;a class=&quot;external&quot; title=&quot;toc_0&quot; href=&quot;#toc_0&quot;&gt;독두마왕 '전두'와의 사투: 김영하 『무협 학생운동』&lt;/a&gt;&lt;/li&gt;
&lt;li&gt;&lt;a class=&quot;external&quot; title=&quot;toc_1&quot; href=&quot;#toc_1&quot;&gt;무협지까지 금서로 만드는 전대미문의 세상: 유하 『무림일기』&lt;/a&gt;&lt;/li&gt;
&lt;li&gt;&lt;a class=&quot;external&quot; title=&quot;toc_2&quot; href=&quot;#toc_2&quot;&gt;무협지와 21세기: MB시대&lt;/a&gt;&lt;/li&gt;
&lt;li&gt;&lt;a class=&quot;external&quot; title=&quot;toc_3&quot; href=&quot;#toc_3&quot;&gt;참고문헌&lt;/a&gt;&lt;/li&gt;
&lt;/ol&gt;&lt;/div&gt;
&lt;h4&gt;독두마왕 '전두'와의 사투: 김영하 『무협 학생운동』&lt;sup class=&quot;tocAnchorContainer&quot;&gt;&lt;a id=&quot;toc_0&quot; class=&quot;anchor&quot; title=&quot;toc_0&quot; href=&quot;#toc_0&quot;&gt;#&lt;/a&gt;&lt;/sup&gt;&lt;/h4&gt;&lt;p style=&quot;clear: both; float: right;&quot;&gt;&lt;span class=&quot;imageblock&quot; style=&quot;display: inline-block; width: 150px; margin-left:10px;; height: auto; max-width: 100%;&quot;&gt;&lt;img src=&quot;https://t1.daumcdn.net/cfile/tistory/1105AA134B4174CFCE&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t1.daumcdn.net%2Fcfile%2Ftistory%2F1105AA134B4174CFCE&quot; width=&quot;150&quot; height=&quot;220&quot; filename=&quot;cfile3.uf@1105AA134B4174CFCEC6A3.jpg&quot; filemime=&quot;image/jpeg&quot; style=&quot;margin-left:10px;&quot;/&gt;&lt;/span&gt;&lt;/p&gt;&lt;p&gt;어느 날 나는 시를 공부한답시고 술을 퍼마시고는, 차가 끊겨 귀가를 못해&amp;nbsp;한 선배의 집에서 밤을 보내게 되었다. NL 출신의 그 선배는, 학생회 일을 맡을 무렵 도망치듯 군에 입대한,&amp;nbsp;곡절의 주인공이었다. 술에 취하면 &quot;그래도 나는 내셔널리스트야.&quot;라고 종종 되뇌이면서도 끝없이 서정시를 써냈던 그의 책꽂이에는 시집과 평론집이 꽂혀 있었다. 그 한편으로 '학생운동'이라는 제목의 책이 보였다. 학생운동에 대한 연구서일까, 연대기일까, 아니면 어떤 종류의 금서禁書일까; 그게 아니라 『무협 학생운동』이라는 무협지였다. 지은이는 김영하. 당시는 아직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를 보기 전이었고, 지은이의 이름은&amp;nbsp;꽤나 낯이 설었다. 책장을 열자, 열한 장으로 구성된 소설이었다. 첫장의 제목은 '중원에 불어오는 피바람'. 전형적이다; 가만 보면 서두의 문장도 그러하다(7):&lt;/p&gt;&lt;p&gt;&lt;/p&gt;
&lt;blockquote&gt;&lt;p&gt;하늘엔 먹구름이 짙게 깔려 있었다. 류는 아마도 진눈깨비가 내리려나보다 생각하였다. 날씨는 점점 추워졌고 중원 백성들의 가슴에는 재앙의 기운이 내려앉고 있었다.&lt;br /&gt;
류는 박통의 장례행렬을 내려다보며 희망보다는 앞날에 대한 염려가 앞섰다.&lt;br /&gt;
'중원에 또다시 피바람이 몰아치겠구나…'&lt;/p&gt;
&lt;/blockquote&gt;&lt;p&gt;1979년 짧은&amp;nbsp;서울의 봄과 길고 긴 겨울의 80년대를 맞는 예감이라는 것이, 무협지의 전형적인 시작과 흡사하다는 것부터가 80년대를 무협지적 세계관으로 서술하려는 것이 아주 그릇된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책은 '계엄진법(계엄령)'과 '긴조진법(긴급조치)'에 능했던 박통이 승상 재귀에게 살해당한 이후부터 시작하고 있다. '서울의 봄'이 아주 짧게 끝날 것이라는 점은 이런 배경 설정을 알아보면 금방 눈치챌 수 있다. 제왕이 승상에게 살해당한 마당에 어찌 '봄'이 오겠는가. 그러나 무사들(학생들)은 그런 사실은 꿈에도 모른 채 천연스럽게 '조로가朝露歌(아침이슬)'를 부른다.&lt;/p&gt;&lt;p&gt;서울의 봄은 독두禿頭(대머리)마왕 '전두'가 '육사방陸士幇' 동문인 '노갈'에게 보낸 서찰 한 통으로 그 끝을 예고한다(14):&lt;/p&gt;
&lt;blockquote&gt;&lt;p&gt;박통께서 서거한 뒤, 중원의 혼란은 차마 눈 뜨고는 못 볼 지경이네. 자네도 알다시피 박통께서 다스리던 시절, 실로 중원은 태평성대였네. […]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가 나서야겠네. 왕궁만 장악하고 아메대왕님의 윤허만 얻는다면 중원의 평정은 그리 어렵지 않을걸세.&lt;/p&gt;
&lt;/blockquote&gt;&lt;p&gt;이 책은 &lt;a class=&quot;external&quot; title=&quot;http://ko.wikipedia.org/wiki/12.12&quot; href=&quot;http://ko.wikipedia.org/wiki/12.12&quot;&gt;12.12&lt;/a&gt;가 미국(아메대왕)의 묵인을 염두에 둔 군사 쿠데타임을 벌써부터 강조하고 있는 셈이다.&lt;/p&gt;&lt;p&gt;한편 이 때를 즈음해 무사들은 장안성 광장에 모였지만, 왕궁으로 가자는 이들의 주장을 묵살하고 한 '장문인'은 '오늘 우리의 의사를 조정에 충분히 전달했다, 이만 해산하도록 하자'고 말한다. 유명한 심재철의 80년 5월 15일 &lt;a class=&quot;external&quot; title=&quot;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401041857251&amp;amp;code=210010&quot; href=&quot;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401041857251&amp;amp;code=210010&quot; target=&quot;&quot;&gt;서울역회군&lt;/a&gt; 사건이 이 책에 고스란히 재현돼 있는 것이다.&lt;/p&gt;&lt;p&gt;이를테면 이 책의 장점은 만만찮았던 80년대의 수많은 사건을 빠짐없이 책 한 권에 담아낸 것이다. '서울역 회군' 이후 자객 '공수단'이 '광조성'에서 만행을 저지르고, 어디서나 '백건단白巾團(백골단)'이 정파 무사들을 사로잡으려 기승을 부린다. 자민방(NL)에 속한 주인공 류의 사제인 민민방(ND)의 초아는 '문귀'라는 자에게 성고문을 당한다. 문귀동이라는 자가 저지른, 지금은 &lt;a class=&quot;external&quot; title=&quot;http://ko.wikipedia.org/wiki/%EB%B6%80%EC%B2%9C%EC%84%9C_%EC%84%B1%EA%B3%A0%EB%AC%B8_%EC%82%AC%EA%B1%B4&quot; href=&quot;http://ko.wikipedia.org/wiki/%EB%B6%80%EC%B2%9C%EC%84%9C_%EC%84%B1%EA%B3%A0%EB%AC%B8_%EC%82%AC%EA%B1%B4&quot; target=&quot;&quot;&gt;부천서 성고문 사건&lt;/a&gt;으로 알려진 사건의 재현이다.&lt;/p&gt;&lt;p&gt;이 시기에 나오는 정파 무사 편의 '영웅'들도 만만치 않다. 자민방의 '강철대사'는 &quot;이 모든 것은 아메마황의 탓&quot;이라 주장하며 등장하고, 민민방의 '초민선사'는 전두마왕을 꺾어 평화를 찾아야 한다고 나타난다. 이들은 물론 '강철서신'으로 유명한 NL의 강철 &lt;a class=&quot;external&quot; title=&quot;http://ko.wikipedia.org/wiki/%EA%B9%80%EC%98%81%ED%99%98_%281962%EB%85%84%29&quot; href=&quot;http://ko.wikipedia.org/wiki/%EA%B9%80%EC%98%81%ED%99%98_%281962%EB%85%84%29&quot;&gt;김영환&lt;/a&gt;과 ND(민족민주) 최민의 소설적 변용이다. (한 가지 이상한 점은 강철이 제자 류에게 주는 비서秘書가 『기발旗發』이라는 점이다(62). '깃발'은 ND 민추위의 것으로 소설에서라면 초민선사의 것이라야 온당하기 때문이다.)&lt;/p&gt;&lt;p&gt;당시 논쟁했던 '사구체(사회구성체)논쟁'도 강철과 초민의 '논검'으로 그려져 있고, 강철 김영환의 밀입북도 보안파 무사에게 쫓기던 강철선사가 의식을 잃고 일성천존一星天尊이 다스리는 나라로 간다는 내용으로 그려져 있다(238-239):&lt;/p&gt;
&lt;blockquote&gt;&lt;p&gt;&quot;안심하십시오. 이곳은 중원의 사람들이 올 수 없는 땅입니다. 이곳은 일성천존一星天尊께서 다스리는 나라로 아메마황조차 범접할 수 없는 곳입니다.&quot;&lt;/p&gt;&lt;p&gt;강철은 탄성을 질렀다. 이 나라에 대한 얘기는 어렴풋이 들은 적이 있었다. 중원에선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신비의 나라로 붉은 마귀와 늑대들이 살고 있다고 전해져 오는 나라였다. 그러나 강철이 둘러보니 붉은 마귀와 늑대는 보이지 않고 사람들은 아주 온화하고 친절하였다.&lt;/p&gt;&lt;p&gt;[…]&lt;/p&gt;&lt;p&gt;&quot;이곳은 옛날 아메마황의 침략으로 쑥대밭이 되었던 적이 있소. 하여 가족 중 한두 명은 아메마황과 그 부하들에게 죽지 아니한 집이 없소. 그래서 일성천존께선 아메마황을 물리친 이후, 모든 백성에게 주사신공主思神功이라는 독특한 무공을 전수하여 주셨소. […]&quot;&lt;/p&gt;
&lt;/blockquote&gt;&lt;p&gt;반면 초민선사는 서역으로 가서 '변증창'과 '유물검', 그리고 마극사馬克思와 은격사恩格斯가 지은 무림 최대 비급&amp;nbsp;『자본강요』, 『공생당선언』, 『서역이념』이라는 책 세 권을 얻는다. 물론 변증법적 유물론과 『자본론』, 『공산당선언』, 『독일이데올로기』의 변용일 것이다.&lt;/p&gt;&lt;p&gt;물론 '국본대방(&lt;a class=&quot;external&quot; title=&quot;http://ko.wikipedia.org/wiki/%EB%AF%BC%EC%A3%BC%ED%97%8C%EB%B2%95%EC%9F%81%EC%B7%A8%EA%B5%AD%EB%AF%BC%EC%9A%B4%EB%8F%99%EB%B3%B8%EB%B6%80&quot; href=&quot;http://ko.wikipedia.org/wiki/%EB%AF%BC%EC%A3%BC%ED%97%8C%EB%B2%95%EC%9F%81%EC%B7%A8%EA%B5%AD%EB%AF%BC%EC%9A%B4%EB%8F%99%EB%B3%B8%EB%B6%80&quot;&gt;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lt;/a&gt;)'의 설립과 '열(&lt;a title=&quot;[http://ko.wikipedia.org/wiki/%EC%9D%B4%ED%95%9C%EC%97%B4]로 이동합니다.&quot; href=&quot;http://ko.wikipedia.org/wiki/%EC%9D%B4%ED%95%9C%EC%97%B4&quot; target=&quot;_self&quot;&gt;이한열 열사&lt;/a&gt;)'의 죽음, 그리고 그것이 도화선이 된 6월항쟁과 '노갈'의 선언(&lt;a class=&quot;external&quot; title=&quot;http://ko.wikipedia.org/wiki/6.29_%EC%84%A0%EC%96%B8&quot; href=&quot;http://ko.wikipedia.org/wiki/6.29_%EC%84%A0%EC%96%B8&quot; target=&quot;&quot;&gt;6.29 선언&lt;/a&gt;)도 초보적이나마 언급돼 있다.&lt;/p&gt;&lt;p&gt;6.29 선언이라는 '승리 아닌 승리'를 거두고 나서 류는 초아에게 이렇게 말한다(260-261):&lt;/p&gt;&lt;p&gt;&quot;초아, 어쩌면 우리가 겪었던 칠 년보다 더 어려운 세월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나 역시 두렵지 않소. 이제 다시 새로운 시작이오. 아마도 우린 중원의 앞날을 두고 다시 쟁패할 지도 모르지만 이전처럼 무기력하게 당하지만은 않을 것이오.&quot;&lt;/p&gt;
&lt;h4&gt;무협지까지 금서로 만드는 전대미문의 세상: 유하 『무림일기』&lt;sup class=&quot;tocAnchorContainer&quot;&gt;&lt;a id=&quot;toc_1&quot; class=&quot;anchor&quot; title=&quot;toc_1&quot; href=&quot;#toc_1&quot;&gt;#&lt;/a&gt;&lt;/sup&gt;&lt;/h4&gt;&lt;p&gt;『무협 학생운동』보다 3년 앞서 1989년에 출간된 유하의 첫 시집 『무림일기』도 80년대를 무협지적 세계관으로 읽어낸 텍스트다. 당연하게도 『무협 학생운동』과 마찬가지로 '서울의 봄'과 그 경고로 시작한다(9):&lt;/p&gt;
&lt;blockquote&gt;&lt;p&gt;온 세상이 다 노랗다&lt;br /&gt;
봇물 터지듯 만발한&lt;br /&gt;
개나리꽃&lt;br /&gt;
시대의 노란 신호등&lt;br /&gt;
해빙의 봄일수록&lt;br /&gt;
돌아가시오&lt;br /&gt;
돌아가시오&lt;br /&gt;
한다&lt;/p&gt;&lt;p&gt;- 「개나리꽃 ―여는 시」전문全文&lt;/p&gt;
&lt;/blockquote&gt;&lt;p&gt;『무림일기』는 시집이라는 면도 있고, 해서 『무협 학생운동』보다 더 종합적이거나 더 단편적이다.&lt;/p&gt;&lt;p&gt;가령 '무림일기' 연작의 첫 작품인 「무력武歷 18년에서 20년 사이」는 '무림패왕 천마대제 만박'(박정희)이 '천상옥음 냉약봉'(심수봉) 등이 그의 진기를 분산시킨 사이 '낙성천마 금규'(김재규)에게 불의의 일장을 맞고 척살되자 '광두일귀 동문혹'(전두환)이 나타나 중원을 평정하고 '칠청단'(삼청교육대)을 동원해 무고한 백성을 괴롭힌 이야기며,&amp;nbsp; '공수무극파천장'(공수부대)으로 '하남'(광주) 땅 민초들의 항쟁을 짓밟은 대혈겁 이야기가 고작 37행에 정리돼 나타나 있다. 그러는 사이 유하는 &quot;무협신문들은 […] / 강력한 무공의 소유자가 중원을 다스려야 한다고 / 수심에 가득찬 기사를 썼지만 대부분 인면수심들이었다&quot;거나 &quot;무력武歷은 무력武力으로밖에 지킬 수 없다&quot; 따위로 희극과 비극 사이를 삼투시키는 말놀이를 동원한다.&lt;/p&gt;&lt;p&gt;'무림일기' 연작의 일곱 번째 작품인 「정통종합검법」은 당시 수험생들의 필독서였던 &lt;a class=&quot;external&quot; title=&quot;http://ko.wikipedia.org/wiki/%EC%86%A1%EC%84%B1%EB%AC%B8&quot; href=&quot;http://ko.wikipedia.org/wiki/%EC%86%A1%EC%84%B1%EB%AC%B8&quot;&gt;송성문&lt;/a&gt;의 영어 학습서 『정통종합영어』--후에 『성문종합영어』로 개칭된--에 빗댄 표현으로, 시인은 책 속에 실린 명사名詞검법의 '붓은 검보다 강하다, 검약필강'의 구결(표현)을 뽑아내 &quot;중원무림의 젊은이들이 / 검약필강의 은밀한 구결을 뼛속 깊이 해독해내는 날 / 붓의 무형강기가 그 어떤 초식보다 날카롭게 / 중원무림을 정통으로 꿰뚫으리라 / 중원은 정통성을 되찾으리라&quot;고 예언한다. 더 단편적인 것에서 더 종합적인 내용을 뽑아내는 시의 묘미다.&lt;/p&gt;&lt;p&gt;당시의 &lt;a class=&quot;external&quot; title=&quot;http://ko.wikipedia.org/wiki/%EB%B3%B4%EB%8F%84%EC%A7%80%EC%B9%A8&quot; href=&quot;http://ko.wikipedia.org/wiki/%EB%B3%B4%EB%8F%84%EC%A7%80%EC%B9%A8&quot;&gt;보도지침&lt;/a&gt;을 무협지 형식으로 꾸며낸 시 「오늘의 전서구」도 짧지만 강렬하다(44):&lt;/p&gt;
&lt;blockquote&gt;&lt;p&gt;무림맹은 다음과 같은 전갈을 보낸다&lt;/p&gt;&lt;p&gt;무림 비무대회가 열리면&lt;br /&gt;
무림제일문보다 소림파나 무당파가 우세&lt;br /&gt;
불쾌한 표현이니 비판하라&lt;/p&gt;&lt;p&gt;오늘있는 공심대사와 하남일존의 비무사진은&lt;br /&gt;
싣지 말 것&lt;/p&gt;&lt;p&gt;신무림방에 소림파 제자들 화염장풍 쏘다&lt;br /&gt;
보도 보류 바람&lt;/p&gt;&lt;p&gt;분근착골 육골분시 같은 과격한 표현보단&lt;br /&gt;
단순한 혈도제압이라 순화시켜 쓸 것&lt;/p&gt;&lt;p&gt;중원에 애이주愛夷酒 환자 일만명&lt;br /&gt;
사실무근이므로 보도하지 말 것&lt;/p&gt;&lt;p&gt;사천표국 색마 검귀의 채음보양술 사건은&lt;br /&gt;
단순히 차력음영대법이라 쓸 것&lt;/p&gt;&lt;p&gt;죽엽청과 삶은 만두 먹는&lt;br /&gt;
무림맹주 존영 크게 실을 것&lt;/p&gt;&lt;p&gt;(말 안듣는 무협신문은 고량주 광고 잔뜩 줄 것)&lt;/p&gt;&lt;p&gt;- 「오늘의 전서구 ―무림일기5」&lt;/p&gt;
&lt;/blockquote&gt;&lt;p&gt;물론, 공심대사는 김영삼, 하남일존은 김대중이다. 애이주는 물론 에이즈를 일컫는 말일 테고, 색마 검귀의 채음보양술은 앞서도 언급했던 부천서 성고문 사건인 듯하다. 이 시는 지금과 마찬가지로 광고가 무기였던 당시 신문산업의 일단까지를 보여주고 있다.&lt;/p&gt;&lt;p&gt;그러나 시인·작가로서 자신의 고뇌가 엿보이는 작품은 단연 「무협지 작가와의 대화」이다(37-38):&lt;/p&gt;
&lt;blockquote&gt;&lt;p&gt;그는 대학을 하산한 뒤 기껏 무협지를 쓰고 있었다&lt;br /&gt;
어제는 백명 죽이고&lt;br /&gt;
오늘은 고민 고민하다가 이백명 죽였어&lt;br /&gt;
죽엽청이 거나하게 들어가자 그는&lt;br /&gt;
귀기어린 안광을 번득이며 전음입밀의 수법으로 말했다&lt;br /&gt;
사형은 아마도 하남의 혈겁에 대해 쓰는 것 같았다&lt;br /&gt;
[…]&lt;br /&gt;
하지만 사형, 소설은 현실의 복사가 아니잖소? 절제가……&lt;br /&gt;
무슨 닭뼈다귀 같은 소리냐&lt;br /&gt;
무협소설은 무림을 그대로 드러내는 데 그뜻이 있어&lt;br /&gt;
내일도 모레도 애꿏은 자들&lt;br /&gt;
몇 백명 더 죽어야 내가 쓰는 무협지가 끝이 날지……&lt;/p&gt;
&lt;/blockquote&gt;&lt;p&gt;거친 대로 '리얼리즘 논쟁'의 출발점을 보여주는 이 짧은 시는, 그에게서 무협지란 문학이라는 것의 제유提喩라는 것을 말해준다. 실제로 유하는 자신의 두번째 시집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에 실린 「무림武林 파천황破天荒」에서 대학 시절 장당 50원에 무협지 쓰는 아르바이트를 했던 경험을 쓰고 있다(55-57). 거기서 그는 과다한 섹스 신과 유치한 문장들의 강요보다 자신을 더 곤란하게 했던 것은 대량살육이었다고 고백한다; 실은 그가 쓰고 싶었던 것은 진시황의 분서갱유를 초점으로 한 것이었는데도 말이다.&lt;/p&gt;&lt;p&gt;「무림 파천황」은 1981년 있었던 &lt;a class=&quot;external&quot; title=&quot;http://www.imurim.com/bbs/zboard.php?id=contents1&amp;amp;page=1&amp;amp;sn1=&amp;amp;divpage=1&amp;amp;sn=off&amp;amp;ss=on&amp;amp;sc=on&amp;amp;select_arrange=headnum&amp;amp;desc=asc&amp;amp;no=29&amp;amp;PHPSESSID=1abe42d99d8aa4c4236c9ab302b1bea1&quot; href=&quot;http://www.imurim.com/bbs/zboard.php?id=contents1&amp;amp;page=1&amp;amp;sn1=&amp;amp;divpage=1&amp;amp;sn=off&amp;amp;ss=on&amp;amp;sc=on&amp;amp;select_arrange=headnum&amp;amp;desc=asc&amp;amp;no=29&amp;amp;PHPSESSID=1abe42d99d8aa4c4236c9ab302b1bea1&quot;&gt;무협지 『무림 파천황』 필화 사건&lt;/a&gt;을 소재로 한 시다. 당시 학생이었던 박영창이 쓴 『무림 파천황』이라는 무협지에 정파와 사파의 대립을 변증법적으로 종합(지양)하는 내용이나, 주인공이 감옥에 갇혀 있을 때 만난 노인이 '영혼 따윈 없다'고 말하는 부분에서 유물변증법에 관한 내용을 한두 페이지 넣었던 것이 문제가 되어 국가보안법에 걸렸다. 물론 그 책은 금서가 됐다.&lt;/p&gt;
&lt;blockquote&gt;&lt;p&gt;그러나 정작 새로운 세상을 연 자들은 바로 그들이었다 만화방의 무협지까지 금서로 만드는 전대미문의 세상&lt;br /&gt;
어디에도 혼돈은 없었다 선과 악의 획일화, 절대악이 사자후하고 있었기에 너무 쉽게 절대선이 가능했다&lt;/p&gt;
&lt;/blockquote&gt;&lt;p&gt;80년대는 그런 '전대미문의 세상'이었다.&lt;/p&gt;
&lt;h4&gt;무협지와 21세기: MB시대&lt;sup class=&quot;tocAnchorContainer&quot;&gt;&lt;a id=&quot;toc_2&quot; class=&quot;anchor&quot; title=&quot;toc_2&quot; href=&quot;#toc_2&quot;&gt;#&lt;/a&gt;&lt;/sup&gt;&lt;/h4&gt;&lt;p&gt;절대선과 절대악이 가능했던 시대가 80년대라고 한다면, 그 시대는 필연적으로 무협지를 우리 앞으로 호출하고 있는 셈이다. 김영하 역시 『무협 학생운동』의 존립 근거를 거기에서 찾고 있다. 『무협 학생운동』의 「작가 후기」에서 그는 5공화국의 무협지성을 간단하게 말한다(264):&lt;/p&gt;
&lt;blockquote&gt;&lt;p&gt;온갖 정견과 정파가 스팩트럼화하는 지금의 현실에 비추어보면 5공화국 시절은 그래도 선악의 구도가 명확한 시기였고 아타의 근별도 훨씬 수월했던 시대라 할 수 있을 것이다.&lt;/p&gt;
&lt;/blockquote&gt;&lt;p&gt;유하가 말한 '절대선과 절대악'의 다른 표현이다. 이것이 사상적 측면의 무협지성이라면, 이어진 다음의 말은 무협지의 비실제성을 환기시킨다(264):&lt;/p&gt;
&lt;blockquote&gt;&lt;p&gt;원시적인 고문이 횡행하고 수천명이 한꺼번에 감옥에 갇히는가 하면 기찻길 옆과 바닷가에서 의문의 주검들이 잇따라 발견되었다. 이런 야만적인 압제에 대항하여&amp;nbsp;수많은 젊은이들이 학생회관 옥상에서, 대강당 지붕에서 밧줄 하나에 몸을 의지하고 싸웠던 시절은 모더니즘적 세계관보다는 차라리 무협지적 세계관에 가깝다.&lt;/p&gt;
&lt;/blockquote&gt;&lt;p&gt;어쩌면 80년대 리얼리즘 소설을 읽을 때마다 드는 갸웃한 느낌이나 미진한 느낌은, 그 시대가 전혀 실재하지 않았던 것 같은 묘한 느낌이 들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그땐 그랬다'는 투의 서술이 제대한 복학생들이 서로 자신의 부대가 '빡세'다고 치기어린 자랑을 하면서 섞는 '구라' 같은 느낌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최루탄에 맞아 숨진 이한열 열사의 유명한 사진과 &quot;'탁' 치니까 '억' 하고 죽었다&quot;는 발언이 나올 수 있었던 &lt;a class=&quot;external&quot; title=&quot;http://ko.wikipedia.org/wiki/%EB%B0%95%EC%A2%85%EC%B2%A0&quot; href=&quot;http://ko.wikipedia.org/wiki/%EB%B0%95%EC%A2%85%EC%B2%A0&quot;&gt;박종철&lt;/a&gt; 고문 치사사건이 어디 현실에서 있을 법한 이야기인가?&lt;/p&gt;&lt;p&gt;&lt;/p&gt;&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span class=&quot;imageblock&quot; style=&quot;display: inline-block; width: 500px;  height: auto; max-width: 100%;&quot;&gt;&lt;img src=&quot;https://t1.daumcdn.net/cfile/tistory/1101F80B4B417A399E&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t1.daumcdn.net%2Fcfile%2Ftistory%2F1101F80B4B417A399E&quot; width=&quot;500&quot; height=&quot;375&quot; filename=&quot;hanyol.jpg&quot; filemime=&quot;image/jpeg&quot;/&gt;&lt;/span&gt;&lt;/p&gt;&lt;p&gt;이어지는 90년대는 또 어떤가. 다른 사람도 아닌 유하가 『무림일기』의 '영화사회학' 연작과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에서 촘촘하게 묘사하는 것처럼 그 시대의 현실은 TV와 스크린 속의 부조리가 TV 바깥으로 나온 것 같은 시대라 할 것이다.&lt;/p&gt;
&lt;blockquote&gt;&lt;p&gt;그렇다면 과연 5.16 5.17 장군본색將軍本色은 한국판 느와르요?&amp;nbsp;&amp;nbsp;&amp;nbsp; - 「싸랑해요 밀키스, 혹은 주윤발論」中&lt;/p&gt;
&lt;/blockquote&gt;
&lt;blockquote&gt;&lt;p&gt;뭐가 진실이냐? 칼릴 지브란의 시집을 사보는 국문과 대학생이&lt;br /&gt;
황지우가 누군지 모르고 정복자 펠레는 아예 브라질에서 축구를 하고&lt;br /&gt;
불가해함이 난해함으로 칭송받고, 이, 철저한 가부장제 사회에서&lt;br /&gt;
실추된 가장의 권위를 회복하는 내용의 영화가 '좋은 영화'로 선정되고&lt;br /&gt;
[…] 영구나 땡칠이로 도배를 하면서 저질 직배 영화 결사 반대! 이보시오 벗님네들,&lt;br /&gt;
―관객 사랑도 다 하기 나름이라구요&amp;nbsp;&amp;nbsp;&amp;nbsp; - 「수제비의 미학, 최진실論 ―안 이쁜 신부도 있나, 뭐」中&lt;/p&gt;
&lt;/blockquote&gt;
&lt;blockquote&gt;&lt;p&gt;신라의 토착 종교 풍류風流에서, 그 신도들 후손의 피바람으로 이루어진&lt;br /&gt;
&lt;a title=&quot;[http://ko.wikipedia.org/wiki/%EA%B5%AD%ED%92%8D81]로 이동합니다.&quot; href=&quot;http://ko.wikipedia.org/wiki/%EA%B5%AD%ED%92%8D81&quot; target=&quot;_self&quot;&gt;국풍國風 81&lt;/a&gt;, 김범룡의 바람 바람 바람, 바람자만 붙으면 붐붐 히트하는&lt;br /&gt;
최근 가요계 현상까지, 수천 년 변치 않고 이어지는 우리나라&lt;br /&gt;
거대한 바람의 계보, 바람잡는 역사&amp;nbsp;&amp;nbsp;&amp;nbsp; - 「바람의 계보학, 이지연論 ―바람아, 멈추어다오」中&lt;/p&gt;
&lt;/blockquote&gt;&lt;p&gt;그러고보면 유하는 「무림 파천황」에서 공심대사가 '구국의 결단'이라는 삼당합당을 통해 무림 시대를 종식한 뒤에도 장당 오십원짜리 무협지는 여전히 씌어지고 있다고 강조한다. 언젠가 빛을 발할 '검약필강'의 초식을 상찬하고 기다렸던 그가 &quot;칼은 칼이요 붓은 붓&quot;이라는 뼈아픈 현실 인식을 하며 '미증유의 검법'을 기다리는 동안 세상에는 무협지적인 비현실이 엄존했다.&lt;/p&gt;&lt;p&gt;지금은 어떤가? 철거 직전의 상가에서 여섯 철거민이 불타 죽고, 노벨 평화상을 받으며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뤄낸&amp;nbsp;한 전직 대통령과 그를 이은 다음 대통령이 불과 몇 달 사이에 명을 달리하고, 기동대는 노조원들에게 전기가 통한다는 쇠침을 거침없이 발사하고, 여전히 분을 못 이긴 사람은 자신의 몸에 불을 붙이고…….&lt;/p&gt;&lt;p&gt;&lt;/p&gt;&lt;p&gt;&lt;table class=&quot;flickrImgSearch&quot;&gt;&lt;tbody&gt;&lt;tr&gt;&lt;td&gt;&lt;a href=&quot;http://www.flickr.com/photos/65485896@N06/7174070154&quot; title=&quot;201200510_쌍용차분향소_51&quot; target=&quot;_blank&quot;&gt;&lt;img src=&quot;http://farm8.static.flickr.com/7096/7174070154_79b8fbaab5.jpg&quot; width=&quot;450&quot; alt=&quot;201200510_쌍용차분향소_51&quot; style=&quot;border: 0; padding-bottom: 7px;&quot;&gt;&lt;/a&gt;&lt;br /&gt;&lt;span&gt;201200510_쌍용차분향소_51 by &lt;a href=&quot;http://www.flickr.com/photos/65485896@N06&quot; target=&quot;_blank&quot;&gt;참여연대&lt;/a&gt;&lt;/span&gt; &lt;a href=&quot;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sa/2.0/kr/&quot; target=&quot;_blank&quot; style=&quot;width:450px; padding-top: 7px;&quot;&gt;&lt;img class=&quot;tix-ccl-by&quot; src=&quot;http://i1.daumcdn.net/cfs.tistory/static/admin/editor/ccl_black01.png&quot; alt=&quot;저작자 표시&quot; width=&quot;15&quot; height=&quot;15&quot; style=&quot;vertical-align: middle; margin-right: 1px; border: 0;&quot;&gt;&lt;img class=&quot;tix-ccl-nc&quot; src=&quot;http://i1.daumcdn.net/cfs.tistory/static/admin/editor/ccl_black02.png&quot; alt=&quot;비영리&quot; width=&quot;15&quot; height=&quot;15&quot; style=&quot;vertical-align: middle; margin-right: 1px; border: 0;&quot;&gt;&lt;img class=&quot;tix-ccl-sa&quot; src=&quot;http://i1.daumcdn.net/cfs.tistory/static/admin/editor/ccl_black04.png&quot; alt=&quot;동일조건 변경허락&quot; width=&quot;15&quot; height=&quot;15&quot; style=&quot;vertical-align: middle; margin-right: 1px; border: 0;&quot;&gt;&lt;/a&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p&gt;&lt;p&gt;&lt;/p&gt;&lt;p&gt;그러니 달나라나 화성으로 소풍을 갈 거라고 했던 21세기, 지금 현재도 무협지는 끊임없이 되풀이 씌어지고 있는 셈이다. 장당 오십원이라는 단가는 아마 더 인상됐겠지만.&lt;/p&gt;&lt;p&gt;나는 용산 참사가 벌어진 남일당 건물 앞에서, 희생자들의 영정을 모신 순천향대병원 장례식장에서 밤을 지새우며 21세기의 비현실성과 선/악의 명확성을 다시금 깨닫는다. 저녁마다 나오는 뉴스가 무협지 같고, 짬짬이 훔쳐보던 무협지가 뉴스 같다. 사람들은 어느 사이 무협지의 텍스트 안쪽으로 들어와 있다. 그러나 정파 무사들은 여전히 한 줌인 듯하다.&lt;/p&gt;&lt;p&gt;시인의 통찰력일까. 유하는 소망교회 장로가 용산에, 광화문에, 평택에 불을 가져올 것을 알았는지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 연작의 네 번째 시를 이렇게 (예언하듯) 쓴다(68):&lt;/p&gt;
&lt;blockquote&gt;&lt;p&gt;소망교회 앞, 주 찬양하는 뽀얀 아이들의 행렬, 촛불을&lt;br /&gt;
들고 억센 바람 속을 걸어간다 태초에&lt;br /&gt;
불이 있나니라, 이후의 ―&lt;/p&gt;&lt;p&gt;[…]&lt;/p&gt;&lt;p&gt;불 같은 소망이 이 백야성을&lt;br /&gt;
만들었구나, 부릅뜬 눈의 식욕, 보기만 해도 눈에&lt;br /&gt;
군침이 괴는, 저 불의 부패 색色의 성찬盛饌을 보라&lt;br /&gt;
그저 불밝히기 위해서 심지 돋우던 시절은 지났다&lt;/p&gt;&lt;p&gt;[…]&lt;/p&gt;&lt;p&gt;불의 소망 근처에서&lt;br /&gt;
불의 구린내를 빠는 똥파리의&lt;br /&gt;
윙윙 날개 바람&lt;/p&gt;&lt;p&gt;바람 속으로 빽이 든든한&lt;br /&gt;
촛불들이 기쁘다 구주 기쁘다&lt;br /&gt;
걸어간다, 보무도 당당히, 오징어의 시커먼 눈들이&lt;br /&gt;
신바람으로 몰려가는, 불의 부페 파티장 쪽으로&lt;/p&gt;&lt;p&gt;-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 4 ―불의 부페」&lt;/p&gt;
&lt;/blockquote&gt;
&lt;h4&gt;참고문헌&lt;sup class=&quot;tocAnchorContainer&quot;&gt;&lt;a id=&quot;toc_3&quot; class=&quot;anchor&quot; title=&quot;toc_3&quot; href=&quot;#toc_3&quot;&gt;#&lt;/a&gt;&lt;/sup&gt;&lt;/h4&gt;&lt;p&gt;김영하. 1992. 『무협 학생운동』. 아침의소설6. 서울:아침.&lt;br /&gt;
유하. 1989. 『무림일기』. 문예중앙 시인선1. 서울:중앙일보사.&lt;br /&gt;
―――. 1994(초판 1991).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 문학과지성 시인선104. 서울:문학과지성사.&lt;br /&gt;
조(한)혜정. 1992. 『탈식민지 시대 지식인의 글 읽기와 삶 읽기』. 1:바로 여기 교실에서. 서울:또하나의문화.&lt;/p&gt;&lt;/div&gt;&lt;p&gt;&lt;br /&gt;&lt;/p&gt;</description>
      <category>타오르는책</category>
      <category>MB</category>
      <category>ND</category>
      <category>NL</category>
      <category>PD</category>
      <category>강철</category>
      <category>계엄진법</category>
      <category>공생당선언</category>
      <category>공심대사</category>
      <category>긴조진법</category>
      <category>김대중</category>
      <category>김영하</category>
      <category>맑스</category>
      <category>무림일기</category>
      <category>무림파천황</category>
      <category>무협학생운동</category>
      <category>민민방</category>
      <category>민족민주</category>
      <category>민족자주</category>
      <category>바람부는-날이면-압구정동에-가야-한다</category>
      <category>박영창</category>
      <category>불의-부페</category>
      <category>서역이념</category>
      <category>서울역회군</category>
      <category>소망교회</category>
      <category>아메대왕</category>
      <category>아메마황</category>
      <category>유하</category>
      <category>육사방</category>
      <category>의식화</category>
      <category>이한열</category>
      <category>자민방</category>
      <category>자본강요</category>
      <category>정통종합검법</category>
      <category>조로가</category>
      <category>조한혜정</category>
      <category>조혜정</category>
      <category>최민</category>
      <author>엔디</author>
      <guid isPermaLink="true">https://endyecrit.tistory.com/220</guid>
      <comments>https://endyecrit.tistory.com/220#entry220comment</comments>
      <pubDate>Mon, 4 Jan 2010 21:55:25 +0900</pubDate>
    </item>
    <item>
      <title>시간과 기억 속 재편되는 계급: 박주택 『시간의 동공』</title>
      <link>https://endyecrit.tistory.com/219</link>
      <description>최초의 시계, 최초의 달력은 사람의 눈이었다. 사람들은 태양과 달의 모양과 움직임, 물의 흐름을 보고 세월歲月과 시간時間과 촌음寸陰을 알았다.&lt;div class=&quot;xhtmlEditorBody&quot;&gt;
&lt;p&gt;박주택의 시집 『시간의 동공』은 시인의 눈을 따라 시간의 흐름을 꿰뚫어보고, 눈이 보았던 기억과 그 속에 숨어있는 계급을 살펴보는 시집이다.&lt;/p&gt;
&lt;p&gt;시인의 눈은 먼저 &quot;문을 닫은 지 오랜 상점&quot;을 바라본다. 불빛이 없어 어두운 그곳에는 발가벗겨진 채 갇혀 있는 인형이 보인다. 시인은 문득 섬뜩함을 느낀다. 그리고 사뭇 달랐던, 처음 그곳에 갔을 때의 기억을 떠올린다. 그때는 허리춤이 드러난 한 여자가 물을 뿌리며 창을 닦고 있었고, 사랑스러운 아이와 고요한 커피 잔도 시인의 눈에 들어왔다. 아마 인형도 그 때는 옷을 걸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시인은 그 먼 기억과 다른 괴기한 광경만 볼 뿐이다. 시 '폐점'의 내용이다.&lt;/p&gt;
&lt;p&gt;기억은 시간을 떠올리게 만든다. 무엇인가를 기억하는 행위는 과거와 지금이 같은지 다른지 비교하게 하고, 그 사이 수많은 시간의 물결과 주름을 알아보게 한다. 문제는 이 물결과 주름이 만드는 숫자의 흐름에는 어떤 정치적인 함의가 들어 있다는 것이다.&lt;/p&gt;
&lt;blockquote&gt;
&lt;p&gt;그리하여 시간이란 계급을 재편성하는 과정이란 느낌이 들 때&lt;br /&gt;
햄버거는 입속에서 혈관을 터뜨리고 커피는 저녁처럼 어두워졌다&lt;br /&gt;
순환하는 인간들, 청춘은 중년이 되고 또 다른 청춘은&lt;br /&gt;
이곳을 가득 메우며 노년에 이르게 됨을 눈치채지 못한다&lt;br /&gt;
&lt;br /&gt;
- 「강남역」부분.&lt;/p&gt;
&lt;/blockquote&gt;
&lt;p&gt;여름 저녁 강남역 인근의 번화가를 지나다보면 젊음이 하나의 계급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땀 냄새가 가득한 그 청춘의, 여름의 계급은 「여름들」에서 보듯 자꾸 무엇인가를 소유하려고 하고, 무엇인가를 불러들이려 한다.&lt;/p&gt;
&lt;p&gt;그러나 그 계급은 결국에는 부질없이 지고 마는 계급이다. 여름이었던 시간은 어느새 가을로, 가을이었던 시간은 금세 겨울로 변해있을 것이기 때문이다.&lt;/p&gt;
&lt;p&gt;그것을 깨달은 것일까. 시인은 「여름 말 사전」에서 &quot;여름이 갈 때 용서하자&quot;고 노래한다. 이어 「가을 말 사전」에서는 &quot;빈 들에 서서 서서히 가라앉는 것을 본다.&quot; 이어 눈보라가 치고 종소리가 울리면 그제서야 &quot;여름이 겨울처럼 늙어가 이제는 울음조차&quot; 시인의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소년이었을 때」).&lt;/p&gt;
&lt;p&gt;사실 겨울이 지나면 이승에 남는 것은 없다. 흙으로 돌아가리라는 성서의 예언처럼 모두 본래 자신이 있던 곳으로 돌아간다.&lt;/p&gt;
&lt;blockquote&gt;
&lt;p&gt;이제 남은 것들은 자신으로 돌아가고&lt;br /&gt;
돌아가지 못하는 것들만 바다를 그리워한다&lt;br /&gt;
&lt;br /&gt;
- 「시간의 동공」부분.&lt;/p&gt;
&lt;/blockquote&gt;
&lt;p&gt;하지만 망각만이 남아 있을 것 같은 겨울 이후에도 여전히 기억은 끈질기게 깨어 있다. 시인은 그것을 '미련'이라고 부른다. 죽음 이후에 무엇이 있는지 우리는 알 수 없지만, 인간은 기억되려는 욕망 속에서 무덤이라는 것을 만들기 때문이다.&lt;/p&gt;
&lt;blockquote&gt;
&lt;p&gt;이곳은 미련의 둥지다&lt;br /&gt;
저마다 지붕을 틀고&lt;br /&gt;
게걸스러웠던 입을 다문 채 죽은 것처럼&lt;br /&gt;
누워, 햇빛을 쬔다&lt;br /&gt;
[...]&lt;br /&gt;
죽어서도, 끝끝내&lt;br /&gt;
버리지 못하는 미련의 노란 창문이다.&lt;br /&gt;
&lt;br /&gt;
- 「묘지」부분&lt;/p&gt;
&lt;/blockquote&gt;
&lt;p&gt;물론 이런 기억이 갖고 있는 미련은 마냥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땅 속에 묻힌 무덤은 뿌리이지만, 줄기와 여름의 꽃잎들은 한 나무의 가지가 되기 때문이다. 조선 3대 태종 부부와 23대 순조 부부가 나란히 묻힌 헌인릉에서 노는 아이와 부모들을 보고 반 세기를 살아온 1959년생 시인은 이렇게 노래한다.&lt;/p&gt;
&lt;blockquote&gt;
&lt;p&gt;뿌리들은 어느 마음의 끝 땅속에 내려&lt;br /&gt;
이토록 질긴 목숨으로 얽혀 있을까&lt;br /&gt;
바람이 지나가면 그 흔들림만큼 흙 속을 엉켜드는&lt;br /&gt;
목숨들 두 번의 생이 있다면 아름다움이 다투어 묶이는&lt;br /&gt;
창문에 나가 동터오는 집의 입구를 바라볼 것이다&lt;br /&gt;
&lt;br /&gt;
- 「헌인릉 가서」부분&lt;/p&gt;
&lt;/blockquote&gt;
&lt;p&gt;삶의 성(城)은 언젠가 조금씩 몰락해가는 것이지만 계속해서 다시 지어지는 것이며, 그 모든 주름져가는 과정이 아름다운 것이라고 시인은 말하고 있는 듯하다.&lt;/p&gt;
&lt;div class=&quot;ttbReview&quot;&gt;
&lt;table&gt;
&lt;tbody&gt;&lt;tr&gt;
&lt;td&gt;&lt;a href=&quot;http://www.alad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20027&amp;amp;ttbkey=ttbstryperz1040003&amp;amp;COPYPaper=1&quot;&gt;&lt;img src=&quot;http://image.aladdin.co.kr/coveretc/book/coversum/8932020027_1.jpg&quot; alt=&quot;&quot; border=&quot;0&quot;&gt;&lt;/a&gt;&lt;/td&gt;
&lt;td style=&quot;vertical-align: top;&quot; align=&quot;left&quot;&gt;&lt;a href=&quot;http://www.alad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20027&amp;amp;ttbkey=ttbstryperz1040003&amp;amp;COPYPaper=1&quot; class=&quot;aladdin_title&quot;&gt;시간의 동공&lt;/a&gt; - &lt;img src=&quot;http://image.aladdin.co.kr/img/common/star_s10.gif&quot; alt=&quot;10점&quot; border=&quot;0&quot;&gt;&lt;br /&gt;
박주택 지음/문학과지성사&lt;/td&gt;
&lt;/tr&gt;
&lt;/tbody&gt;&lt;/table&gt;
&lt;/div&gt;
&lt;p style=&quot;text-align: right;&quot;&gt;이 글은 &lt;a href=&quot;http://stryperz.springnote.com/&quot;&gt;스프링노트&lt;/a&gt;에서 작성되었습니다.&lt;/p&gt;
&lt;/div&gt;</description>
      <category>타오르는책/詩</category>
      <category>詩</category>
      <category>강남역</category>
      <category>계급</category>
      <category>기억</category>
      <category>묘지</category>
      <category>박주택</category>
      <category>시간의-동공</category>
      <category>시집</category>
      <category>젊음</category>
      <category>청춘</category>
      <category>헌인릉-가서</category>
      <author>엔디</author>
      <guid isPermaLink="true">https://endyecrit.tistory.com/219</guid>
      <comments>https://endyecrit.tistory.com/219#entry219comment</comments>
      <pubDate>Mon, 9 Nov 2009 23:27:05 +0900</pubDate>
    </item>
    <item>
      <title>시린 에바디와 노벨평화상의 한계</title>
      <link>https://endyecrit.tistory.com/218</link>
      <description>&lt;div class=&quot;xhtmlEditorBody&quot;&gt;
&lt;blockquote&gt;
&lt;p&gt;'위대한 백인의 승리'란 영화를 주말 명화극장 시간에 본 기억이 납니다. 흑인 권투선수 챔피언을 백인들이 온갖 치사한 방법을 동원해서 아예 세상에서 매장시켜버리는 '치사한 백인의 승리'를 그린 영화였습니다.&lt;/p&gt;
&lt;p&gt;지금 그런 치사한 백인의 승리가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오사마 빈 라덴이란 마흔살짜리 사나이를 잡기 위해 정의의 가치를 앞세워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을 마구잡이로 폭격하고 있습니다.&lt;/p&gt;
&lt;p&gt;얄궃게도 이런 때 유엔과 코피아난 사무총장님의 노벨평화상 수상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나는 순진해서 그런지 노벨평화상 받는 사람은 절대 전쟁을 안할 거라 생각했는데, 노벨평화상 수상자이신 우리 대통령 각하가 아프가니스탄 공격을 적극 지지하고 나섰습니다. 노벨평화상금이 어마어마하게 큰돈이라는데 주최측에서 그 상금을 돌려달라고 하지는 않을까요?&lt;/p&gt;
&lt;p&gt;하기야 노벨상금이란 것 자체가 무시무시한 폭발물을 만들어 장사해서 번 돈이니 그다지 도덕적이지도 않고 평화적이지도 않습니다.&lt;/p&gt;
&lt;/blockquote&gt;
&lt;p&gt;권정생(2008, 222) 선생은 '제발 그만 죽이십시오'란 글에서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김대중 전 대통령을 예로 들며 노벨평화상을 평가절하한다. 결국 노벨평화상도 백인들의 것이거나 혹은 힘있는 자의 것이라는 뜻이다.&lt;/p&gt;
&lt;p&gt;김대중 전 대통령의 노벨상 평가절하는 잘못하면 '노벨상을 돈 주고 샀다'는 수구 세력의 목소리에 힘을 실을 수도 있는 발언이다. 실제로 노벨상 수상 소식이 들릴 즈음 '노벨상의 공신력이 떨어진 것 같다'는 말도 떠돌았다. 그러나 권정생 선생의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는 것이 또 사실이다. 사르트르가 '부르주아의 상'이라는 이유로 노벨문학상을 거부한 것도 같은 맥락이겠기 때문이다.&lt;/p&gt;
&lt;div id=&quot;toc&quot; style=&quot;border: 1px solid tan; padding: 2px 10px 0px; background-color: rgb(255, 255, 250);&quot;&gt;
&lt;p&gt;&lt;strong&gt;목차&lt;/strong&gt;&lt;/p&gt;
&lt;hr&gt;
&lt;ol&gt;
&lt;li&gt;&lt;a href=&quot;#toc_0&quot; title=&quot;toc_0&quot; class=&quot;external&quot;&gt;가부장제는 혈우병?&lt;/a&gt;&lt;/li&gt;
&lt;li&gt;&lt;a href=&quot;#toc_1&quot; title=&quot;toc_1&quot; class=&quot;external&quot;&gt;가부장제 재생산의 메커니즘&lt;/a&gt;&lt;/li&gt;
&lt;li&gt;&lt;a href=&quot;#toc_2&quot; title=&quot;toc_2&quot; class=&quot;external&quot;&gt;이슬람과 여성인권&lt;/a&gt;&lt;/li&gt;
&lt;li&gt;&lt;a href=&quot;#toc_3&quot; title=&quot;toc_3&quot; class=&quot;external&quot;&gt;노벨상과 기층문화&lt;/a&gt;&lt;span style=&quot;text-decoration: underline;&quot;&gt;&lt;/span&gt;&lt;/li&gt;
&lt;li&gt;&lt;a href=&quot;#toc_4&quot; title=&quot;toc_4&quot; class=&quot;external&quot;&gt;참고문헌&lt;/a&gt;&lt;br /&gt;
&lt;/li&gt;
&lt;/ol&gt;
&lt;/div&gt;
&lt;h4&gt;가부장제는 혈우병?&lt;sup class=&quot;tocAnchorContainer&quot;&gt;&lt;a href=&quot;#toc_0&quot; title=&quot;toc_0&quot; class=&quot;anchor&quot; id=&quot;toc_0&quot;&gt;#&lt;/a&gt;&lt;/sup&gt;&lt;/h4&gt;
&lt;p&gt;&lt;div class=&quot;imageblock right&quot; style=&quot;float: right; margin-left: 10px;&quot;&gt;&lt;img src=&quot;https://t1.daumcdn.net/cfile/tistory/1204F1254A8044D309&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t1.daumcdn.net%2Fcfile%2Ftistory%2F1204F1254A8044D309&quot; width=&quot;273&quot; height=&quot;215&quot; alt=&quot;시린 에바디&quot; filename=&quot;cfile1.uf@1204F1254A8044D309157B.jpg&quot; filemime=&quot;&quot;/&gt;
  &lt;p class=&quot;cap1&quot; style=&quot;width: 273px;&quot;&gt;cc-by-2.0 : Original photo by Shahram Sharif
http://www.flickr.com/photos/sharif/64545526/in/photostream/&lt;/p&gt;
&lt;/div&gt;
이슬람권 여성으로는 최초의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lt;a title=&quot;[http://ko.wikipedia.org/wiki/%EC%8B%9C%EB%A6%B0_%EC%97%90%EB%B0%94%EB%94%94]로 이동합니다.&quot; target=&quot;_self&quot; href=&quot;http://ko.wikipedia.org/wiki/%EC%8B%9C%EB%A6%B0_%EC%97%90%EB%B0%94%EB%94%94&quot;&gt;시린 에바디&lt;/a&gt;가 방한했다. 한국의 여성인권활동가들을 만나고 싶었던 그는 방한 일정을 쪼개 한국여성의전화를 방문해 강연을 했는데, 문제는 이 강연의 내용이다. 통역을 포함해 한 시간 남짓 되는 강연에서 그는 &lt;a title=&quot;[http://media.daum.net/society/others/view.html?cateid=1067&amp;amp;newsid=20090810164710526&amp;amp;p=yonhap]로 이동합니다.&quot; target=&quot;_self&quot; href=&quot;http://media.daum.net/society/others/view.html?cateid=1067&amp;amp;newsid=20090810164710526&amp;amp;p=yonhap&quot;&gt;'가부장제'를 '혈우병'에 비유&lt;/a&gt;했던 것이다.&lt;/p&gt;
&lt;p&gt;&lt;a href=&quot;http://ko.wikipedia.org/wiki/%ED%98%88%EC%9A%B0%EB%B3%91&quot; class=&quot;external&quot; title=&quot;http://ko.wikipedia.org/wiki/%ED%98%88%EC%9A%B0%EB%B3%91&quot;&gt;혈우병&lt;/a&gt;은 &quot;혈액을 응고해 주는 인자가 부족하여 피가 잘 멈추지 않는 병&quot;으로 성염색체 중 X염색체에 존재한다. 이 병은 대개 보균자인 어머니에게서 아들에게로 유전한다. 즉, 어머니의 경우는 그 염색체를 갖고만 있지만 아들에게 유전됐을 경우 그 아들은 혈우병이 발병하는 것이다.&lt;/p&gt;
&lt;p&gt;결국 시린 에바디가 &quot;가부장제는 혈우병&quot;이라고 말했을 때, 그는 가부장제의 톱니바퀴에서 여성이 큰 축을 담당하고 있다고 진단한 셈이다. 이 이론에 그대로 기대자면 가부장제는 남성이 아니라 여성이 유지하는 것이라는 주장이 가능하다. 나아가 여성이 가부장제의 문제점을 지적하려 해도 &quot;너희들이 애써 유지해온 것이 가부장제 아니냐&quot;는 가부장주의자들의 반론까지 가능하다.&lt;/p&gt;
&lt;p&gt;이에 대해 참석자 가운데서 반론이 나오자 시린 에바디는 &quot;가부장적 문화를 타파하는 데 여성이 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뜻&quot;이라고 해명했으나 근본적인 취지에 대해서는 번복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집안에서부터 아들과 딸을 다르게 대한다는 것이 문제라고 반복했을 뿐이다.&lt;/p&gt;
&lt;p&gt;&lt;EMBED id=&quot;Viewer&quot; name=&quot;Viewer&quot; pluginspage=&quot;http://www.macromedia.com/go/getflashplayer&quot; align=&quot;middle&quot; src= &quot;http://image.newsbank.co.kr/flash/001@N0242009081000512857&quot; width=&quot;500&quot; height=&quot;556&quot; type=&quot;application/x-shockwave-flash&quot; wmode=&quot;transparent&quot; allowFullScreen=&quot;true&quot; allowScriptAccess=&quot;always&quot; bgcolor=&quot;#060606&quot; quality=&quot;high&quot; /&gt;&lt;br /&gt;
&lt;br /&gt;
&lt;/p&gt;
&lt;h4&gt;가부장제 재생산의 메커니즘&lt;sup class=&quot;tocAnchorContainer&quot;&gt;&lt;a href=&quot;#toc_1&quot; title=&quot;toc_1&quot; class=&quot;anchor&quot; id=&quot;toc_1&quot;&gt;#&lt;/a&gt;&lt;/sup&gt;&lt;/h4&gt;
&lt;p&gt;시린 에바디의 관점이 문제인 이유는, 그의 생각과 달리 세상의 어머니들이 양성을 평등하게 대하기 때문이 아니다. 실제로 한국과 이란을 비롯한 많은 나라의 어머니들이 딸보다 아들을 우대하며, 더 자유롭게, 더 권리를 향유하도록 키운다. 그러나 그 때문에 어머니들을 비난할 수 있는가는 좀 생각해봐야 한다.&lt;/p&gt;
&lt;p&gt;시린 에바디의 말은 이미 '여성(어머니)이 양육의 문제를 전적으로 책임져야 한다'는 전제가 은연 중에 깔려 있다는 점에서 주목에 값한다. 실제로 양육은 여성의 문제가 아니라 한 가정, 한 마을, 나아가 한 국가, 한 행성의 문제인데도 그의 주장만 들으면 양육은 어머니의 문제로 환원될 뿐이다.&lt;/p&gt;
&lt;p&gt;플라톤처럼 부모가 누구인지도 모르게 자녀를 키워야 한다는 뜻은 아니지만, 양육의 문제를 한 가정에 그것도 어머니라는 한 사람의 몫으로 남겨두었을 때의 문제점에는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이나 기타 사회활동참가율을 떨어뜨린다는 점 이외에도 가부장제 자체의 재생산이 더 심각해진다는 점도 있는 것이다.&lt;/p&gt;
&lt;p&gt;여성의 대다수가 살림과 자녀양육만을 전담하는 문화적 상황에서는 어머니가 자녀에게 이에 걸맞은 사회적·문화적 관점에 따라 교육을 시킬 수밖에 없는데, 그것이 바로 가부장적 교육이다. 조선시대의 어머니가 딸에게 정절이니 열녀니 하는 교육을 시켰던 것이 어찌 조선시대 어머니들의 문제라 할 수 있을까. 그것은 그런 사고방식을 강요했던 시대와 문화의 문제라고 해야 한다.&lt;/p&gt;
&lt;p&gt;&lt;EMBED id=&quot;Viewer&quot; name=&quot;Viewer&quot; pluginspage=&quot;http://www.macromedia.com/go/getflashplayer&quot; align=&quot;middle&quot; src= &quot;http://image.newsbank.co.kr/flash/001@N0242009081000512867&quot; width=&quot;500&quot; height=&quot;239&quot; type=&quot;application/x-shockwave-flash&quot; wmode=&quot;transparent&quot; allowFullScreen=&quot;true&quot; allowScriptAccess=&quot;always&quot; bgcolor=&quot;#060606&quot; quality=&quot;high&quot; /&gt;&lt;br /&gt;
&lt;br /&gt;
&lt;/p&gt;
&lt;h4&gt;이슬람과 여성인권&lt;sup class=&quot;tocAnchorContainer&quot;&gt;&lt;a href=&quot;#toc_2&quot; title=&quot;toc_2&quot; class=&quot;anchor&quot; id=&quot;toc_2&quot;&gt;#&lt;/a&gt;&lt;/sup&gt;&lt;/h4&gt;
&lt;p&gt;한편 시린 에바디는 성차별은 이슬람 율법 때문이 아니라 가부장적 문화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슬람 율법은 평등한데, 이를 곡해하는 가부장주의자들이 문제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슬람 문화권이 아닌 나라에서 여성이 받는 차별에 대해 한참을 언급했다. 그러나 이슬람 율법의 어떤 부분이 양성평등을 지향하는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이슬람율법과 문화에 대해 잘 모르는 한국적 상황을 염두에 둔 것인지도 모르지만, 오해를 부르지 않기 위해서는 소개를 해줬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lt;/p&gt;
&lt;p&gt;일부다처를 허용하는 등 우리(또는 서구)의 시각에서는 이슬람율법이 양성을 평등하지 못하게 말하고 있다는 견해가 많기 때문이다. (물론 그의 신앙에 대해 딴지를 걸고 싶은 생각은 없다. 나는 꾸란을 잘 모른다. 그 나름의 경전 해석이 있을 것으로 짐작되기는 한다.)&lt;/p&gt;
&lt;h4&gt;노벨상과 기층문화&lt;sup class=&quot;tocAnchorContainer&quot;&gt;&lt;a href=&quot;#toc_3&quot; title=&quot;toc_3&quot; class=&quot;anchor&quot; id=&quot;toc_3&quot;&gt;#&lt;/a&gt;&lt;/sup&gt;&lt;/h4&gt;
&lt;p&gt;시린 에바디의 강연을 통해 결국 드러난 것은 천하의 노벨평화상 수상자도 결국은 하나의 기층문화 아래 종속되는 인간일 뿐이라는 당연한 결과였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민주화를 이끌었고,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함께 6.15 선언을 했더라도 결국 그는 신자유주의를 이 땅에 본격적으로 도입한 첫 대통령이다. 게다가 그는 권정생 선생이 지적한 대로 아프가니스탄 파병도 결정했다. 한반도에서 태어나 자란 그에게 미국이라는 나라는 여전히 없어서는 안 될 은인이었던 셈이다. 그게 뼛속까지 파고든 기층문화다. 미국을 싫어하는 젊은이들도 맥아더의 동상을 철거하자거나 주한미군이 전면 철수하도록 하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거부 반응을 일으키는 것과 마찬가지다.&lt;/p&gt;
&lt;p&gt;시린 에바디는 이슬람권 최초의 여성판사이며 뛰어난 인권변호사였지만, 또 그 덕분에 노벨평화상도 수상했지만, 결국은 한 명의 이란인에 불과했다. 이것은 그에 대한 비난이기도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칭찬이기도 하다. 물론, 나는 약간은 그의 변화를 기대하고 있다.&lt;/p&gt;
&lt;h4&gt;참고문헌&lt;sup class=&quot;tocAnchorContainer&quot;&gt;&lt;a href=&quot;#toc_4&quot; title=&quot;toc_4&quot; class=&quot;anchor&quot; id=&quot;toc_4&quot;&gt;#&lt;/a&gt;&lt;/sup&gt;&lt;/h4&gt;
&lt;p&gt;권정생. 2008. 『우리들의 하느님』. 개정증보판. 대구:녹색평론사.&lt;/p&gt;
&lt;div class=&quot;ttbReview&quot;&gt;
&lt;table&gt;
&lt;tbody&gt;&lt;tr&gt;
&lt;td&gt;&lt;a href=&quot;http://www.alad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0274427&amp;amp;ttbkey=ttbstryperz1040003&amp;amp;COPYPaper=1&quot;&gt;&lt;img src=&quot;http://image.aladdin.co.kr/coveretc/book/coversum/8990274427_1.jpg&quot; alt=&quot;&quot; border=&quot;0&quot;&gt;&lt;/a&gt;&lt;/td&gt;
&lt;td style=&quot;vertical-align: top;&quot; align=&quot;left&quot;&gt;&lt;a href=&quot;http://www.alad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0274427&amp;amp;ttbkey=ttbstryperz1040003&amp;amp;COPYPaper=1&quot; class=&quot;aladdin_title&quot;&gt;우리들의 하느님&lt;/a&gt; - &lt;img src=&quot;http://image.aladdin.co.kr/img/common/star_s10.gif&quot; alt=&quot;10점&quot; border=&quot;0&quot;&gt;&lt;br /&gt;
권정생 지음/녹색평론사&lt;/td&gt;
&lt;/tr&gt;
&lt;/tbody&gt;&lt;/table&gt;
&lt;/div&gt;
&lt;p style=&quot;text-align: right;&quot;&gt;이 글은 &lt;a href=&quot;http://stryperz.springnote.com/&quot;&gt;스프링노트&lt;/a&gt;에서 작성되었습니다.&lt;/p&gt;
&lt;/div&gt;</description>
      <category>어느어릿광대의견해</category>
      <category>가부장제</category>
      <category>권정생</category>
      <category>기층문화</category>
      <category>꾸란</category>
      <category>노벨상</category>
      <category>노벨평화상</category>
      <category>만해평화상</category>
      <category>모성성</category>
      <category>무슬림</category>
      <category>사르트르</category>
      <category>시린에바디</category>
      <category>아프가니스탄</category>
      <category>어머니</category>
      <category>여성</category>
      <category>여성주의</category>
      <category>우리들의하느님</category>
      <category>위대한백인의승리</category>
      <category>이란</category>
      <category>이슬람</category>
      <category>코란</category>
      <category>파병</category>
      <category>혈우병</category>
      <author>엔디</author>
      <guid isPermaLink="true">https://endyecrit.tistory.com/218</guid>
      <comments>https://endyecrit.tistory.com/218#entry218comment</comments>
      <pubDate>Tue, 11 Aug 2009 01:07:14 +0900</pubDate>
    </item>
    <item>
      <title>범인은 누구인가: 사이코패스 공포의 사회학</title>
      <link>https://endyecrit.tistory.com/217</link>
      <description>&lt;p&gt;연예인이 죽으면 악플, '묻지마 살인'은 사이코패스다. 일종의 공식이 된 듯하다. 일단 이해할 수 없는 무차별 살인이 일어나면, 당연하다는 듯이 사이코패스부터 의심한다. &lt;a href=&quot;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08102101071027068006&quot; class=&quot;external&quot; title=&quot;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08102101071027068006&quot;&gt;문화일보&lt;/a&gt;가 인용한 전문가들의 말에 따르면, 사이코패스들은 치밀하며, 죄책감이 없고, 반사회적이지만, 평상시에 확인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점이 생긴다. 그럼 사이코패스는 왜 생기는 것이며 이들을 구별할 방법은 없을까? 사이코패스 범죄를 막으려면 어떻게 할 수 있을까?&lt;/p&gt;
&lt;div id=&quot;toc&quot; style=&quot;border: 1px solid tan; padding: 2px 10px 0px; background-color: rgb(255, 255, 250);&quot;&gt;
&lt;p&gt;&lt;strong&gt;목차&lt;/strong&gt;&lt;/p&gt;
&lt;hr&gt;
&lt;ol&gt;
&lt;li&gt;&lt;a href=&quot;#toc_0&quot; title=&quot;toc_0&quot; class=&quot;external&quot;&gt;사이코패스, 사회의 불수의근?&lt;/a&gt;&lt;/li&gt;
&lt;li&gt;&lt;a href=&quot;#toc_1&quot; title=&quot;toc_1&quot; class=&quot;external&quot;&gt;사이코패스와 슈퍼테러리즘&lt;/a&gt;&lt;/li&gt;
&lt;li&gt;&lt;a href=&quot;#toc_2&quot; title=&quot;toc_2&quot; class=&quot;external&quot;&gt;사이코패스 사건 예방&lt;/a&gt;&lt;/li&gt;
&lt;li&gt;&lt;a href=&quot;#toc_3&quot; title=&quot;toc_3&quot; class=&quot;external&quot;&gt;범인은 누구인가?&lt;/a&gt;&lt;/li&gt;
&lt;/ol&gt;
&lt;/div&gt;
&lt;h3&gt;사이코패스, 사회의 불수의근?&lt;sup class=&quot;tocAnchorContainer&quot;&gt;&lt;a href=&quot;#toc_0&quot; title=&quot;toc_0&quot; class=&quot;anchor&quot; id=&quot;toc_0&quot;&gt;#&lt;/a&gt;&lt;/sup&gt;&lt;/h3&gt;
&lt;p&gt;&lt;div class=&quot;imageblock right&quot; style=&quot;float: right; margin-left: 10px;&quot;&gt;&lt;img src=&quot;https://t1.daumcdn.net/tistoryfile/fs11/21_tistory_2008_10_22_01_13_48fdffb2c4c6a?original&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t1.daumcdn.net%2Ftistoryfile%2Ffs11%2F21_tistory_2008_10_22_01_13_48fdffb2c4c6a%3Foriginal&quot; width=&quot;148&quot; height=&quot;206&quot; alt=&quot;영화 《검은 집》 포스터&quot; filename=&quot;48fdffb2c4c6aAK.jpg&quot; filemime=&quot;&quot;/&gt;&lt;/div&gt;
언론이 인용한 전문가들의 말만 들으면, 사이코패스는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사회의 &lt;a href=&quot;http://krdic.daum.net/dickr/contents.do?offset=A018379900&amp;amp;query1=A018379900#A018379900&quot; class=&quot;external&quot; title=&quot;http://krdic.daum.net/dickr/contents.do?offset=A018379900&amp;amp;query1=A018379900#A018379900&quot;&gt;불수의근不隨意筋&lt;/a&gt;이다. '재수 없이' 이 사람들에게 걸리면, 우리는 그냥 죽는 길 밖에는 없다. 사이코패스에게 죽을 확률이 골프를 치다가 홀인원을 하고 나서 벼락에 맞을 확률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이 무차별 '묻지마 살인'이 순전히 개인적인 것이라면 저 확률을 그저 '재수'에 맡기고 삶을 감내하는 수밖에 없을 따름이다. 이런 일반적인 믿음은 대중문화를 통해 급속하게 퍼져 나간다. 영화 &lt;a href=&quot;http://movie.daum.net/moviedetail/moviedetailMain.do?movieId=42783&quot; class=&quot;external&quot; title=&quot;http://movie.daum.net/moviedetail/moviedetailMain.do?movieId=42783&quot;&gt;《검은 집》&lt;/a&gt;의 홍보 문구는 이 사이코패스라는 것은 선천적인 것이며, 이 사이코패스들은 인간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처럼 말한다:&lt;/p&gt;
&lt;blockquote&gt;
&lt;p&gt;흔히 ‘싸이코’라고 알고 있지만, 그들은 전혀 다른 존재들이다&lt;br /&gt;
그들은 인간 유전자를 공유한 완전히 다른 생명체라는 주장도 있다&lt;br /&gt;
그리고… 정장을 입은 채 항상 우리 곁에 있다&lt;/p&gt;
&lt;/blockquote&gt;
&lt;h3&gt;사이코패스와 슈퍼테러리즘&lt;sup class=&quot;tocAnchorContainer&quot;&gt;&lt;a href=&quot;#toc_1&quot; title=&quot;toc_1&quot; class=&quot;anchor&quot; id=&quot;toc_1&quot;&gt;#&lt;/a&gt;&lt;/sup&gt;&lt;/h3&gt;
&lt;p&gt;그러나 사이코패스는 단지 정신 질환의 일종일 뿐이다. 사이코-패스psycho-path를 한국어로 그대로 옮기면 정신-병일 따름이다. &lt;a href=&quot;http://en.wikipedia.org/wiki/Psychopathy&quot; class=&quot;external&quot; title=&quot;http://en.wikipedia.org/wiki/Psychopathy&quot;&gt;위키피디아&lt;/a&gt;에 따르면 이 사이코패스들은 &lt;a href=&quot;http://en.wikipedia.org/wiki/Psychopathy#PCL-R_Factors&quot; class=&quot;external&quot; title=&quot;http://en.wikipedia.org/wiki/Psychopathy#PCL-R_Factors&quot;&gt;PCL-R 검사&lt;/a&gt;를 통해 밝혀내는데, 사실 평소에도 과대망상증, 자신과 타인에 대한 안전불감, 충동제어 문제, 무책임성, 지루함을 참지 못함, 병적인 자기애, 병적인 거짓말, 폭력적 경향, 반복적인 싸움, 알콜 및 마약 남용 등의 &lt;a href=&quot;http://en.wikipedia.org/wiki/Psychopathy#Symptoms&quot; class=&quot;external&quot; title=&quot;http://en.wikipedia.org/wiki/Psychopathy#Symptoms&quot;&gt;증상&lt;/a&gt;을 보인다고 한다. 이러한 증상은 분명 아주 일상적인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는 못하지만, 전혀 분간해낼 수 없는 수준 역시 아닐 것이다.&lt;/p&gt;
&lt;p&gt;'묻지마 살인'은 사실 &lt;a href=&quot;http://www.donga.com/fbin/dict?n=sisa&amp;amp;a=v&amp;amp;l=5095&quot; class=&quot;external&quot; title=&quot;http://www.donga.com/fbin/dict?n=sisa&amp;amp;a=v&amp;amp;l=5095&quot;&gt;슈퍼테러리즘&lt;/a&gt;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 슈퍼테러리즘은 불특정 다수에 대한 테러이다. 이런 유의 테러가 생긴 것은, 사회가 그만큼 소외된 개인을 포용하지 못한 탓에, 그 개인이 사회 전체에 대한 적개심을 품게 되기 때문일 것이다. 때문에 이런 슈퍼테러리즘 문제는 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사회의 문제라고 보아야 옳다. 가령 엄청난 희생자를 낳은 &lt;a href=&quot;http://ko.wikipedia.org/wiki/%EB%8C%80%EA%B5%AC_%EC%A7%80%ED%95%98%EC%B2%A0_%ED%99%94%EC%9E%AC%EC%82%AC%EA%B3%A0&quot; class=&quot;external&quot; title=&quot;http://ko.wikipedia.org/wiki/%EB%8C%80%EA%B5%AC_%EC%A7%80%ED%95%98%EC%B2%A0_%ED%99%94%EC%9E%AC%EC%82%AC%EA%B3%A0&quot;&gt;대구 지하철 화재사고&lt;/a&gt; 역시, 장애인을 포용하지 못하는 사회에서 일어난 비극이라는 견해도 있다.&lt;/p&gt;
&lt;h3&gt;사이코패스 사건 예방&lt;sup class=&quot;tocAnchorContainer&quot;&gt;&lt;a href=&quot;#toc_2&quot; title=&quot;toc_2&quot; class=&quot;anchor&quot; id=&quot;toc_2&quot;&gt;#&lt;/a&gt;&lt;/sup&gt;&lt;/h3&gt;
&lt;p&gt;사이코패스의 증상과 대구 지하철 화재사고를 비롯한 슈퍼테러리즘의 원인을 조합하면, '묻지마 살인'에 대한 예방은 사회의 보호에 있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사회가 소외된 개인을 충분히 보호하고 감싸 준다면, 아무리 충동 억제가 부족한 사람이라도 '묻지마 살인'을 일으킬 만큼 심각한 상황에 빠지지는 않을 것이다. 사이코패스는 &lt;a href=&quot;http://kimjongbae.tistory.com/entry/%EC%82%AC%EC%9D%B4%EC%BD%94%ED%8C%A8%EC%8A%A4-%EB%8B%B9%EC%8B%A0-%EC%9E%90%EC%8B%9D%EC%9D%80-%EC%95%88%EC%A0%84%ED%95%98%EC%8B%AD%EB%8B%88%EA%B9%8C&quot; class=&quot;external&quot; title=&quot;http://kimjongbae.tistory.com/entry/%EC%82%AC%EC%9D%B4%EC%BD%94%ED%8C%A8%EC%8A%A4-%EB%8B%B9%EC%8B%A0-%EC%9E%90%EC%8B%9D%EC%9D%80-%EC%95%88%EC%A0%84%ED%95%98%EC%8B%AD%EB%8B%88%EA%B9%8C&quot;&gt;&quot;남을 배려하고 생명을 존중하는 의식이 희미해지는 경쟁사회의 부산물&quot;&lt;/a&gt;이다.&lt;/p&gt;
&lt;p&gt;아직도 언론은 슈퍼테러리즘 사건에 대해 서술하면서 &quot;용의자가 사이코패스라는 주장이 있다&quot;는 식으로 B급 호러영화의 정서로 접근한다. 사이코패스라는 딱지가 한번 앉으면, 그 다음부터는 더이상의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 &lt;a href=&quot;http://news.hankooki.com/lpage/society/200810/h2008102016172721980.htm&quot; class=&quot;external&quot; title=&quot;http://news.hankooki.com/lpage/society/200810/h2008102016172721980.htm&quot;&gt;고시원 방화 사건&lt;/a&gt;에서도 사이코패스 이야기가 파다했다. 용의자 정 씨가 사이코패스인지 아닌지는 아마 검사를 받아봐야 알겠지만, 적어도 그가 &lt;a href=&quot;http://news.sbs.co.kr/section_news/news_read.jsp?news_id=N1000489200&quot; class=&quot;external&quot; title=&quot;http://news.sbs.co.kr/section_news/news_read.jsp?news_id=N1000489200&quot;&gt;경찰 진술&lt;/a&gt;을 통해 스스로 핍박을 많이 받았다고 생각하는 것만은 확실한 것 같다. 요컨대 그는 사회로부터 소외받은 사람이었거나 스스로 그렇게 여겨온 사람이라는 점이 분명해진 것이다.&lt;/p&gt;
&lt;h3&gt;범인은 누구인가?&lt;sup class=&quot;tocAnchorContainer&quot;&gt;&lt;a href=&quot;#toc_3&quot; title=&quot;toc_3&quot; class=&quot;anchor&quot; id=&quot;toc_3&quot;&gt;#&lt;/a&gt;&lt;/sup&gt;&lt;/h3&gt;
&lt;p&gt;『시지프의 신화』를 통해 자살에 대해 긴 변론을 내놓은 까뮈는 이렇게 말했다(17-18):&lt;/p&gt;
&lt;blockquote&gt;
&lt;p&gt;자살에는 수많은 이유들이 있는데 일반적으로 볼 때 가장 뻔한 이유가 반드시 가장 확실한 이유라고는 할 수 없다. 깊이 반성한 끝에 자살하는 일은(그렇다고 이 가설이 전연 배제되는 것은 아니지만) 드물다. 거의 언제나 이성적으로 통제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위기의 발단이 된다. 흔히 '실연'이니 '불치의 병'을 운운한다. 이와 같은 설명은 그럴듯해 보인다. 그러나 바로 전날, 절망에 빠진 사람의 친구 하나가 그에게 무관심한 어조로 대꾸한 적은 없었는지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바로 그자가 죄인이다. 왜냐하면 그것 한 가지만으로도 유예 상태에 있었던 모든 원한과 모든 권태가 한꺼번에 밀어닥치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lt;/p&gt;
&lt;/blockquote&gt;
&lt;p&gt;'묻지마 살인'을 저지른 범인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우리다. 소외 계층을 우리의 이웃으로 품지 못한 우리 사회 전체가 범인이다.&lt;/p&gt;
&lt;h4&gt;참고문헌&lt;/h4&gt;
&lt;p&gt;Camus, Albert. 2000. 『시지프 신화』. 김화영 옮김. 개정판. 알베르카뮈전집4. 서울:책세상.&lt;/p&gt;
&lt;p style=&quot;text-align: right;&quot;&gt;이 글은 &lt;a href=&quot;http://stryperz.springnote.com/&quot;&gt;스프링노트&lt;/a&gt;에서 작성되었습니다.&lt;/p&gt;</description>
      <category>어느어릿광대의견해</category>
      <category>PCL-R</category>
      <category>PSYCHOPATH</category>
      <category>검은집</category>
      <category>까뮈</category>
      <category>대구지하철참사</category>
      <category>대구지하철화재사건</category>
      <category>묻지마살인</category>
      <category>사이코패스</category>
      <category>소외</category>
      <category>슈퍼테러리즘</category>
      <category>시지프의신화</category>
      <category>싸이코패스</category>
      <category>알베르까뮈</category>
      <category>알베르카뮈</category>
      <category>자살</category>
      <category>카뮈</category>
      <author>엔디</author>
      <guid isPermaLink="true">https://endyecrit.tistory.com/217</guid>
      <comments>https://endyecrit.tistory.com/217#entry217comment</comments>
      <pubDate>Wed, 22 Oct 2008 01:18:41 +0900</pubDate>
    </item>
    <item>
      <title>길의 지식, 거리의 지혜: 보라 《로드 스쿨러》</title>
      <link>https://endyecrit.tistory.com/216</link>
      <description>&lt;p&gt;&lt;a href=&quot;http://me2day.net&quot; title=&quot;http://me2day.net&quot; class=&quot;external&quot;&gt;미투데이&lt;/a&gt;를 통해 보라 감독의 &lt;a href=&quot;http://www.mediacontest.net/8th/contest/contest_view.jsp?pageno=1&amp;amp;id=576&amp;amp;board_flag=movie_08b&amp;amp;table_name=show_05&quot; title=&quot;http://www.mediacontest.net/8th/contest/contest_view.jsp?pageno=1&amp;amp;id=576&amp;amp;board_flag=movie_08b&amp;amp;table_name=show_05&quot; class=&quot;external&quot;&gt;《로드 스쿨러》&lt;/a&gt;를 접하게 되었다. 흔히 '탈학교청소년' 또는 '홈스쿨러homeschooler'라고 불리는 이름을 거부하고 '로드 스쿨러roadschooler'라는 새 이름을 원하는 청소년-청년들의 이야기였다. 예술가들조차 거리를 버리는 이 시대에!&lt;/p&gt;
&lt;p&gt;1&lt;br /&gt;
&lt;/p&gt;
&lt;p&gt;기형도는 한 시작詩作 메모에서 이렇게 쓴 적이 있다(전집, 333):&lt;/p&gt;
&lt;blockquote&gt;
&lt;p&gt;「밤눈」을 쓰고 나서 나는 한동안 무책임한 자연의 비유를 경계하느라 거리에서 시를 만들었다. 거리의 상상력은 고통이었고 나는 그 고통을 사랑하였다. 그러나 가장 위대한 잠언이 자연 속에 있음을 지금도 나는 믿는다. 그러한 믿음이 언젠가 나를 부를 것이다.&lt;/p&gt;
&lt;/blockquote&gt;
&lt;p&gt;만약 시 속에 존재와 삶의 비밀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 단 몇 퍼센트만이라도 믿는다면, 우리는 이 '로드스쿨러'들을 주목해야 한다. 지금의 학교 교육은 기형도가 말한 '자연'과 '거리' 가운데 어느 하나도 담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학교 교육은 성장이 아니라 경쟁을 말하고, 믿음과 잠언이 아니라 암기暗記를 말한다. 나는 경쟁과 암기가 필요없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들은 그 나름대로 중요한 가치일 터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들 속에 매몰되는 다른 소중한 가치들이다.&lt;/p&gt;
&lt;p&gt;&lt;object width=&quot;400&quot; height=&quot;300&quot;&gt;	&lt;param name=&quot;allowfullscreen&quot; value=&quot;true&quot; /&gt;	&lt;param name=&quot;allowscriptaccess&quot; value=&quot;always&quot; /&gt;	&lt;param name=&quot;movie&quot; value=&quot;http://vimeo.com/moogaloop.swf?clip_id=1918731&amp;amp;server=vimeo.com&amp;amp;show_title=1&amp;amp;show_byline=1&amp;amp;show_portrait=0&amp;amp;color=&amp;amp;fullscreen=1&quot; /&gt;	&lt;embed src=&quot;http://vimeo.com/moogaloop.swf?clip_id=1918731&amp;amp;server=vimeo.com&amp;amp;show_title=1&amp;amp;show_byline=1&amp;amp;show_portrait=0&amp;amp;color=&amp;amp;fullscreen=1&quot; type=&quot;application/x-shockwave-flash&quot; allowfullscreen=&quot;true&quot; allowscriptaccess=&quot;always&quot; width=&quot;400&quot; height=&quot;300&quot;&gt;&lt;/embed&gt;&lt;/object&gt;&lt;br /&gt;
&lt;/p&gt;
&lt;p&gt;시 「밤눈」이 묘사하고 있는 거리는 만만치 않다. 시인은 밤눈에게 &quot;하늘에는 온통 네가 지난 자리마다 바람이 불고 있다&quot;고 말해준다. 거리는 겨울이고, 그곳에 눈보라가 친다. 사시나무가 떨고 있고, 썩은 가지들은 엎드려 있다. 은실들은 엉켜 울고 있다. 그러나 밤눈은 &quot;아무에게도 줄 수 없는 빛을 한 점씩 하늘 낮게 박으면서 […] 또 다른 사랑을 꿈꾸&quot;고 있다. 그러면서 밤눈은 춤을 춘다. 시인은 궁금하다: &quot;얼어붙은 대지에는 무엇이 남아 너의 춤을 자꾸만 허공으로 띄우고 있었을까.&quot;&lt;/p&gt;
&lt;p&gt;이를테면 로드스쿨러들은, 약간은 무책임한 비유이지만, 그 겨울과 눈보라 속에서 춤을 추는 사람들이다. 길의 지식과 거리의 지혜는 눈보라와 무관치 않다. 고통에 기반한 이 아름다운 지혜들은 삶과 별개의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고통 속에서도 춤을 출 수 있고, 그 속에서도 사랑을 꿈꿀 수 있다. 이런 춤과 사랑이 특이하게 보인다면, 오랜 인류의 삶을 조금만 더 반추해볼 필요가 있다. 본래 모든 축제란 슬픔 속에서, 고통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었으니까 말이다. 내 생각에, 보라 감독의 인도 기행은 아마 그 고통과 축제가 어떻게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볼 수 있는 기회였을 것이다.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은 야위어 있거나 물에 잠겨 있었으며, 그들은 느릿느릿 살고 있었고 자유로웠다. 보라 감독은 그들을 &quot;친근했다&quot;고 하고 &quot;행복의 속도&quot;에 대해 말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기에 '그들'의 삶은 행복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그들은 자신들에게 적용될 행복의 공식을 알고 있었고, 그 공식이 옳다는 것을 믿고 있었을 뿐이다. 그들은 행복했다. 그것이 거리의 지혜였을 것이다.&lt;br /&gt;
&lt;/p&gt;
&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quot;&gt;&lt;img src=&quot;https://t1.daumcdn.net/tistoryfile/fs9/22_tistory_2008_09_24_20_21_48da22d54b78c?original&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t1.daumcdn.net%2Ftistoryfile%2Ffs9%2F22_tistory_2008_09_24_20_21_48da22d54b78c%3Foriginal&quot; width=&quot;500&quot; height=&quot;334&quot; alt=&quot;&quot; filename=&quot;roadschooler.jpg&quot; filemime=&quot;&quot;/&gt;&lt;/div&gt;
&lt;br /&gt;
거리의 지혜는 자유롭지만, 마찬가지로 책임이 따른다. 보라 감독이 말하고 싶어하는 로드스쿨러는 기성 권력에 반대하는 단순한 우상파괴주의자가 아니다. 그들은 남들이 유예한 자유를 미리 '쟁취'하면서 자유에 따른 책임 역시 함께 '쟁취'했다.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다가, 지치면 서가에서 소설을 찾아 읽거나 멀티미디어실에서 영화를 본다는 로드스쿨러도 있었다. 책과 영화 속에 공부한 내용이 나타나는 것을 보고 그들은 자유가 분명 통한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문예창작, 사회과학, 만화, 애니메이션……. 그들이 하고자 하는 공부의 목록 일부다. 그들은 학교를 뛰쳐 나왔지만, 학업의 목표를 위해 수능 공부를 다시 시작하기도 한다. 물론 이와 같은 '성실 모드'로만 이들을 평가하는 것은 성급하다. 아직 길을 찾고 있는 로드스쿨러도 있고, 모르긴 해도 잠깐 삶의 즐거움을 만끽하는 것으로 만족하려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다만 확실한 것은 거리에서 삶과 직접 부딪혀 본 그들이 오히려 더 '책임'에 민감하고, 더 고민을 거듭하는 정신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밤눈이 빛을 한 점씩 하늘 낮게 박듯이.
&lt;p&gt;로드스쿨러들이 명성이나 사회적 시선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보라 감독은 책을 출간함으로서 사회적 시선의 방패막이를 하려고 했고, 산은 대학에 감으로써 주변의 시선을 극복하려 하기도 했다고 말한다. 나로서는 이것이 로드스쿨러들의 어쩔 수 없는 인식이라기보다는 아직까지 그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한국 사회의 인식이라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로서는 그들 가운데 많은 숫자가 대학에 갔으면 좋겠다. 다름을 용인하지 않고, 올바름을 고민하지 않는 이 사회의 주목을 끌면서 그 사회를 바꿀 수 있는 길을 그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lt;/p&gt;
2&lt;br /&gt;
&lt;p&gt;얼마 전부터 공부한답시고 다시 찾아간 대학은 '캠퍼스 리쿠르팅'이 한창이었다. 보라 감독이 말하는 '취업 준비소'의 가장 첨예한 모습이다. 그 가운데 '동아리 리쿠르팅'도 보였다. 후배에게 물었다:&lt;/p&gt;
&lt;blockquote&gt;
&lt;p&gt;&quot;아니, 동아리도 리쿠르팅을 하나?&quot;&lt;br /&gt;
&quot;요즘 신입생 잡기가 얼마나 힘든데요.&quot;&lt;br /&gt;
&quot;그래? 요새 애들은 동아리를 잘 안 하나 보지?&quot;&lt;br /&gt;
&quot;아뇨, 하긴 하는데, 취업에 도움이 되지 않는 동아리는 잘 하지 않아요.&quot;&lt;/p&gt;
&lt;/blockquote&gt;
&lt;p&gt;그래서 나는 이 로드스쿨러들이 대학에 적응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그러나 내가 기억해보건대 그래도 대학은 사회 다른 부분보다 더 순수한 곳이었고, 세계를 바꾸기 위해서는 대학부터 순수의 모습을 찾아가야 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 4·19를 믿고, 68을 믿는다. 그래도 거리와 자연의 힘이 살이 있는 곳이라는 말이다.&lt;br /&gt;
&lt;/p&gt;
3&lt;br /&gt;
&lt;p style=&quot;text-decoration: line-through;&quot;&gt;다큐멘터리가 조금만 더 친절했으면 좋겠다. 굳이 단락를 나눌 필요는 없지만, 대략 주제가 어떻게 흘러간다는 정도만은 자막으로 살려 줬으면 어떨까.&lt;/p&gt;
&lt;p style=&quot;text-align: right;&quot;&gt;이 글은 &lt;a href=&quot;http://stryperz.springnote.com/&quot;&gt;스프링노트&lt;/a&gt;에서 작성되었습니다.&lt;/p&gt;</description>
      <category>극장전</category>
      <category>roadschooler</category>
      <category>다큐멘터리</category>
      <category>로드스쿨러</category>
      <category>보라</category>
      <category>영화</category>
      <category>탈학교청소년</category>
      <category>홈스쿨러</category>
      <author>엔디</author>
      <guid isPermaLink="true">https://endyecrit.tistory.com/216</guid>
      <comments>https://endyecrit.tistory.com/216#entry216comment</comments>
      <pubDate>Wed, 24 Sep 2008 01:35:59 +0900</pubDate>
    </item>
    <item>
      <title>'국어순화'와 언어 심미주의: '우리말 다듬기' 유감</title>
      <link>https://endyecrit.tistory.com/215</link>
      <description>&lt;p&gt;무분별한 한자어나 외래어의 사용은 분명히 언어의 양극화를 심화시켜 정보의 불균형을 낳는다. 정보가 민주적으로 배포되지 않는 곳에서 세계는 평평하지 않다. 때문에 한자어나 서양 외국어 독해에 어려움을 겪는 대중들에게 외래어를 한국어로 옮기는 운동은 소중한 의미를 갖는다.&lt;/p&gt;&lt;p&gt;이를테면, '국어순화' 운동의 가장 큰 성과로 생각되는 '갓길'이 그렇다. 숄더shoulder나 노견路肩이라고 하면 썩 잘 다가오지 않는 개념이 갓길이라고 하면 한눈에 무슨 뜻인지 알 것 같다. 게다가 갓길은 숄더나 노견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말이다. 정과리(1998, 38)는 &quot;'노견'이라는 가금家禽 종자 같은 이름을 벗어던지고 새로 차려 입은 우리말이 상큼한 여성성을 연상케&quot;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lt;/p&gt;
&lt;p&gt;국립국어원에서 운영하는 &lt;a href=&quot;http://www.malteo.net&quot; title=&quot;http://www.malteo.net&quot; class=&quot;external&quot;&gt;우리말 다듬기&lt;/a&gt; 사이트에서는 매주 외래어 하나씩을 골라 한국어 갈음말(대체어)을 내놓는다. 이렇게 만들어진 갈음말이 그대로 표준어로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lt;a href=&quot;http://www.donga.com/fbin/output?f=todaynews&amp;amp;code=j__&amp;amp;n=200407260130&amp;amp;main=1&quot; title=&quot;http://www.donga.com/fbin/output?f=todaynews&amp;amp;code=j__&amp;amp;n=200407260130&amp;amp;main=1&quot; class=&quot;external&quot;&gt;동아일보 기사&lt;/a&gt;에 따르면 이 말이 널리 쓰이면 표준어의 지위를 획득하여 사전에 실리게 되는데, 이 때 최초 제안자의 이름도 함께 넣는다고 한다.&lt;/p&gt;&lt;p&gt;그러나 일부 낱말들은 이미 상당한 정도로 쓰이고 있다. 예를 들어, 댓글reply이나 누리꾼netizen, 다시 보기vod 등은 일반은 물론 몇몇 언론에서도 쓰이고 있으며, 영화헤살꾼spoiler이나 참살이well-being, 늘찬배달quick service도 적지 않게 사용되고 있다.&lt;/p&gt;
&lt;h4&gt;아름다운 말과 알맹이가 없는 말&lt;br /&gt;&lt;/h4&gt;
&lt;p&gt;문제는 &lt;a href=&quot;http://www.malteo.net&quot; class=&quot;external&quot; title=&quot;http://www.malteo.net&quot;&gt;우리말 다듬기&lt;/a&gt;에서 다듬은 말 가운데 '갓길'처럼 아름다운 말은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갓길이 아름답다는 것은 단지 그 말의 말맛語感이 좋다는 뜻만은 아니다. 갓길은 그 사이시옷의 매력을 한껏 돋우는 발음을 갖고 있으면서도, 한번 들으면 누가 굳이 설명하지 않더라도 무엇을 말하는지 알 만한 직관성을 갖고 있다. 그러면서도 설명적이지 않고, 길이도 짧다. 한국어의 아름다움을 자랑차게 뽐내는 낱말로 손색이 없다.&lt;/p&gt;
&lt;p&gt;&lt;a href=&quot;http://www.malteo.net&quot; class=&quot;external&quot; title=&quot;http://www.malteo.net&quot;&gt;우리말 다듬기&lt;/a&gt;에서 '갓길'처럼 아름다운 말을 찾으라면 '댓글'이나 '다시 보기' 따위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댓글'은 직관적이고 짧으면서도 '댓거리'처럼 알려진 말과 조화가 맞는다. '다시 보기'는 VOD보다 긴 듯하지만, 음절 수는 같으며 video on demand로 풀지 않으면 의미를 알 수 없는 VOD에 비해 훨씬 직관적이다. 또 AOD를 '다시 듣기'로 표현할 수 있는 토대가 되는 등 활용도도 높다. 하지만 이런 낱말들은 기실 &lt;a href=&quot;http://www.malteo.net&quot; class=&quot;external&quot; title=&quot;http://www.malteo.net&quot;&gt;우리말 다듬기&lt;/a&gt;에서 순화하기 이전에도 널리 쓰였던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lt;a href=&quot;http://www.malteo.net&quot; class=&quot;external&quot; title=&quot;http://www.malteo.net&quot;&gt;우리말 다듬기&lt;/a&gt;의 존재 의의는 상당히 축소된다.&lt;/p&gt;

&lt;p&gt;어떤 말은 외양은 화려한데 알맹이가 없는 것도 있다. '행사빛냄이'가 그렇다. 한국인들이 격식을 차릴 때 주로 쓰는 '(자리를) 빛내다'라는 동사를 써서 꽤나 화려해보이는 말이지만, 사실 저 말은 '레이싱걸'을 순화한 말이다. 무엇보다 레이싱걸이 행사를 빛내는 사람인지는 나는 도저히 모르겠다.&lt;/p&gt;&lt;p&gt;뿐만 아니라 최근 들어 무분별하게 사용되고 있는 '-이' 접사를 국립국어원도 아무 생각 없이 사용하고 있으니 아쉬울 따름이다. 사전을 찾아보면 본래 '-이' 접사는 명사나 용언의 어간, 어근, 의성·의태어 뒤에 붙어 명사를 만드는 접미사다. 절름발이는 명사 뒤에 붙은 예이고, 높이는 형용사 어간 뒤에, 먹이는 동사 어간 뒤에, 홀쭉이는 의태어 뒤에, 딸랑이는 의성어 뒤에 '-이'가 붙은 예이다. 요즘 흔히 보이는 '지킴이'나 &lt;a href=&quot;http://www.malteo.net&quot; class=&quot;external&quot; title=&quot;http://www.malteo.net&quot;&gt;우리말 다듬기&lt;/a&gt;에서 선정한 '…빛냄이'처럼 용언의 명사형에 '-이'가 붙는 경우는 없다. 외래어를 우리말로 아름답게 다듬어야 하지만, 그 과정에서 알맹이가 사라지거나 규칙이 무분별하게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rgb(121, 121, 121);&quot;&gt;규칙이 무시되는 것이 외래어의 유입보다 한국어에 더 나쁜 영향을 미칠지도 모른다. 외래어는 한국어 속으로 들어오면서 기존 언어의 규칙보다는 한국어의 규칙 속에 편입된다. 이 경우 외래어는 어휘 수준에서 한국어 속으로 편입되지만, 형태론적 차원이나 통사론적 차원에서는 한국어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lt;/span&gt;&lt;/p&gt;&lt;p&gt;&lt;span style=&quot;color: rgb(121, 121, 121);&quot;&gt;가령 영어 동사인 lead가 이미 '이끌다'는 뜻을 가진 동사임에도 한국어 내에서는 '리드하다'는 식으로 '-하다'를 붙여서 나타난다. '픽업하다', '프린트아웃하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또, '내츄럴하게'에서 볼 수 있듯이 natural은 본래 영어에서의 부사접미사인 -ly를 포기하고 한국어의 문법을 따라 '-하게'라는 어미를 채용하게 된다. 때문에 외래어의 유입이 한국어의 문법을 바꾸는 경우는 거의 없다.&lt;/span&gt;&lt;/p&gt;&lt;p&gt;&lt;span style=&quot;color: rgb(121, 121, 121);&quot;&gt;그런 점에서 all-in을 '다걸기'로 옮긴 것도 문제가 있다. 보통 '올인하다'라는 동사형으로 쓰이는 이 말을 '다걸기'라고 옮기면 '올인해'는 '다걸기해'가 된다는 말인가? '다 걸어'면 족할 일이다. 국어의 형태론적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무분별한 순화의 사례라고 하겠다.&lt;/span&gt;&lt;/p&gt;
&lt;h4&gt;깁더와 붙갈이소리&lt;/h4&gt;
&lt;p&gt;해방 이전에 주시경 선생의 제자로 외솔 선생과 쌍벽을 이루었던 &lt;a href=&quot;http://ko.wikipedia.org/wiki/%EA%B9%80%EB%91%90%EB%B4%89&quot; class=&quot;external&quot; title=&quot;http://ko.wikipedia.org/wiki/%EA%B9%80%EB%91%90%EB%B4%89&quot;&gt;김두봉&lt;/a&gt;은 아름다우면서도 정확한 말을 만드는 데 뛰어났다. 그는 자신이 지은 문법책 『&lt;a href=&quot;http://www.encyber.com/search_w/ctdetail.php?gs=ws&amp;amp;gd=&amp;amp;cd=&amp;amp;q=&amp;amp;p=&amp;amp;masterno=729448&amp;amp;contentno=729448&quot; class=&quot;external&quot; title=&quot;http://www.encyber.com/search_w/ctdetail.php?gs=ws&amp;amp;gd=&amp;amp;cd=&amp;amp;q=&amp;amp;p=&amp;amp;masterno=729448&amp;amp;contentno=729448&quot;&gt;조선말본&lt;/a&gt;』의 증보판增補版을 내면서 『&lt;a href=&quot;http://hyangto.pe.kr/L18-T19.htm&quot; class=&quot;external&quot; title=&quot;http://hyangto.pe.kr/L18-T19.htm&quot;&gt;깁더 조선말본&lt;/a&gt;』이라 이름붙였다. '깁더'는 '깁고 더한'을 줄인 말이다. 이 '깁더'라는 말은 2007년 김진우 선생이 『언어: 이론과 그 응용』의 새판을 『&lt;a href=&quot;http://www.kyobobook.co.kr/product/detailViewKor.laf?ejkGb=KOR&amp;amp;mallGb=KOR&amp;amp;barcode=9788934201083&amp;amp;orderClick=LAG&quot; class=&quot;external&quot; title=&quot;http://www.kyobobook.co.kr/product/detailViewKor.laf?ejkGb=KOR&amp;amp;mallGb=KOR&amp;amp;barcode=9788934201083&amp;amp;orderClick=LAG&quot;&gt;언어: 이론과 그 응용 깁더본&lt;/a&gt;』이라 이름하면서 후대에 이어지기도 했다.&lt;/p&gt;&lt;p&gt;김두봉이 지은 다른 말로는 &lt;a href=&quot;http://krdic.daum.net/dickr/contents.do?offset=A018509200&amp;amp;query1=A018509200#A018509200&quot; class=&quot;external&quot; title=&quot;http://krdic.daum.net/dickr/contents.do?offset=A018509200&amp;amp;query1=A018509200#A018509200&quot;&gt;붙갈이소리&lt;/a&gt;가 있다. 언어학의 음운론 용어인데, 파찰음破擦音을 토박이말로 바꾼 것이다. 붙었다가 터지면서 소리가 나지만, 완전히 터지지 않고 갈아서 나는 소리인 'ㅈ', 'ㅉ', 'ㅊ'을 일컫는 말이다. 파찰음보다 얼마나 더 쉽고 얼마나 더 아름다운지 보라.&lt;/p&gt;
&lt;h4&gt;푸른 바다의 은유와 샹글릴라의 이상향&lt;/h4&gt;
&lt;p&gt;&lt;a href=&quot;http://www.malteo.net&quot; class=&quot;external&quot; title=&quot;http://www.malteo.net&quot;&gt;우리말 다듬기&lt;/a&gt;가 다듬었다는 말 가운데 정말 실소를 금할 수 없는 것은 대안시장이라는 말이다. 대안시장은 연전에 널리 인기를 끌었던 블루오션을 다듬은 말이다. 블루오션 전략은 모두 알다시피 경쟁이 많은 피바다 레드오션이 아니라 경쟁이 없는 푸른 바다 블루오션을 찾자는 마케팅 전략이다. 블루오션 전략을 조금이라도 공부한 사람은 대안시장이 블루오션 전략을 어느 정도 설명할 수는 있지만, 전체를 갈음하기는 어렵다는 데에 동의할 것이다. 대안시장이란 마치 기존의 시장과는 전혀 다른 시장을 말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물론 블루오션 전략은 '비고객을 고객으로 만들라'고 주문하는 등 '대안시장'과 전혀 관계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블루오션 전략의 적지 않은 부분은 기존 고객의 많은 수가 별로 신경쓰지 않는데 원가만 많이 드는 고정관념 속의 재화나 용역을 버리고 고객의 진정한 필요를 찾아 거기에 투자하라는 데에 바쳐진다. 가령 태양의 서커스라는 시르크 뒤 솔레이유는 서커스에서 동물이 등장하는 부분을 버리고 이야기와 곡예를 강화하거나 창조하여 새로운 서커스를 만들어내어 세계적인 인기를 끈다는 식이다. 그러므로 블루오션이 전혀 다른 새로운 대안 시장을 만들어내는 것만은 아님을 알 수 있다.&lt;/p&gt;
&lt;p&gt;그렇다면 블루오션은 어떻게 한국어로 다듬으면 좋을까? 영어를 처음 배우는 초등학생에게 물어봐도 답은 금방 나온다. '푸른 바다'다. '블루오션 전략'은 '푸른 바다 전략'이라고 부르면 된다. 본래 '블루오션 전략'은 가치혁신value innovation이라는 이름으로 추진되었던 전략인데, 김위찬 교수와 르네 마보안 교수가 책을 내면서 은유적인 의미를 더해 '블루오션 전략'이라고 이름붙인 것이다. 이것을 다시 '대안시장'으로 다듬는다면 원뜻에서 한참 멀어지고 만다. '국어순화' 운동이 이런 간단한 은유조차 담지 못하는 것은 확실히 문제다. 원어에서 은유가 도입되었다면 갈음말에서도 은유를 쓰는 것이 당연하다.&lt;/p&gt;
&lt;p&gt;또, 아름다운 이름의 고유명사 &lt;a href=&quot;http://en.wikipedia.org/wiki/Shangri-La&quot; target=&quot;&quot;&gt;샹그릴라&lt;/a&gt;를 굳이 '꿈의 낙원'이라는 설명적인 용어로 바꾼 것도 문제다. 샹그릴라는 무릉도원, 유토피아, 엘도라도, 그리고 율도국과 함께 사람들이 오래 생각한 이상향의 한 종류인데, 저 이상향들은 각기 다른 문화적 전통과 초점을 갖고 있는 것이다. 샹그릴라는 샹그릴라일 뿐이다.&lt;/p&gt;
&lt;h4&gt;맺음말: 민족주의와 심미주의&lt;/h4&gt;
&lt;p&gt;말이란 관념이나 이념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가는 곳이 곧 길이 되듯, 모든 말무리言衆들이 쓰는 것이 곧 말이다. 외래어를 '순화'시켜야 한다고 하는 사람들은 언제든지 상허 이태준으로 되돌아가 보아야 한다(이태준 1988, 27):&lt;/p&gt;
&lt;blockquote&gt;
&lt;blockquote&gt;그는 클락에서 캡을 찾아 들고 트라비아타를 휘파람으로 날리면서 호텔을 나섰다. 비 개인 가을 아침, 길에는 샘물같이 서늘한 바람이 풍긴다. 이제 식당에서 마신 짙은 커피 향기를 다시 한번 입술에 느끼며 그는 언제든지 혼자 걷는 남산 코스를 향해 전차길을 걷는다.&lt;/blockquote&gt;
&lt;p&gt;이 문장에서 클락, 캡, 트라비아타, 호텔, 커피, 코스 등의 외래어를 굳이 안 쓴다고 해보라. 이 외에 무슨 말로 '그'라는 현대인의 생활을 묘사해낼 것인가? […]&lt;/p&gt;
&lt;p&gt;새 말을 만들고, 새 말을 쓰는 것은 유행이 아니라 유행 이상 엄숙하게, 생활에 필요하니까 나타나는 사실임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커피를 먹는 생활부터가 생기고, 퍼머넨트 식으로 머리를 지지는 생활부터가 생기니까 거기에 적응한 말 즉 커피, 퍼머넨트가 생기는 것이다.&lt;/p&gt;
&lt;/blockquote&gt;
&lt;p&gt;말은 말무리의 것인데, '국어순화'론자들은 말을 민족의 것으로 치환해버린다. 한국어가 한국어 말무리들의 것이 아니라 민족의 것이 되면, 한국어는 외래어나 한자어를 배격할 수밖에 없다. 거기에는 말을 아름답게 만들려는 심미적 욕구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민족주의는 너무나도 무겁고 심각하기 때문이다.&lt;/p&gt;&lt;p&gt;가령 김우창(1977, 385-386, 388-389)은 '얼'이나 '슬기'와 같은 민족주의적 고유어가 강요하는 외경감에 대해 말한다. '얼'이라는 말 한 마디에서 우리는 자랑스러운 한민족임을 느끼면서 자못 종교적인 열락에 빠지고 마는 것이다. 이런 민족주의 열락에 빠지게 되면 고유어는 하나의 가짜 '심미화'를 형성하게 된다. 발터 베냐민에게 '정치의 심미화'가 그랬던 것처럼(신형기 2003, 180), '얼'이라는 억압적인 말이 가짜 아우라를 갖게 되면서 우리는 그 억압적인 말과 화해하게 된다. 여기서 '얼'이 본래 '어리석어 빠지다'는 뜻의 '얼빠지다'를 잘못 분석해서 생긴 말이라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lt;/p&gt;
&lt;p&gt;민족주의의 가짜 '심미화'에서 벗어나 진짜 한국어의 아름다운 맛을 느낄 수 있는 언어 운동이 생기기를 바란다. 뷔퐁이 &quot;문체(스타일)는 곧 그 자신이다Le style est l'homme même.&quot;라고 말한 것은 그저 한 말이 아니다. 언어 심미주의야말로 언어 운동에서 가장 소중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다.&lt;/p&gt;
&lt;h4&gt;참고문헌&lt;/h4&gt;
&lt;p&gt;김우창. 1977. &quot;말과 現實: 國語醇化運動에 대한 몇 가지 생각&quot;. 수록처: 『궁핍한 시대의 詩人』. 김우창전집1. 서울:민음사. 378-390쪽.&lt;br /&gt;
신형기. 2003. &quot;남북한 문학과 '정치의 심미화'&quot;. 수록처: 『민족 이야기를 넘어서』. 동시대인 총서12. 서울:삼인. 171-197쪽.&lt;br /&gt;
이태준. 1988. 『문장강화』. 창비교양문고10. 서울:창작과비평사.&lt;br /&gt;
정과리. 1998. &quot;대한국인이 갓길을 침범할 때&quot;. 수록처: 『문명의 배꼽』. 문지스펙트럼4-009. 서울:문학과지성사. 38-41쪽.&lt;/p&gt;
&lt;p style=&quot;text-align: right;&quot;&gt;이 글은 &lt;a href=&quot;http://stryperz.springnote.com/&quot;&gt;스프링노트&lt;/a&gt;에서 작성되었습니다.&lt;/p&gt;</description>
      <category>어느어릿광대의견해/그말이잎을물들였다</category>
      <category>갓길</category>
      <category>국어순화</category>
      <category>김두봉</category>
      <category>깁더</category>
      <category>내셔널리즘</category>
      <category>누리꾼</category>
      <category>다시보기</category>
      <category>대안시장</category>
      <category>댓글</category>
      <category>문장강화</category>
      <category>민족주의</category>
      <category>베냐민</category>
      <category>벤야민</category>
      <category>붙갈이소리</category>
      <category>뷔퐁</category>
      <category>블루오션</category>
      <category>상허</category>
      <category>샹그릴라</category>
      <category>스타일</category>
      <category>심미주의</category>
      <category>심미화</category>
      <category>우리말다듬기</category>
      <category>이태준</category>
      <category>푸른바다</category>
      <author>엔디</author>
      <guid isPermaLink="true">https://endyecrit.tistory.com/215</guid>
      <comments>https://endyecrit.tistory.com/215#entry215comment</comments>
      <pubDate>Fri, 5 Sep 2008 01:23:31 +0900</pubDate>
    </item>
    <item>
      <title>구술사의 진실과 점근선: 뉴라이트식 실증주의와 국수주의적 민족주의를 넘어서</title>
      <link>https://endyecrit.tistory.com/213</link>
      <description>&lt;p&gt;흔히 뉴라이트 역사교과서라고 불리는 &lt;a href=&quot;http://textforum.net/&quot; class=&quot;external&quot; title=&quot;http://textforum.net/&quot;&gt;교과서포럼&lt;/a&gt;의 &lt;a href=&quot;http://www.alad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1965407&amp;amp;partner=egloos&quot; class=&quot;external&quot; title=&quot;http://www.alad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1965407&amp;amp;partner=egloos&quot;&gt;『대안 교과서 한국 근·현대사』&lt;/a&gt;가 내세우는 것은 실증주의다. 그들은 기존의 역사 교과서가 '좌편향'되어 있다고 비판하면서 교과서포럼 &lt;a href=&quot;http://www.textforum.net/sub1b.php&quot; class=&quot;external&quot; title=&quot;http://www.textforum.net/sub1b.php&quot;&gt;창립선언문&lt;/a&gt;을 통해 이렇게 자신들의 지향점을 밝혔다:&lt;/p&gt;
&lt;blockquote&gt;
&lt;p&gt;&amp;lt;교과서포럼&amp;gt;은 대한민국의 과거를 미화하지도 않겠지만, 비하하지도 않을 것이다. 당연히 우편향도 아니고 좌편향도 아니다. 오로지 있는 그대로 우리가 치열하게 살아온 과거를 맑은 거울에 비추어보는 것처럼 진솔하게 보고자 한다. ‘실사구시(實事求是)’야말로 &amp;lt;교과서포럼&amp;gt;이 지향하고 있는 교과서철학이다.&lt;/p&gt;
&lt;/blockquote&gt;
&lt;p&gt;&lt;div class=&quot;imageblock right&quot; style=&quot;float: right; margin-left: 10px;&quot;&gt;&lt;img src=&quot;https://t1.daumcdn.net/tistoryfile/fs8/12_32_12_20_blog13003_attach_0_8.jpg?original&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t1.daumcdn.net%2Ftistoryfile%2Ffs8%2F12_32_12_20_blog13003_attach_0_8.jpg%3Foriginal&quot; width=&quot;120&quot; height=&quot;161&quot; alt=&quot;대안 교과서 한국 근·현대사&quot;/&gt;&lt;/div&gt;
'좌편향'과 '우편향'을 벗어나겠다는 주장은 오래도록 우파의 논리였던 '탈정치'와 다를 바가 없고, '실사구시'라고 하는 것도 우파들이 말하는 '실용주의'의 정체가 밝혀진 지금에 와서는 전혀 새로울 것이 없다. &lt;strong&gt;오히려 문제는 여기서 &quot;있는 그대로&quot;, &quot;맑은 거울에 비추어보는 것처럼 진솔하게&quot;와 같은 말이다.&lt;/strong&gt; 요컨대 교과포럼의 주장은 '사실事實이란 사실史實이어야 하며 특히 사료적 진실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역사적 기록에 남아 있지 않은 것은 믿지 않겠다는 말이다. &lt;a href=&quot;http://textforum.net/bbs/board_view.php?bbs_code=util_bbs1&amp;amp;bbs_number=11&amp;amp;page=1&amp;amp;keycode=&amp;amp;keyword=&quot; class=&quot;external&quot; title=&quot;http://textforum.net/bbs/board_view.php?bbs_code=util_bbs1&amp;amp;bbs_number=11&amp;amp;page=1&amp;amp;keycode=&amp;amp;keyword=&quot;&gt;『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 출간&lt;/a&gt;을 알리면서, 교과서포럼은 그들의 주장을 한 단어로 요약해서 소개했다. 바로 &lt;strong&gt;'실증주의'&lt;/strong&gt;라는 방법론이다:&lt;/p&gt;
&lt;blockquote&gt;
&lt;p&gt;4. 이상과 같은 문제의식과 새로운 시각에서 저의 교과서포럼은 《대안교과서》의 서론에서 밝힌 대로 다음과 같은 방법론을 채택하였다.&lt;/p&gt;
&lt;p&gt;1) 첫째는 철저한 실증주의이다. 현행 교과서는 물론, 종래의 한국 근ㆍ현대사 서술은 너무나 많은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거나 숨겨왔다. 민족의 자존심을 건드릴 수 있는 예민한 문제들이 의도적으로 회피되어 왔습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대안교과서》는 역사 서술에 어떠한 터부를 두지 않고, 모든 역사를 있었던 그대로 충실하게 기술하고자 노력하였다. 역사에 대한 궁극적인 판단은 역사가가 아니라 일반 독자의 몫이다. 역사가는 역사를 충실히 묘사할 뿐이며, 그 기본 책무에 소홀해서는 안 된다.&lt;/p&gt;
&lt;p&gt;2) 종래 지나치게 강조되어 온 민족주의사관을 누그러뜨리려고 노력하였다. […]&lt;/p&gt;
&lt;/blockquote&gt;
&lt;p&gt;실증주의는 일곱 가지 방법론들 가운데 가장 먼저 등장하고 있으며, 그 앞에 '철저한'이라는 꾸밈말까지 붙어 있다. 이 책에서 실증주의라는 가치가 차지하는 위상이 얼마나 높은지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게다가 그 바로 아래에는 '민족주의사관'에 대한 비판적 접근을 시사함으로써 실증주의와 민족주의의 대립 양상을 극명하게 드러냈다.&lt;/p&gt;
&lt;div id=&quot;toc&quot; style=&quot;border: 1px solid tan; padding: 2px 10px 0px; background-color: rgb(255, 255, 250);&quot;&gt;&lt;strong&gt;목차&lt;/strong&gt;
&lt;hr&gt;
&lt;ol&gt;
&lt;li&gt;&lt;a href=&quot;#toc_0&quot; title=&quot;toc_0&quot; class=&quot;external&quot;&gt;실증주의와 사료&lt;/a&gt;&lt;/li&gt;
&lt;li&gt;&lt;a href=&quot;#toc_1&quot; title=&quot;toc_1&quot; class=&quot;external&quot;&gt;『가즈오의 나라』와 민족주의 사관&lt;/a&gt;&lt;/li&gt;
&lt;li&gt;&lt;a href=&quot;#toc_2&quot; title=&quot;toc_2&quot; class=&quot;external&quot;&gt;구술사와 '기억'의 정치학&lt;/a&gt;&lt;/li&gt;
&lt;li&gt;&lt;a href=&quot;#toc_3&quot; title=&quot;toc_3&quot; class=&quot;external&quot;&gt;결론&lt;/a&gt;&lt;/li&gt;
&lt;li&gt;&lt;a href=&quot;#toc_4&quot; title=&quot;toc_4&quot; class=&quot;external&quot;&gt;참고문헌&lt;/a&gt;&lt;/li&gt;
&lt;/ol&gt;
&lt;/div&gt;
&lt;h3&gt;실증주의와 사료&lt;sup class=&quot;tocAnchorContainer&quot;&gt;&lt;a href=&quot;#toc_0&quot; title=&quot;toc_0&quot; class=&quot;anchor&quot; id=&quot;toc_0&quot;&gt;#&lt;/a&gt;&lt;/sup&gt;&lt;/h3&gt;
&lt;p&gt;실증實證이란 실제로 증거를 댈 수 있는 것을 이른다. 증거를 댈 수 없는 것은, 곧 허구이거나 거짓말 또는 상상에 불과하다는 것이 실증을 신봉하는 사람들의 주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실증은 객관적 인식이자 과학정신이다. 그런데 오귀스뜨 꽁뜨가 &lt;a href=&quot;http://enc.daum.net/dic100/contents.do?query1=b13s3332b&quot; class=&quot;external&quot; title=&quot;http://enc.daum.net/dic100/contents.do?query1=b13s3332b&quot;&gt;실증주의&lt;/a&gt;positivisme를 들고 나왔을 때 그가 했던 말은 이상하게도 &lt;strong&gt;'진보'&lt;/strong&gt;였다(김영한 1990, 63):&lt;/p&gt;
&lt;blockquote&gt;
&lt;p&gt;꽁트에 의하면 인간 정신의 진보는 3단계 법칙에 따르고 있다. 이 법칙은 ① 신학적神學的 또는 가상적假想的 단계, ② 형이상학적形而上學的 또는 추상적抽象的 단계, ③ 과학적科學的 또는 실증적實證的 단계로 되어 있으며 이것은 바로 필연적 역사 법칙의 불가피한 결과들을 반영해 주는 것이다.&lt;/p&gt;
&lt;/blockquote&gt;
&lt;p&gt;실증주의는 결국 옛 정신으로부터의 진보를 이름이었다. 이 '진보'의 이름으로 실증주의가 학문의 발전에 미친 영향은 작지 않다. 실제로 오랫동안 인간들은 잘못된 신학이나 잘못된 형이상학의 영향 아래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 잘못된 학문들의 하위 학문이었던 의학의 예를 보면 이를 명확하게 알 수 있다. 무엇이 사실인지, 그것을 어떻게 증명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던 시절이었으니 생명이 어떻게 탄생하는지 병이 나면 어떻게 치료해야 하는지도 중요하지 않았다. 바슐라르(1977, 63)는 생명이 잉태될 때 어떻게 성별이 정해지는가를 '설명'한, 전혀 과학적이지 않은 17세기의 글을 소개하고 있고, 플로베르(1997, 47)는 황열병을 치료한답시고 피를 너무 많이 뽑아 환자를 죽게 한 일화를 쓰고 있다:&lt;/p&gt;
&lt;blockquote&gt;
&lt;p&gt;삐에르 쟝 파브르 의사는 1636년에 남성과 여성의 탄생에 관한 이론을 개진한다. &quot;하나이며 모든 부분이 똑같으며, 동일한 기질을 갖고 있는 씨가 자궁 속에서 분리되어 하나는 오른편으로 다른 하나는 왼편으로 빠진다면, 그 씨의 분리 자체에서 형태나 모양에 있어서 뿐만이 아니라 성性에 있어서까지도 하나는 남성, 하나는 여성이라는 식으로 대단한 차이가 야기된다. 씨의 힘과 기력과 열기를 유지할 보다 따뜻하고 보다 힘있는 육체의 부분이므로, 오른편으로 빠진 씨의 부분에서 남성이 생겨날 것이고, 인체의 보다 차디찬 부분인 왼편으로 빠진 다른 부분은 씨의 힘을 훨씬 감소시키고 약화시킬 찬 특질을 받아들이게 되어, 거기에서 여성이 생겨날 것인데, 그것도 원천에서는 남성적이다.&quot; (원주=파브르, 《화학비밀개요》)&lt;/p&gt;
&lt;p&gt;더 나아가기 전에, &lt;strong&gt;객관적&lt;/strong&gt; 경험과는 최소한도의 관련도 맺고 있지 않는, 그 단언의 완전히 근거없음을 강조해야만 하겠다.&lt;/p&gt;
&lt;/blockquote&gt;
&lt;blockquote&gt;
&lt;p&gt;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지난 후, 그녀는 빅토르가 탔던 배의 선장으로부터 직접 조카가 어떻게 죽었는지 듣게 되었다. 황열병黃熱病을 치료한다고 병원에서 너무 피를 많이 뽑았다는 것이었다. 네 명의 의사가 동시에 그에게 매달렸지만, 그는 곧 사망했고, 주임 의사는 이렇게 말했다고 했다. &quot;제기랄! 또 하나가 갔네!&quot;&lt;/p&gt;
&lt;/blockquote&gt;
&lt;p&gt;그래도 더 객관적일 것으로 기대되는 자연과학, 그 가운데서도 인간의 삶과 직결되는 의학이 이럴진대 다른 학문이 겪고 있던 비논리성은 말할 것도 없었을 것이다. 적어도 실증주의의 등장 이후로 이와 같은 난센스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실험을 통해 증명된 것만 믿고, 검증을 통해 확정된 것만 신뢰하는 과학적 태도는 이제 당연한 것이 되었다.&lt;/p&gt;
&lt;p&gt;'그러므로 역사에 대한 서술도 있는 사실을 그냥 그대로 적어내기만 하면 된다.'라고는 그러나, 말할 수가 없다. 김영한은 실증주의 역사학이란 그런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김영한 1990, 60-61):&lt;/p&gt;
&lt;blockquote&gt;
&lt;p&gt;우리나라 역사학계에서 많이 쓰이는 '실증적'이라는 말과 '실증주의적'이라는 말은 엄격히 구분되어야 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우리나라에서 '실증적'이라는 말은 사료史料의 객관적 취급, 이른바 랑케가 말하는 &quot;사실을 과거에 있었던 그대로 재생하는 것&quot;(wie es eigentlich gewesen)을 뜻하는 것으로 통용되고 있는 것 같다. 이와 같은 과거 사실의 충실한 확인과 복원은 일면에서는 실증주의의 정신과 부합되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이것이 곧 실증주의 그 자체를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사실의 정확성과 정밀성은 실증주의가 추구하는 첫 단계의 과정에 불과하며 실증주의의 최종적 목표는 어디까지나 경험에 입각한 법칙성과 예측성을 찾는 데 있기 때문이다. […]&lt;/p&gt;
&lt;p&gt;[…] 자료의 객관적 취급이나 사실의 정확성을 추구하는 것은 따지고보면 실증주의자들에게만 고유한 특성은 아닐 것이다. 관념론자나 상대주의론자를 막론하고 모든 역사가가 사실을 정확히 확인하는 것은 그들의 제1차적 의무이며 필요조건인 것이다. 다만 문제의 발단과 견해의 차이는 이와 같은 사실의 확정에 있는 것이 아니라 확정된 사실에 대한 해석과 설명 방식으로부터 야기되고 있는 것이다.&lt;/p&gt;
&lt;p&gt;이렇게 볼 때 우리나라에서 흔히 '실증사학'이라고 말할 때의 '실증'의 개념이 사료와 문헌에 대한 철저한 고증이라는 단순한 의미에서 크게 벗어나고 있는 것이 아닌 한, 이것은 역사 연구의 특정한 태도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최소한 우리나라에서 쓰이는 실증사학實證史學과 서양에서의 실증주의實證主義 사학史學과는 엄격히 구분되어야 하며&lt;/p&gt;
&lt;/blockquote&gt;
&lt;p&gt;좀 긴 인용문이지만, 요약하면 실증주의란 법칙을 세우기 위한 방법론이지, 결코 사실을 그냥 있는 그대로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quot;모든 역사를 있었던 그대로 충실하게 기술하고자 노력하였다. 역사에 대한 궁극적인 판단은 역사가가 아니라 일반 독자의 몫이다. 역사가는 역사를 충실히 묘사할 뿐이며, 그 기본 책무에 소홀해서는 안 된다.&quot;고 천명한 교과서포럼의 역사 교과서는, 실증이라는 단어에만 집착했지 실증주의의 기본적인 개념에 대해서도 잘 몰랐기 때문에 법칙을 세우는 실증주의의 '기본 책무에 소홀했다'고 말할 수 있다.&lt;/p&gt;
&lt;h3&gt;『가즈오의 나라』와 민족주의 사관&lt;sup class=&quot;tocAnchorContainer&quot;&gt;&lt;a href=&quot;#toc_1&quot; title=&quot;toc_1&quot; class=&quot;anchor&quot; id=&quot;toc_1&quot;&gt;#&lt;/a&gt;&lt;/sup&gt;&lt;/h3&gt;
&lt;p&gt;&lt;div class=&quot;imageblock right&quot; style=&quot;float: right; margin-left: 10px;&quot;&gt;&lt;img src=&quot;https://t1.daumcdn.net/tistoryfile/fs7/12_32_12_20_blog13003_attach_0_11.jpg?original&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t1.daumcdn.net%2Ftistoryfile%2Ffs7%2F12_32_12_20_blog13003_attach_0_11.jpg%3Foriginal&quot; width=&quot;120&quot; height=&quot;180&quot; alt=&quot;가즈오의 나라&quot;/&gt;&lt;/div&gt;
대중적 민족주의자라 할 만한 김진명이 주로 관심 갖는 것은 한국의 고대사와 근·현대사다. 그로서는 찬란한 한국의 고대사가 일제의 침략을 받은 근·현대 시기에 말소되었다는 것을 지속적으로 강조함으로써 한국인들의 자존심을 세워주는 글쓰기를 실천하고 있다. (그의 글에서 중세사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곧 그는 주로 일본과의 관계 속에서 한국이라는 나라 혹은 민족의 정체성을 자리매김하는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 실증주의는 식민사관에서 나온 자학사관인 것처럼 보인다. 그는 두 번째 소설에서 실증주의에 대한 &quot;싫증&quot;을 토로하고 있다(김진명 1995, 268-269):&lt;/p&gt;
&lt;blockquote&gt;
&lt;p&gt;&quot;왜 단군 신화를 역사로 보지 않는 겁니까? 왜 이야기 정도로 치부하는 겁니까? 일본인들은 자기네 역사를 올리지 못해 안달인데 왜 우리는 깎아내리지 못해 안달입니까?&quot;&lt;/p&gt;
&lt;p&gt;상훈에게는 참으로 가슴에 와닿는 얘기였다. 에이지의 사건을 추적하면서 뼈저리게 느끼던 부분이었다.&lt;/p&gt;
&lt;p&gt;&quot;실증이 안 되고 있잖아요.&quot;&lt;/p&gt;
&lt;p&gt;&quot;밤낮 그놈의 실증 실증 하지 마십시오. 정말 싫증납니다. […] 이 나라 학생들은 제 나라 시조를 유치원에서 이야기 정도로나 배우라는 겁니까?&quot;&lt;/p&gt;
&lt;p&gt;&quot;학문이란 그런 것이 아니오. 교과서에는 고증된 것만을 실어야지.&quot;&lt;/p&gt;
&lt;p&gt;&quot;일본이 수천 권의 역사서를 불태우고 말살해버린 한국의 고대사는 시시한 사서에 한 줄만 있는 사실도 애지중지하며 키워내야 합니다. 그런데 삼국사기 같은 정사에 있는 기록도 못 믿겠다고 교과서에서 빼버리면 우리나라 역사를 어디로 끌고 가겠다는 겁니까? 왜 과거 일제시대에 일본인들이 하던 주장을 그대로 되풀이하는 겁니까?&quot;&lt;/p&gt;
&lt;p&gt;학자들은 눈에 띄게 조선사편수회 시절부터 내려오던 뿌리 깊은 식민사관을 극복해내고 있었다.&lt;/p&gt;
&lt;/blockquote&gt;
&lt;p&gt;소설에서 민족주의자들은 실증주의의 옷을 입은 식민주의자들을 비판하고 있다. 그들의 논리는 일본이 사료 자체를 말살한 마당이니 실증주의라는 것도 허구가 아니냐는 것이다. 실증주의는 그 사료중심성 때문에 일제에 의해 조작된 사료에 휘둘려 식민주의가 되고 만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문영 님의 &lt;a href=&quot;http://orumi.egloos.com/214612&quot; class=&quot;external&quot; title=&quot;http://orumi.egloos.com/214612&quot;&gt;일제는 20만 권의 사서를 태웠나&lt;/a&gt;에서 볼 수 있듯이 일제가 태운 역사 관련 책은 51종에 불과하다:&lt;/p&gt;
&lt;blockquote&gt;
&lt;p&gt;서희건 저 &amp;lt;잃어버린 역사&amp;gt; 1권 11쪽에는 &amp;lt;제헌국회사&amp;gt;와 &amp;lt;군국일본조선강점 36년&amp;gt;이라는 책을 인용해 일제가 핀매금지하고 수거한 책은 &lt;strong&gt;총 51종 20여만 권&lt;/strong&gt;이라고 밝히고 있다. &amp;lt;군국일본조선강점36년&amp;gt;을 쓴 사람은 일제시대 군수를 지낸 골수 친일파 &lt;span style=&quot;color: rgb(254, 0, 0);&quot;&gt;문정창&lt;/span&gt;이라는 재야사가인데, 이 재야사가는 이외에도 황당무계한 이야기를 많이 지어낸 인물이다. 바로 이런 사람이 주장한 내용이 일제가 20여만 권의 사서를 불태웠다고 주장한 것이다.&lt;/p&gt;
&lt;/blockquote&gt;
&lt;p&gt;한국인들은 오래도록 반일 감정을 교육받았기 때문에 사실을 적확하게 지적하지 않기로 마음먹으면 한국인들을 도발하기는 무척 쉽다. 어쨌든 사료 말살설을 애지중지 키우면 &quot;한국의 고대사는 시시한 사서에 한 줄만 있는 사실도 애지중지하며 키워내야&quot; 한다는 주장으로 바뀐다. 실증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도전이라 할 수는 없지만, '실증'의 정신은 찾아볼 수 없다. ('시시한 사서에 한 줄만 있는 사실'을 자꾸 키워내려다 보니 '고대 삼국은 한반도가 아닌 중국에 있었다'는 허무맹랑한 주장을 하게 된다. 대체로 출전이 없는 주장이지만, 간혹 출전이 있더라도 문외한이 보더라도 무리한 적용이 많다. 실제로 이런 주장에 대해서는 &lt;a href=&quot;http://orumi.egloos.com/1779098&quot; class=&quot;external&quot; title=&quot;http://orumi.egloos.com/1779098&quot;&gt;상세하고 논리적인 비판&lt;/a&gt;이 나와 있다.)&lt;/p&gt;
&lt;p&gt;재미있는 것은 주인공격인 상훈은 때로 일본의 제국주의 역사학자들의 논리를 깨기 위해 실증주의를 주창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상훈은 제국주의자들의 역사관을 &quot;황국사관&quot;이라고 부르며, &quot;학계의 양심&quot;에 호소한다(김진명 1995, 222-223):&lt;/p&gt;
&lt;blockquote&gt;
&lt;p&gt;말은 삼국 학계라 하고 있었지만 결론은 일본을 제외한 중국과 한국의 역사기술을 옳지 못하다고 나무라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 […] 올바른 토론이라기 보다는 한국과 중국의 역사학계에 대한 성토장이 되고 있었다. 누군가 상훈의 의견을 물어오자 상훈은 호흡을 가다듬었다. 어쨌거나 그들은 일본 학계의 대표들이기 때문이었다.&lt;/p&gt;
&lt;p&gt;&quot;본인은 동양 삼국의 역사를 올바로 기술하기 위하여 삼국의 사서를 대조하고 공통적으로 확인되는 사실을 위주로 하여 이제까지처럼 자국중심의 역사기술 태도를 버리고 철저히 사료에 입각하여 역사를 재구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고대사 중에서 한일간에 쟁점이 되어 있는 임나일본부에 대한 일본의 역사기술은 여전히 황국사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므로 이 점에 있어서 학계의 양심을 촉구하는 바입니다.&quot;&lt;/p&gt;
&lt;/blockquote&gt;
&lt;p&gt;앞으로는 &quot;자국중심의 역사기술 태도를 버리고 &lt;strong&gt;철저히 사료에 입각&lt;/strong&gt;하여 역사를 재구성&quot;하라는 것이다. 곧 실증 정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후 상훈은 주로 광개토대왕비에 대한 해석, 그 중에서도 『일본서기』의 임나일본부설을 비판하는 내용으로 일본 역사학자들을 압도한다. 사실과 전설을 구분해야 하며, 광개토대왕비에서도 과장된 부분은 인정해야 하며, 『일본서기』의 사료적 가치를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토론 과정에서 또다서 등장하는 것이 역시 '분서焚書'론이다. 한국의 국수주의자들은 일제가 고대사 사료들을 말살했다고 주장하고, 일본의 황국사관에 빠진 사람들은 한국이 '임나일본부설'은 부끄러운 역사라 관련 사료를 다 없애버렸다고 주장한다(김진명 1995, 233):&lt;/p&gt;
&lt;blockquote&gt;
&lt;p&gt;&quot;결국 한 점의 자료도 찾지 못하자 한반도의 사람들이 치욕적인 사실이라 기록을 모두 없애버렸다고 주장하기도 했지요. […] 세계 역사상 그런 일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4·5세기 경이면 양국간에 사신 한번 왔다 간 것도 모두 사료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2세기에 걸쳐 일본이 한반도를 지배한 것이 겨우 일본서기의 기록 한 줄로 압축될 수 있습니까? […]&quot;&lt;/p&gt;
&lt;/blockquote&gt;
&lt;p&gt;한 소설에 실린 두 분서론은 자국중심주의적 역사관이 얼마나 쉽게 허구가 될 수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 준다. 이 소설에서 볼 수 있듯이 일본의 주장을 깨뜨릴 때에는 '실증주의'를 종용하고, 한국의 역사를 기술할 때에는 &quot;시시한 사서에 한 줄만 있는 사실&quot;을 키워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한국 민족주의의 두 얼굴이다.&lt;/p&gt;
&lt;p&gt;실제로 식민주의와 민족주의는 같은 논리를 가진다는 점을 기억해야 하겠다. 차하순(1990, 188-196)은 식민주의 사관을 세 가지로 구분하여 ① 인종적 식민주의 사관 ② 진화론적 식민주의 사관 ③ 문화적 식민주의 사관 등이 있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식민주의자들이 타국을 침략할 때 &quot;우리가 우월하기 때문에 정당하다&quot;고 말하는 것이 인종적 식민주의 사관이고, 그와 거의 구별할 수 없지만 굳이 가르자면 &quot;우리가 더 진화되었으니 너희는 도태되어도 되므로 정당하다&quot;고 말하는 것은 진화론적 식민주의 사관이다. 또, &quot;우리 문명이 더 위대하니 우리가 너희에게 문명을 주겠다&quot;고 말하는 것은 문화적 식민주의 사관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세 가지 식민주의 사관은 그대로 한국 민족주의에도 적용된다. 한국인들은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민족이라는 주장이나 한국의 찬란한 고대사만을 강조하는 주장이 문제가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lt;/p&gt;
&lt;h3&gt;구술사와 '기억'의 정치학&lt;sup class=&quot;tocAnchorContainer&quot;&gt;&lt;a href=&quot;#toc_2&quot; title=&quot;toc_2&quot; class=&quot;anchor&quot; id=&quot;toc_2&quot;&gt;#&lt;/a&gt;&lt;/sup&gt;&lt;/h3&gt;
&lt;p&gt;교과서포럼이 '실증'적 태도를 견지하기 위해 취했던 것은 전적으로 사료에만 의존하는 방식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들의 관점에 전연 동의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국수주의적 민족주의자들의 황당무계한 주장을 그들로서는 받아들이기가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관찬 사서'라고 할 만한 중·고등학교 국사 책에조차 부족한 근거로 한국과 한민족을 치켜세우는 표현이나, 과장된 표현들이 적지 않게 나온다. 때문에 교과서포럼 역시 일정 부분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볼 수는 있다.&lt;/p&gt;
&lt;p&gt;그러나 그들이 철저하게 사료--그 가운데에서도 특히 공문서--에만 의존하면서 간과한 부분도 적지 않다. 가령 동학농민운동은 &quot;남겨진 실증적인 사료에 관한 한&quot; 농민들이 먹고 살기 힘들어 일으킨 보수적 농민 봉기로 평가된다. 이 교과서는 일제의 토지 수탈을 위한 토지조사에 대해서도 농민이 근거를 제출하면 땅을 돌려주었다는 식으로 기록하고 있고, 일본군 '위안부' 역시 '속아서 제발로 돈 벌러 갔다'는 취지로 쓰기도 했다. 이와 같은 '묘사'는 아마 그들이 택한 사료가 일본의 입장을 대변하는 사료였기 때문일 것이다. 공문서 중심의 태도는 필연적으로 개개인의 발언을 무시한다. 피해자들이 아무리 내가 피해자라고 증언해도 그 증언은 받아들여지지 않고, 가해자의 양심선언도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속아서 제발로 돈 벌러 갔다'는 주장은 그런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다.&lt;/p&gt;
&lt;p&gt;&lt;div class=&quot;imageblock right&quot; style=&quot;float: right; margin-left: 10px;&quot;&gt;&lt;img src=&quot;https://t1.daumcdn.net/tistoryfile/fs8/12_32_12_20_blog13003_attach_0_9.gif?original&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t1.daumcdn.net%2Ftistoryfile%2Ffs8%2F12_32_12_20_blog13003_attach_0_9.gif%3Foriginal&quot; width=&quot;114&quot; height=&quot;174&quot; alt=&quot;내셔널리즘과 젠더&quot;/&gt;&lt;/div&gt;
우에노 찌즈꼬(1999, 149-154)는 1996년 12월에 발족한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의 주장을 네 가지로 요약했다: ① '위안부' 강제 연행을 뒷받침할 실증 자료가 없다. ② 실증 사학의 입장에서는 피해자의 증언이 신뢰성을 의심받는다(구두 증언은 신뢰성이 없다). ③ 성性의 어두운 면을 중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④ 국민적 자존심을 회복해야 한다.&lt;/p&gt;
&lt;p&gt;우에노는 넷째가 그들의 가장 핵심적인 주장이라고 했지만, '기억'을 말하는 역사의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첫번째와 두번째 주장에 눈길이 갈 수밖에 없다. 우에노는 그들의 주장에 약간 흥분한 듯하지만, 사실은 매우 차분하게 반박한다. 먼저 첫번째 주장에 대한 반박을 보자:&lt;/p&gt;
&lt;blockquote&gt;
&lt;p&gt;언뜻 보기에 이 주장은 문서 사료 지상주의인 실증 사학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네오 나찌의 논리와 다를 바 없다. 네오 나찌는 유태인 말살을 지시했던 히틀러가 사명한 문서 자료가 없다는 논거로 유태인 학살은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해 문서 사료 지상주의가 안고 있는 위험은 누가 보아도 명백하다. 패전국이 전후 처리에 앞서서 자신들에게 불리한 자료를 폐기 처분했다는 사실은 분명하기 때문이다.&lt;/p&gt;
&lt;/blockquote&gt;
&lt;p&gt;'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나 교과서포럼이 택하고 있는 '실증주의'라는 것의 맹점이 나타나는 부분이다. 이들은 사료가 없다면 어느 무엇도 확정할 수 없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고, 그 사료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문서 사료에 한정된다. 문서 사료가 당대에 거쳐야 할 필연적인 숙명인 '검열'을 고려하지 않은 연구 태도라고 볼 수 있다. 우에노는 이어서 &quot;실증 사학이라는, 언뜻 보기에 '과학적'인 방법론을 채용하는 것이 어떤 함정에 빠질 수 있는가를 고찰해 볼 필요가 있다.&quot;고 말함으로써 이들이 '과학화'를 부르짖음으면서도 결국 궁극적으로는 '비과학화'로 나아가고 있다는 주장을 편다.&lt;/p&gt;
&lt;p&gt;실증 사학에서는 문서 사료, 고고학적(물적) 사료, 그리고 구두 사료를 사료로 인정하는데, 이 가운데 구두 사료보다는 나머지 둘의 사료 가치가 더 높다. 또 문서 사료 가운데에서도 공문서가 사문서보다 가치가 높다. 그런데 문제는 &quot;'공'문서란 '관官'에서 사태를 어떻게 '관리'했는가를 나타내는 자료&quot;라는 점이다. 따라서 공문서는 언제든지 관의 판단에 따라서 수정되거나 삭제될 수 있는 문서라고 봐야 한다. 그런데도 공문서만을 신봉하는 태도는 일견 불편부당&lt;span style=&quot;font-family: 한컴돋움;&quot;&gt;不偏不黨한 태도로 보이지만, 사실은 당시 권력을 점하고 있던 쪽에 편향된 판단을 내리게 될 수 있는 위험을 안고 있는 것이다.&lt;/span&gt;&lt;/p&gt;
&lt;p&gt;두번째 주장에 대한 반박을 보자:&lt;/p&gt;
&lt;blockquote&gt;
&lt;p&gt;'위안부' 문제의 특질은 지금까지 누구나 그 존재를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피해자가 침묵함으로써 피해자가 없는 범죄가 되어 왔다는 것이다. […] '위안부' 문제는 '위안부'를 경험했던 여성들을 침묵하게 하는 일에 성공했다. 그 피해자들이 간신히 무거운 입을 열고 자신들의 체험을 증언하는데, 구두 증언은 역사 자료로서 신뢰성이 없다는 이유로 피해 자체를 부인하려 한다.&lt;/p&gt;
&lt;/blockquote&gt;
&lt;p&gt;무분별하게 '실증'을 신봉하는 태도는 '말'을 신뢰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이런 고민은 사실 '위안부' 문제뿐 아니라 여성사 일반에 적용된다. &quot;여성사는 '씌어진 역사'가 거의 없는 상태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quot;이다.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은 역시 구술사oral history뿐이다(우에노 찌즈꼬 1999, 169-175).&lt;/p&gt;&lt;div align=&quot;center&quot;&gt;&lt;figure class=&quot;unsupported component-kakaotv&quot; contenteditable=&quot;false&quot; style=&quot;background:#000;margin:16px 0;min-height:72px;padding:10px 16px;display:flex;align-items:center;justify-content:center;text-align:center;box-sizing:border-box;width:100%;max-width:100%;&quot;&gt;
    &lt;p contenteditable=&quot;false&quot; style=&quot;margin:0;color:#8a8a8a;font-size:13px;line-height:1.6;user-select:none;pointer-events:none;&quot;&gt;동영상 서비스가 종료되어 해당 콘텐츠를 재생할 수 없습니다.&lt;/p&gt;
&lt;/figure&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rgb(142, 142, 142);&quot;&gt;MBC TV에서 &lt;/span&gt;&lt;a style=&quot;color: rgb(142, 142, 142);&quot; href=&quot;http://www.imbc.com/broad/tv/culture/newswho/vod/?kind=image&amp;amp;progCode=1000844100081100000&amp;amp;pageNum=10&amp;amp;pageSize=5&amp;amp;cornerFlag=0&amp;amp;ContentTypeID=1&quot; target=&quot;&quot;&gt;3월 29일 방영한 뉴스후&lt;/a&gt;&lt;span style=&quot;color: rgb(142, 142, 142);&quot;&gt;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구술사를 강조했다&lt;/span&gt;&lt;br /&gt;&lt;/div&gt;
&lt;p&gt;구술사는 분명 몇 가지 문제가 있다: ① 망각이나 잘못된 기억 ② 비일관성 ③ 기억의 선택성 ④ 회상이라는 시점이 그것들이다. 곧 신뢰성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기억이란 얼마든지 잘못될 수 있고, 이야기의 앞뒤 줄거리가 종종 맞지 않는다. 또, 기억은 항상 선택적인 것이어서 기억되는 것이 있고 잊혀지는 것이 있게 마련이다. 게다가 &lt;a href=&quot;http://ko.wikipedia.org/wiki/%ED%8E%B8%EB%85%84%EC%B2%B4&quot; title=&quot;http://ko.wikipedia.org/wiki/%ED%8E%B8%EB%85%84%EC%B2%B4&quot; class=&quot;external&quot;&gt;편년체&lt;/a&gt;적으로 당대의 사건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후일 인터뷰를 통해 사건에 대해 말하는 것이므로 현재의 처지가 과거의 기억을 윤색시킨다는 것이다.&lt;/p&gt;
&lt;p&gt;그러나 '씌어진 역사'인 '정사'에서도 구술사의 문제점은 다 나타난다: ① '정사'에서도 씌어지지 않은 기록이나 지워진 기록, 잘못된 기억이 있다. ② 정사 역시 앞뒤가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 또한 '앞뒤가 맞는 역사'는 오히려 더 위험한 역사이다. 딱 맞아떨어지는 역사는 목적론적으로 '편집된 역사'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③ '정사' 역시 권력자의 시각에서 취사선택된 것만 기록한다. ④ 역사는 본래 당대에 어떤 기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끊임없는 '재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역사는 '회상'이다.&lt;/p&gt;
&lt;p&gt;'씌어진 역사'만을 신봉하는 태도는 오히려 우리를 사실事實로부터 멀어지게 함은 물론, 그럼으로써 진실에 다가가는 것을 방해하는 주요한 요인 중 하나이다. 공식 문서뿐 아니라 작은 화장실의 낙서와 피해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증언이 중요한 것은 그 때문이다. 나는 실증적인 태도 그 자체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실증주의'는 현대 학문science의 가장 기본적인 태도에 불과하다. 중요한 것은 어떤 정보가 사실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판단력 그 자체이다. '씌어진 역사'만을 신봉하는 '실증주의'는 반쪽 실증주의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프레베르가 썼듯이 당대의 '위대한 사람'이란 후손을 위해 제 몸의 치수를 재게 마련이기 때문이다(Prévert 1986, 120):&lt;/p&gt;
&lt;blockquote&gt;
&lt;p&gt;위대한 사람&lt;br /&gt;
Le grand homme&lt;/p&gt;
&lt;p&gt;석공의 집에서&lt;br /&gt;
난 그를 만났지&lt;br /&gt;
그는 제 몸의 칫수를 재고 있었어&lt;br /&gt;
후손을 위해서.&lt;/p&gt;
&lt;/blockquote&gt;
&lt;h3&gt;결론&lt;sup class=&quot;tocAnchorContainer&quot;&gt;&lt;a href=&quot;#toc_3&quot; title=&quot;toc_3&quot; class=&quot;anchor&quot; id=&quot;toc_3&quot;&gt;#&lt;/a&gt;&lt;/sup&gt;&lt;/h3&gt;
&lt;p&gt;역사학자가 나라와 민족을 사랑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 사랑과는 별개로 학문의 연구는 객관적이어야 한다. 그것이 실증주의다. 실증주의라는 방법론은 당연히 항상 유효하다. 중요한 것은 '실증'의 근거를 무엇으로 잡는가이다. 공문서 중심의 담박한 서술이 역사 교과서의 임무라고 믿는다면, 역사학자라는 사람이 있을 필요가 없다. (그래서 교과서포럼의 대안교과서 집필진에 역사학자가 없는지도 모르겠다.) 역사적 사실은 항상 미스테리일 수밖에 없으며, 다만 우리는 진실에 점근선으로 다가갈 수 있을 따름이다. 가령 식민지 근대화론이 완전히 허구인지 어느 정도의 진실성이 있는지 나는 잘 모른다. 중요한 것은 어느 쪽이든 적확한 근거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lt;/p&gt;
&lt;p&gt;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도 마찬가지다. 이들 증언은 하나하나가 소중한 구술사이다. 물론 우리가 그들의 주장을 덮어놓고 100% 신뢰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그들의 주장이 상당한 진실성을 담보하고 있다고 판단된다면 거기에 대한 연구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이와 같은 성실한 태도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교과서포럼의 '담박한 서술'은 실제로는 철저히 편향된 시각에 불과하게 될 뿐이다.&lt;/p&gt;
&lt;h3&gt;참고문헌&lt;sup class=&quot;tocAnchorContainer&quot;&gt;&lt;a href=&quot;#toc_4&quot; title=&quot;toc_4&quot; class=&quot;anchor&quot; id=&quot;toc_4&quot;&gt;#&lt;/a&gt;&lt;/sup&gt;&lt;/h3&gt;
&lt;p&gt;김영한. 1990. &quot;實證主義史觀&quot;. 실린곳: 차하순 엮음. 『史觀이란 무엇인가』. 청람논단1. 증보7쇄. 서울:청람. 57-76쪽.&lt;br /&gt;
김진명. 1995. 『가즈오의 나라』. 2권. 서울:프리미엄북스.&lt;br /&gt;
차하순. 1990. &quot;植民主義史觀&quot;. 실린곳: 차하순 엮음. 『史觀이란 무엇인가』. 청람논단1. 증보7쇄. 서울:청람. 181-197쪽.&lt;br /&gt;
우에노 찌즈꼬. 1999. 『내셔널리즘과 젠더』. 이선이 옮김. 비판총서3. 서울:박종철출판사.&lt;br /&gt;
Bachelard. 1977. 『불의 精神分析』. 김현 옮김. 삼중당신서11. 서울:삼중당.&lt;br /&gt;
Flaubert, Gustave. 1997. &quot;순박한 마음&quot;. 실린곳: 『세 개의 짧은 이야기』. 김연권 옮김. 문지스펙트럼2-008. 서울:문학과지성사. 13-76쪽.&lt;br /&gt;
Prévert, Jacques. 1986. 『붉은 말』. 함정숙 옮김. 세계문제시인선집3. 서울:청하.&lt;/p&gt;
&lt;p style=&quot;text-align: right;&quot;&gt;이 글은 &lt;a href=&quot;http://stryperz.springnote.com/&quot;&gt;스프링노트&lt;/a&gt;에서 작성되었습니다.&lt;/p&gt;</description>
      <category>어느어릿광대의견해</category>
      <category>nationalism-and-gender</category>
      <category>oral-history</category>
      <category>가즈오의나라</category>
      <category>공문서</category>
      <category>과학</category>
      <category>과학화</category>
      <category>교과서</category>
      <category>교과서포럼</category>
      <category>구술사</category>
      <category>구전사</category>
      <category>국가주의</category>
      <category>국사교과서</category>
      <category>국수주의</category>
      <category>근&amp;middot;현대사</category>
      <category>근현대사</category>
      <category>김진명</category>
      <category>꽁뜨</category>
      <category>내셔널리즘</category>
      <category>내셔널리즘과젠더</category>
      <category>뉴라이트</category>
      <category>대안교과서</category>
      <category>미시사</category>
      <category>민족주의</category>
      <category>비과학화</category>
      <category>사료</category>
      <category>사료중심주의</category>
      <category>새역모</category>
      <category>식민주의</category>
      <category>실증주의</category>
      <category>역사교과서</category>
      <category>우에노찌즈꼬</category>
      <category>우에노치즈코</category>
      <category>위안부</category>
      <category>일본군위안부</category>
      <category>콩트</category>
      <category>황국사관</category>
      <author>엔디</author>
      <guid isPermaLink="true">https://endyecrit.tistory.com/213</guid>
      <comments>https://endyecrit.tistory.com/213#entry213comment</comments>
      <pubDate>Sun, 3 Aug 2008 02:05:40 +0900</pubDate>
    </item>
  </channel>
</rss>